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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요 Nov 19. 2024

파이어족을 꿈꾸던 김과장은 지금 뭘 할까

 한 때 파이어족이 유행처럼 번지던 시기가 있었다. 40대는 물론이고 30대들도 젊을 때 돈을 벌어 빠르게 은퇴하기를 원했고, 어느새 파이어족은 모든 직장인의 워너비가 되었다. 그로 인해 부업과 N잡이 떠오르고, 유튜브, 네이버 스마트스토어, 그리고 주식, 부동산 투자 등에 대한 관심도가 상당히 높아졌다. 유튜브에는 30대에 파이어족이 되었다는 성공담이 올라오기 시작했고, 수많은 사람들이 그들을 추종하기에 이르렀다. 내 옆자리에 있던 김과장도 파이어족을 꿈꾸며 퇴근 후 경매를 배우러 다녔다.


지금은 어떤가? 몇 년 사이 사회 분위기는 180도 달라졌다. 자발적 조기 은퇴 희망하던 분위기는 찾아볼 수 없고 오히려 정년 후에도 일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성인 남녀 4056 대상으로 ‘정년 후 근로 의향’을 조사한 결과 10명 중 9명이 은퇴 후에도 일을 하고 싶어 한다고 조사됐다. 연령별로 50대는 95.8%가, 40대는 81.9%, 30대는 74.4% 순이었다. 30대의 비율이 70%가 넘는다는 결과가 매우 놀라울 정도다.

노년의 노동을 희망하는 이유는 ‘연금과 저축만으로는 생계가 곤란할 것 같아서’가 58.6%로 1위였다. 다음으로 ‘추가 여유자금 마련을 위해서’가 30.6%, ‘적당한 소일거리를 위해’ 29.3%, ‘부양을 계속해야 해서’ 20.2% 순이었다.


회사에 충성하고 열심히 일하는 사람을 세상 물정 모른다고 평가절하하고, 직장인은 절대 큰돈을 만질 수 없다고 충고하던 사람들이 다시 회사로 시선을 돌리고 있다.



사는 게 만만치 않다

2021년부터 시작된 고물가, 고금리 환경으로 인해 사람들이 쪼들리기 시작했다. 급격한 인플레이션으로 현금 가치는 폭락했고 모아둔 돈만으로 노년까지 장담할 수 없다는 것을 사람들이 깨닫기 시작했다.

또한 회사를 때려치우고 장사, 유튜버 등으로 영역을 이동한 사람들이 안정적인 수입에 대한 니즈가 커지고, 고정적으로 받는 돈의 소중함을 느꼈을 것이다. 또 막상 파이어족이 되고 난 후 돈에 대해 걱정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극단적인 절약을 이어가야 한다는 압박감 또한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30대 중반, 회사를 때려치우고 잠깐 액세서리 장사를 했던 적이 있다. 내 브랜드를 만들어 호기롭게 시작했지만 반응은 좋지 못했다. 하루에 단 돈 천원도 벌지 못하는 날이 많았다. 그래도 제품은 계속 업데이트를 해야 하기에 물건을 사야 했고, 더 매력적으로 보이기 위해 제품 촬영을 하고, 상품 페이지 디자인을 하는 등 투자금은 점점 늘어갔다. 퇴직금은 하루가 다르게 줄어들었고, 결국 대출을 받아야 할 지경에 이르렀다. 당시 내가 느꼈던 인생에 대한 막막함과 불안함은 직장인일 때는 감히 상상도 하지 못했던 두려움이었다. 그때 처음으로 회사에서 받는 월급의 고마움을 깨달았다.


철저히 준비되지 않은 퇴사는 그런 것이다. 두렵고 막막해서 다음날 눈이 뜨지 않기를 기도하는 마음으로 끝나지 않는 어둠속을 걷는 것이다.


퇴사가 목적이 되어선 안된다

40대가 넘어가니 아침에 일어날 때 안 아픈 곳이 없다. 아무리 자도 피로는 풀릴 생각을 안 하고, 하루에 커피 두 세잔을 마셔도 예전처럼 또렷한 정신과 집중력이 오래가지 않는다. 뿐인가? 직급이 높아지니 보고는 왜 이렇게 많고, 책임져야 할 부분은 또 얼마나 늘었는지 모른다. 출근 그 자체가 부담스러워서 매일 아침 회사 앞에서 도망치고 싶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그럼에도 퇴사는 최후의 보루다. 회사를 관두면 그 자체로 너무 좋을 것 같지만, 준비되지 않은 퇴사는 또 다른 불행의 시작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우리가 회사를 그만두는 것에 목적을 두는 것이 아니라, 행복한 삶을 사는 것에 초점을 맞추면 좋겠다. 회사가 주는 달콤한 월급에 취해서 아무 준비도 하지 말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회사를 감사히 다니면서 은퇴 후에도 생계를 이어나갈 방법을 찾자. 서두르지 않고 차분하게 내가 좋아하는 일을 찾아 하나씩 시도해보자. 회사가 주는 월급은 그런 나의 시도들에 든든한 지원금이 될 것이다.


옆자리 김과장은 부동산 공부에 발을 들여놓은 후 오히려 월급의 소중함을 깨닫고 더 열심히 일을 한다. 회사에선 누구보다 성실히 일하고, 퇴근 후 시간을 쪼개 임장을 다닌다. 틈틈히 가족과 여행도 다니며 직장인으로서의 혜택을 충분히 누린다.

진짜 똑똑한 사람들은 회사의 월급을 섣불리 포기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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