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향인의 직장생활은 일반인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험난하다. 일단 우리는 기본 디폴트값이 침대와 물아일체이기 때문에 집이 아닌 다른 곳에 가는 자체부터 스트레스 게이지가 쌓이기 시작한다. 그곳이 쇼핑천국 백화점이든, 유명한 베이커리 카페든, 불알친구와의 만남이든, 가족모임이든 관계없이 출발 전부터 기가 빨린다. 그러니 이제 막 이직한 회사라면 말할 것도 없다. 그런데 그게 또 팀장이다? 필수불가결한 타 부서와의 업무 협의부터, 불편하고 쓸데없는 회의와 보고, 시도 때도 없는 실적압박과 그에 대응하는 설득의 커뮤니케이션 등 폭탄과 총알이 난무하는 전쟁터에 매일 아침 뚝 떨어지는 기분이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직장인으로 살아남은 내향인들은 정말 강한 사람이다. 인간관계에서 받는 무수한 상처들과 그로 인한 숱한 방황, 그 사이에 끊임없이 찾아오는 번아웃을 어르고 달래 가며 오늘까지 살아남았으니 말이다.
나 역시 그런 내향인의 한 사람으로 살기 위해 터득한 다섯 가지 생존 기술에 대해 풀어보겠다.
첫째, 내 편 한 명 만들기
꼭 업무적으로 도움이 되는 사람이 아니어도 괜찮다. 아니 오히려 업무적으로 관련 없는 사람이 더 내 편을 만들기 수월하다. 아무래도 일이 얽혀있으면 서로 이해관계가 되기 때문에 차라리 가볍게 농담을 건넬 수 있고 티키타카가 잘 맞는 사람을 내 편으로 섭외하는 게 낫다. 적당한 사적인 이야기와 공공의 적인 회사 욕을 나누며 회사에서의 나를 좀 더 편안하게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
잘 사귄 내 편 한 명은 전쟁터 같은 직장에서 숨 쉴 구멍이 되어준다. 먹고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다니는 회사라도 이런 친구 하나만 만들어 놓으면 숨 막히는 직장생활에 산소를 불어넣어 줄 것이다.
둘째, 외향인 동료 한 명과 관계 형성하기
외향인 동료를 한 명 알아두면 조직 생활을 할 때 편하다. 그들은 내가 묻지 않아도 회사의 속사정과 들어본 적도 없는 소식들을 잘 물어다 준다. 무엇보다 이 친구는 회사 곳곳에 아는 사람이 많아서 중간 다리 역할도 잘 놓아주고 팀 간에 협업을 할 때에도 도움이 된다.
보통 외향인들은 먼저 잘 다가오는 경우가 많다. 내 경우엔 회사 내 홍보팀이었던 외향인 동료가 업무적으로 먼저 말을 걸었고, 메신저로 먼저 친밀감을 쌓은 후 함께 밥을 먹으며 친해졌다. 외향인들의 장점은 내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고민하지 않아도 이미 그들이 갖고 있는 이야기의 데이터베이스가 충분해서 말이 끊길 염려가 별로 없다는 점이다.
누군가 먼저 나에게 손을 내밀었다면 부담스럽다고 뒤로 물러서지 말고 간단히 악수라도 청해보자. 그다음은 외향인들이 알아서 할 것이다.
셋째, 하루에 한 번은 타 팀 사람과 이야기하기
의식적으로 타 팀 사람과 이야길 하길 추천한다. 업무적으로 먼저 요청을 하거나 문의사항이 있을 때 말을 걸어서 친밀감을 쌓는 것이 가장 자연스러운 접근이다. 보통 직장인이라면 타 부서 사람과 소통할 때 방어적으로 대하기 마련이지만 먼저 친절하게 다가가는 사람에게 막 대하는 사람은 (상식적인 사람이라면) 거의 없다.
그렇게 메신저로 친밀감을 쌓으면서 조금씩 발을 넓혀보라. 회사에 빠르게 적응하는 방법은 여기저기에 나에게 호의적인 사람을 많이 만드는 것이다.
넷째, 스몰토크를 위한 질문 준비하기
내향인으로서 가장 난감한 순간은 친하지 않은 사람과 단 둘이 있게 되는 상황이다. 의도치 않게 둘만 미팅을 가게 되거나, 식사 자리를 갖게 되거나 하는 돌발상황이 회사에서는 자주 일어난다. 팀장이라면 임원진과 대면할 일도 많은데, 그럴 때마다 상사가 먼저 대화를 시작할 때까지 입을 꾹 다물고 있을 수만은 없다.
이럴 때를 위해 스몰토크를 위한 좋은 질문을 몇 가지 준비해 두면 사람들의 공감을 살 수 있다. 간단히 날씨, 음식, 여행, 취미, 영화/드라마, 연예인, 스포츠, 건강 등 미리 질문리스트를 한두 개씩 가지고 다니면 유용하다.
하나 팁이 있다면, 스몰토크의 기본은 칭찬이다. 무엇이 되었든 이야기를 끌고 나갈 수 있는 상대방의 칭찬거리를 찾는 것이다. 예를 들어, 향수 향이 너무 좋다(칭찬) > 향수 브랜드 물어보기(질문) > 저도 그 브랜드 향수 쓰는데(공통점 찾기)처럼 이야기를 발전시켜나가다 보면 스몰토크가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다섯째, 산책하는 시간 갖기
내향인에게는 혼자만의 시간을 갖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 하루에 10분~15분 정도 혼자 회사 주변을 산책하는 루틴을 꼭 만들어두길 바란다. 산책은 기분전환에 탁월한 효과가 있다. 사람, 업무로 받은 스트레스를 산책을 통해 덜어낼 수 있는 잠깐의 쉼을 허락하자.
내 경우엔 보통 3시~4시 사이에 잠깐이라도 나가는 편이다. 가까운 편의점을 가기도 하고, 카페에 가서 커피를 사 오기도 한다. 그렇게 짧게라도 내 시간을 가지면 조급했던 마음이 다시 차분해지는 걸 느낀다.
내향인에게 이직은 어렵게 찾아 휴전 지역을 벗어나 다시 맹렬한 포격이 쏟아지는 전쟁터로 들어가는 것이나 다름없다. 이 전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전진기지를 잘 구축해서 새로운 땅에서의 평화를 꼭 찾길 바란다.
커리어가 불안한 40 대거나
이직을 준비하거나, 이직 직후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