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재역 2번 출구 근처 삼겹살집에서 전 직장 동료들과 만났다. 금요일 퇴근 시간, 가게 안에는 근처 직장인들로 붐볐다.
오늘 만난 이들은 각각 최근에 퇴사를 결심했거나 이직을 했거나, 현재 퇴사를 하고 쉬고 있었다. 이직할 곳을 알아보는 사람, 헤드헌터와 조율 중인 사람, 취업이 아닌 사업을 구상하거나 자격증을 알아보는 사람 등 각자마다 처한 상황을 헤쳐나가고 있었다. 대부분 40대 초반에서 중반을 넘어가는 나이대의 우리는 어느 정도 배가 차자 약속이나 한 것처럼 같은 고민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뭐 먹고살아야 되냐”
40대 중반이 넘어가면 직장에서 정리해고 대상이 되거나 승진누락과 후배들에게 떠밀려 결국 자발적으로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을 받아들여야 한다. 벌써 이런 걱정을 할 나이가 되었다는 것이 실감이 안 나지만 어느덧 현실에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앞으로 짧으면 2,3년이고 길어야 50살 정도면 직장생활이 위태로워진다. 이후에도 돈을 벌기 위해 일을 할 수는 있겠지만 아마도 지금까지 내가 해왔던 업종과는 다른 분야로 가지 않을까.
최근 당근을 보다 보니 에어비엔비 숙소 청소, 원룸 청소 같은 건당 2만~2만 5천 원 정도의 일당을 벌 수 있는 아르바이트가 종종 보였다. 이런 것들도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는 걸 보니 나 역시 위기의식을 느끼기 시작했나 보다. 이런 작은 알바 공고에도 지원자가 60명이나 된다는 사실에 노후가 쉽지 않음을 직감한다.
이날 대여섯 명이 머리를 맞대고 생각해 낸 것은 1. 주택관리사 자격증 2. 쿠팡물류센터 3. 소파/침구 청소 4. 방충망 창업 정도였다. 직장생활을 20년 가까이 해온 사람들이 생각할 수 있는 수준이 딱 이 정도라고 보면 된다.
큰돈이 들어가는 프랜차이즈나 일반 카페, 음식점 창업은 아무래도 부담이 되니 소자본으로 시작할 수 있는 그나마 안정적인 일들을 찾는 것이다. 이런 걸 보면 용기 있게 사업에 뛰어드는 것도 DNA가 따로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우리 같이 평생직장생활만 하던 사람들은 선뜻 그런 용기를 낼 배짱도 없었다.
30대 중반부터 은퇴 후 고민들을 해오긴 했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재미 삼아했던 이야기가 이제 마냥 웃을 수 없는 이야기가 되어버렸다. 결국 이날 우리의 결론은 “직장생활이 제일 쉽다”였다.
그러나 제일 쉽다는 것은 제일 위험하다는 말과 같은 뜻일 것이다. 돌아오는 지하철 안, 오랜만에 마신 소주의 씁쓸함이 꽤 길게 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