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과 봄
대관령으로 온 후에 가장 크게 느낀 것은 바람이 많이 불어대는 지역이란 거다.
여름에 바람이 많이 불어서 시원하다 보니 아직까지 에어컨을 켜지 않고도 지낼 수 있는 곳이기 하다.
마을이 해발 700미터 이상의 고지대의 특성인 것 같다.
몇 년 전 8월 북유럽을 갔을 때도 북극이 가깝기도 하고 대부분 해발이 높은 곳에 자리 잡고 있어 어느 호텔에 가도 에어컨이 없던걸 기억한다.
대관령이 우리나라에선 여름에도 에어컨을 켜지 않는 유일한곳이다.
서울에서 살던 나도 대관령으로 이사오자마자 당연한 것처럼 에어컨을 달았다. 하지만 지난해 에어컨 커버도 벗겨보지 못했다.
바람이 많이 부는 곳이니 늘 건조하다. 몽골에서부터 찬바람이 불어오다 동해로 빠져나가기 전에 대관령에 부딪쳐 휘돌아 가는 곳이라 그런 것 같다.
이 바람은 겨울도 예외가 아니다. 차갑고 건조한 공기가 이곳에 머물며 휘돌아 치니 더욱 춥게 느껴지게 한다.
눈이 내려도 습기가 없는 찬바람이 불어오니 스키장에 내린 눈이 겨우내 녹질 않아 스키어들이 많이 찾는 곳이기도 하다.
겨울이면 너무 추워서 스키 타는 것과 황태 말리는 것 외에는 달리 할 게 없으니 겨울이 더욱 길게 느껴지는 곳이다.
눈이 두텁게 쌓여있는 이곳에 봄이 올 것 같지 않는데도 봄은 온다. 특별히 봄이 온다고 알려주는 것은 없어도 날씨가 조금씩 따뜻해지면 나무들이 싹을 틔우고 새잎을 내려고 나무들은 긴긴 겨울잠에서 깨어나 물기를 끌어올리느라 안간힘을 쓴다.
겨우내 두텁게 쌓인 눈들이 슬며시 녹느라 언제나 땅은 물을 머금고 있다.
겨울과 봄은 눈에 보이는 경계는 없지만 자연은 늘 그렇게 조금씩 변하고 있는 거다.
올겨울은 유난히 추웠다. 나라의 정국도 그렇고 가정의 살림도 여유롭지 못해 더욱 추운 겨울이었다. 그래도 어김없이 싹을 틔우고 꽃을 피우게 될 것이다. 몸의 일부분처럼 겨우내 입고 있었던 내의도 슬며시 벗게 될 것이다.
산새소리가 다시 들리고 나무들은 푸르른 잎사귀로 치장을 하게 될 것이다.
혼란한 정국도 안정이 되고 우리의 마음도 봄맞이로 분주함과 새로운 계획의 기대감을 갖게 될 것이다.
이렇게 한해를 다시 살게 됨에 감사함을 느끼게 된다는 건 인간만이 가질 수 있는 특권이다.
새로운 걸 계획하고 희망을 가질 수 있다는 것도 인간만이 가질 수 있는 행복이다.
산다는 건 책처럼 하나하나 단락을 짓고 살 수 있는 건 아니지만 한 장 한 장 넘기는 달력처럼 사는 것 아닐까?
그러니 매일 아침 하루를 시작하면서 다시 하루를 시작할 수 있는 것에 감사하고 하루를 새롭게 시작할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나이가 들어 갈수록 아침에 눈 뜰 수 있는 게 감사하게 느껴진다.
이번 봄에는 새로운 계획을 세우고 다시 한번 힘차게 살아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