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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개울음뱅이 Dec 09. 2018

아무도 편들어주지 않는 외톨이의 불행

우리들, 윤가은, 2016

꼬꼬마 시절 자주 하던 장난 중에 이런 게 있다. “니 혼자 홀애~비! 우리 다 김씨인데 니만 기씨잖아.” 지금 들으면 유치하지만 그땐 나름 진지했다. 그게 뭐라고, 속이 상했다. 그래서 내가 다수의 편에 설 수 있는 조건을 달아 다른 누군가를 홀애비로 만들기도 했다. “니 혼자 홀애~비! 다 안 썼는데 니만 안경 썼잖아.” 요즘이야 다른 사람과 구별되는 나만의 개성이 된다면 없는 특징도 만들고픈 심정이지만, 어릴 땐 그 구별이 두려웠나 보다. 

유년기의 친구는 가족 아닌 타인과 맺는 인생의 첫 인간관계다. 서툴고 절박하다. 이 관계는 영원히 지속될 것이라고, 아니 지속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내 말과 행동 때문에 친구들이 나를 싫어할까봐, 안경을 썼거나 이름이 특이하다는 이유로 나랑 같이 안 놀까봐 노심초사하던 시절. 그럴 때 ‘같은 편’이라는 걸 확인 받으면 비로소 마음이 놓였다. 자기 집에 나를 초대한다든가, 축구할 때 빼먹지 않고 나를 부른다든가. 그렇게 ‘같은 편’이 된 애들이 하는 말은 무조건 옳았다. 진짜 그 말이 옳은가보다는 ‘내 친구’가 한 말이라는 게 중요했다. 모든 판단은 나랑 같이 노느냐 아니냐, 내 편이냐 아니냐를 기준으로 내려졌다. 


<우리들>은 피구하려고 편을 나누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대표 두 명이 가위바위보를 해 원하는 사람을 한 명씩 뽑아 간다. 공부도 잘하고 인기도 많은 보라(이서연)와 다른 한 명이 대표다. 선이(최수인)는 가장 마지막에 뽑힌다. 아니, 뽑혔다기보다는 남겨졌다고 하는 게 정확하겠다. 피구가 시작되고, 불안한 눈으로 네모 칸 안에 들어가 있던 선이에게 누군가 날카롭게 말한다. “야, 이선! 너 금 밟았어!” 

안 밟았다고 부인해보지만 소용이 없다. 모여든 아이들은 선이가 네모 칸 밖으로 나갈 때까지 몰아붙인다. 나랑 같은 편인 친한 친구가 한 말이니까 그것이 맞든 틀리든 동조하고 보는 것이다. 같이 피구를 하고는 있지만, 선이는 ‘홀애비’나 다름없다. 

그런 선이에게도 ‘내 편’이 생겼다. 전학생 지아(설혜인)다. 방학 동안 같이 시간을 보내면서, “엄마가 좋아? 지아가 좋아?”라는 엄마의 물음에 망설임 없이 “지아!”라고 답할 만큼 소중한 존재가 된다. 둘 사이가 멀어지는 건 지아가 보라를 사귀면서부터다. 이전 학교에서 따돌림을 당했던 지아는 또다시 따돌림을 당할까봐 ‘보라 편’이 되기를 택하고, 선이는 또 혼자가 된다. 

어른이 된 우리는 이제 더 이상 ‘홀~애비!’ 같은 장난을 하지 않는다. 그러나 편을 가르고 그 편에 따라 이중 잣대를 들이대는 건 여전하다. 유치하게. 영화 말미에 다시 등장하는 피구 장면은 꼬꼬마 시절이 아니라 지금 ‘우리들’의 모습을 돌아보게 한다. 지아는 보라와도 관계가 틀어져 선이처럼 외톨이가 됐다. 선이가 그랬듯, 금 밟았다는 지적을 받는 지아. 여럿이 모여들어 지아를 내보내려 하는데 그때, 선이가 말한다. “내가 봤는데 지아 금 안 밟았어!” 나는 선이처럼 기꺼이 외톨이의 편이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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