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일즈맨, 아쉬가르 파라디, 2016
한밤중에 사람들이 소리를 지르며 뛰쳐나간다. 불시에 진행된 포크레인공사로 아파트 벽에 금이 가고, 주민들은 하룻밤 사이에 살 곳을 잃었다. 다행히 라나와 에마드 부부는 급하게 지인의 소개로 이사 갈 아파트를 구한다.
그러나 이들의 일상에 본격적으로 금이 가기 시작하는 것은 이때부터다. 라나가 혼자 있던 아파트에 강도가 들고, 생명에는 지장이 없었지만 그날의 트라우마가 계속해서 라나를 괴롭힌다. 한편, 에마드는 답답하다. 라나의 활기를 되찾기 위해서라도 범인을 꼭 잡고 싶은데 정작 라나는 신고하기를 꺼린다. 결국 강도가 남기고 간 물건들을 단서로 혼자서 범인을 쫓는다. 여기까지가 영화 <세일즈맨>의 전반부다.
주인공들은 괴롭겠지만 관객은 수상한 이 아파트를 둘러싼 이야기에 호기심이 생긴다. 이웃들이 입을 모아 비난하는 이전 세입자의 정체는 무엇이며 강도와는 어떤 관련이 있을까? 범인은 누구이며 그날 밤엔 어떤 일이 있었던 걸까? 수수께끼투성이인 가운데 선명히 드러나는 것은 부부의 갈등이다.
끔찍한 순간을 다시 떠올리기 싫은 라나는 조용히 사건을 덮고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살고 싶다. 반면 에마드는 범인을 잡아야만 평온했던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다고 믿는다. 오히려 집을 잃었을 때엔 마음을 모아 금방 방법을 찾을 수 있었다. 그러나 한 번 잃은 신뢰를 회복하기란 쉽지 않다. 우리의 일상을 보호하고 있는 것은 집인가, 믿음인가.
집요한 추적 끝에 에마드가 범인을 잡으면서 클라이맥스를 맞는다. 정체는 의외로 병약한 노인. 이전 세입자가 이사 간 줄 모르고 집에 들어갔다가 실수한 거라며 용서를 비는 노인 앞에서 그는 고민에 빠진다. ‘분노’를 앞세워 복수할 수도, ‘연민’ 때문에 못이기는 척 용서할 수도 없는 상황.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던 에마드는 결국 라나와 범인을 대면시킨 후에야, 어중간한 선택을 한다. 최악의 결과는 피했지만 해피엔딩이라고는 할 수 없는 찝찝한 결말.
마지막 장면을 보며 내가 딜레마에 처했던 순간들을 떠올렸다. 인간은 누구나 조금씩 뒤틀린 내면을 갖고 있다. 일상을 꾸리기 위해, 별일 없는 하루하루를 보내기 위해 쌓아 올린 ‘세상 속의 나’로 감추고 있을 뿐. 딜레마는 바로 그 ‘세상 속의 나’를 허물어뜨릴 것을 요구한다. 그때 드러나는 ‘뒤틀린 나’를 똑바로 보는 것은 두렵다. 두렵지만, 가끔 눈을 크게 뜨고 봐야하는 순간이 우리에게도 찾아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