룸, 레니 에이브러햄슨, 2015
영화에서 누군가 납치를 당하면, 결말은 대부분 피해자가 어떻게 되느냐에 따라 갈린다. 범인의 손에 목숨을 잃으면, 새드 엔딩. 극적으로 탈출에 성공하면, 해피 엔딩. 후자의 경우, 주인공은 기쁨의 눈물을 흘리며 가족들과 재회한다. 납치 사건이 마무리됨과 동시에 평화가 찾아오고, 영화도 끝난다.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갈 때 흘러나오는 아름다운 선율의 배경음악은 이렇게 말하는 듯하다. ‘다행히 목숨을 구한 주인공은 그 후로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과연 그럴까? 그러면 좋겠지만, 현실은 영화처럼 간단하지 않다.
<룸>은 피해자의 사고 이후를 해피엔딩으로 대충 얼버무리지 않는 영화다. 열일곱 살 때 한 남자에게 납치당한 조이(브리 라슨)는 작은 방에 갇힌 채 7년을 보낸다. 잭(제이콤 트램블레이)은 납치범과의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다. 서로를 의지하며 하루하루 견뎌내던 두 사람. 조이는 다섯 살이 된 영특한 아들 잭을 이용해 탈출을 시도하고, 극적으로 방을 벗어난다.
여기까지 보고 생각했다. ‘한 시간밖에 안 됐는데 벌써 끝이야? 이제 무슨 얘길 더 하려고 그러지?’ 이전까지 봤던 범죄영화들의 패턴에 익숙해진 탓이다. 그러나 방 밖으로 나온 조이와 잭에게는 지금부터가 새로운 시작이다.
조이는 그 끔찍한 방에서 나오기만 하면 모든 게 해결될 거라 믿었다. 하지만 7년은 짧은 시간이 아니다. 그 시간 동안 납치범의 아이를 낳았고, 또 키웠다. 가족은 물론 세상과 철저히 단절되어 있었다. 모든 자유를, 평범한 열일곱 소녀로 살아가던 일상을 송두리째 빼앗겼다. 조이는 안전한 집으로 돌아오고 나서야 지난 7년의 의미를 곱씹어볼 수 있게 되었고, 그것은 또 다른 고통이 된다. 조이가 탈출하는 장면에서 ‘끝났네’ 라고 생각했던 내 생각이 짧았다. 현실의 수많은 ‘조이’들도 제자리로 돌아오기까지 지난한 시간을 버텨야 했을 텐데. 내 눈에 보이지 않았을 뿐.
<알쓸신잡 2> 목포 편에서 유시민 작가는 목포 대신 진도의 명소를 소개했다. 명량해전이 펼쳐졌던 울둘목, 노을이 예쁜 세방낙조 전망대, 강아지들의 재롱이 귀여운 진돗개 테마파크까지. 진도는 세월호 참사 이후 전 국민에게 가슴 아픈 곳이 되어버렸다. 그 마음은 이해하지만, 진도에도 여전히 사람이 살고 있으니 너무 무거운 마음으로만 진도를 대하지 말자는 취지였다. 진도 사람들도 일상으로 돌아올 수 있게.
이어 유희열은 시인과촌장의 ‘풍경’을 불렀다. “세상 풍경 중에서 제일 아름다운 풍경/ 모든 것들이 제자리로 돌아가는 풍경”이 가사의 전부인 노래. 제자리로 돌아가는 풍경이 아름답기 위해서는 ‘함께 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힘들어하는 엄마의 곁에서 “내 힘이 엄마의 힘이 될 수는 없나요?”라고 묻던 잭이 그랬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