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개울음뱅이 Jan 01. 2019

내가 특별하지 않다는 걸 깨닫는 불행

프랭크, 레니 에이브러햄슨, 2014

나는 내가 가수가 될 줄 알았다. 집에서 학교까지는 20분 정도가 걸렸는데, 매일 아침밥을 먹으면서 머릿속으로 일종의 ‘Set List’를 꾸렸다. 오늘은 무슨 노래를 부를지. 그때 난 이미 거의 가수였고, 등굣길은 <가요톱텐> 스페셜 스테이지였다. 수업 시간에 선생님이 노래를 시키면 빼지 않았다. 잘한다, 잘한다 하니까 진짜 잘하는 줄 알았다. 

고등학교를 거쳐 음악과 무관한 학과로 진학하면서 조금씩 흐릿해지던 가수의 꿈을 확인사살한 건 <슈퍼스타K>였다. ‘드디어 때가 왔다’ 싶어 설레는 마음으로 참가신청용 노래를 녹음했다. 몇 초 못 듣고 파일을 지웠다. 

내 노래는 특별하지 않았다. 아주 뻔한 목소리에 음정은 불안했고 어쭙잖은 기교는 촌스러웠다. 그 후로 오디션 프로그램을 보면 배가 아팠다. ‘내가 저 자리에 있을 줄 알았는데….’ 


평범한 회사원인 존(도널 글리슨) 역시 자기가 뮤지션이 될 거라 믿는다. 퇴근길에 본 풍경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멜로디와 가사를 만들고, “악상이 떠올랐다”며 식사도 거르고 방에 틀어박혀 곡을 쓰는 존. 그러나 늘 완성하고 보면 예전에 즐겨 들었던 노래랑 판박이처럼 똑같아 좌절한다. 그러던 어느 날 한 밴드의 키보드 연주자가 갑자기 나가버리는 바람에 존이 대타로 무대에 서게 된다. 

그럭저럭 무대를 마친 존은 이날부터 이름도 요상한 이 밴드 ‘소론프르프브스’의 멤버가 된다. 이 밴드의 보컬이자 핵심 멤버가 바로 프랭크(마이클 패스벤더)다. 프랭크는 특별하다. 그의 특별함은 항상 쓰고 다니는 우스꽝스러운 가면이 아니라, 그가 만들어내는 독창적인 음악에서 나온다. 

카펫의 작은 보풀만 보고도 예술적인 노래 한 곡을 뚝딱 완성해내는 프랭크는 천재다. 눈에 보이는 풍경을 그대로 옮겨놓은 단순한 가사에, 어디서 들어본 듯한 멜로디만 짜깁기해왔던 존으로서는 열등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모아놓은 비상금을 탕진해가며 몇 날 며칠을 곡 작업에 매달리던 존에게 또 다른 멤버 돈(스쿳 맥네이리)은 말한다. “나도 알아, 아무리 애써도 구린 곡만 나오는 기분. ‘나도 프랭크처럼 되고 말 테다’라는 생각이 들 거야. 하지만 프랭크는 세상에 단 한 명밖에 없어.”


그렇게 말하면서도 결국은 자신이 프랭크가 될 수 없다는 걸 받아들이지 못한 걸까. 돈은 밴드의 앨범 녹음이 끝나자마자 나무에 목을 매단다. 프랭크의 가면을 뒤집어쓴 채로.

음악 하는 사람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는 모두 특별하고 싶다. 글쓰기가 되었든 마음 씀씀이가 되었든 나 자신이 남들보다 뛰어난 무언가를 가진 사람이길 바란다. 


근처에 프랭크와 같은 특별한 사람이 있을 경우 조바심은 더욱 커진다. 그러다 결국은 내가 특별하지 않다는 걸 인정해야 하는 순간이 온다. 그래야 있는 그대로의 나로 계속 살아갈 수 있으니까.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다양한 상황에 놓일수록 ‘별 것 아닌 나’를 점점 더 자주 마주하게 된다. 달갑지 않지만 누구도 피할 수 없는, 평범한 불행이다.

이전 05화 엄마를 보는 딸의 불행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