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창 시절엔 친구가 별로 없다는 사실이 부끄러웠다. 척하면 착 마음에 딱 맞는 친구라고 말할 수 있는 사이는 몇 없었다. ‘왜 마음 놓고 같이 깔깔 웃을 수 있는 사람이 없을까?’ 오랫동안 이해할 수 없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한 교실에 고작 30~40명뿐이다. 그 사이에서 영혼의 단짝을 여럿 찾아내는 게 더 이상하고 놀라운 일이다.
고 1 때 우리 반엔 다가가기 어려운 여자애가 있었다. 키는 나보다 작았지만 덩치가 좋고 머리를 짧게 자른 당찬 여자애였다. 그 애는 “난 혼자가 편해.”라며 점심시간엔 혼자 밥을 먹고 쉬는 시간엔 혼자 책을 읽었다. 솔직히 그 애가 용감하고 대단해 보였지만 그처럼 살 자신은 없었다. 혼자 남겨질까 두려웠던 나는 학교가 끝나면 철로를 따라 걸으며 지는 노을을 바라보았다. “제게도 인생 친구를 보내주세요.”라고 기도하면서.
목련꽃나무 아래에서 배드민턴을 치다가도 이내 쓸쓸해졌다. 왜 나는 애들이 새로 샀다는 패딩이나 가방이나 핸드폰에 관심이 안 가는 걸까? 드라마도 잘생긴 아이돌도 별로 좋아하지 않는 걸까? 좋아하는 게 비슷해야 찬찬히 말문도 트고 웃고 떠들며 친구가 될 텐데. 내가 좋아하는 건 아무도 관심 없는 것들 뿐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것은 아빠가 차에서 틀어놓던 옛날 팝송. 이를테면 비틀스, 존 바에즈, 다이애나 로스처럼 낯선 이름들. 또는 기묘한 권법들이 등장하는 무협지들. 만화 삼국지, 재밌는 책들, 도서관에서 끓여주는 즉석 라면, 산책, 별 보기, 친구랑 그네 타기 등등.
외로움도 쓸쓸함도 다 나의 뻣뻣한 성격 탓으로 돌렸던 시간들도 지나간다. 대학에서 만나는 사람의 숫자가 늘어났다. 그리고 수많은 사이에서 결국은 함께 있으면 든든하고 편안한 친구들 대여섯을 발견했다. 재밌게 읽은 책 얘기, 영화, 음악, 날씨, 드라마, 오늘 먹은 점심 얘기. 친구들과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누며 나는 나 자신을 좋아하는 습관을 조금씩 길러나갔다.
어느 날 사주를 보러 갔는데 점쟁이가 한 말이 떠오른다.
“너는 말이야. 남들이랑 조금 안 맞거든. 라디오 주파수처럼, 남들이랑 주파수가 조금 안 맞는다는 얘기야. 그런데 그래도 완전히 괜찮아. 남한테 맞추려고 하지 말고 남하고 똑같아지려고 하지도 말고, 네가 좋아하는 것 그대로 밀어붙여야 성공한다. 알겠어?”
정말 그랬으면 좋겠다, 기도하고 싶은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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