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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는언니 Jun 15. 2019

그렇게 비수기의 전문가가 된다.

백수의 여행


직장인과 백수. 하루의 시간표는 서로 다르지만 시간의 내용은 꽤 닮아있다. 순간순간 외롭고 잠깐씩 즐거우며 이 정도면 잘하고 있다는 자뻑과 이게 다 뭐 하자는 건지 싶은 자학을 오가기도 하면서 대부분의 시간은 해야 할 일을 하고, SNS를 하고, 짬을 내어 운동도 하고, 카푸치노를 마실까 라테를 마실까 결정장애에 시달리고(고민 후에 내리는 결정은 아메리카노이지만...) 점심으론 뭐 먹지 생각하며 바쁘고도 무덤덤하게 시간을 보낸다. 특별한 시간도, 특별하지 않은 시간도 없다. 이런 시간들이 쌓여 하루가 흘러간다.  


다른 점이 있다면 자신의 스케줄을 자유롭게 조절할 수 있는 백수는 시간의 구애를 덜 받는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비수기에 반짝 저가 항공권이 뜨면 눈치 볼 필요 없이, 나를 대신할 백업도 필요 없이(단, 고양이 집사의 백업은 필요하다) 제일 싼 가격의 날짜에 맞추어 여행을 떠날 수 있는 이점이 있다. 직장인일 때는 시간도 없고 돈도 없었지만(들어오자마자 눈인사만 하고 어디로 그렇게 잽싸게 빠져나가는지...) 백수가 되고 보니 돈은 여전히 없지만 시간만은 부자다. 


때때로 프리랜서로 일을 하기도 하는데 일감이 없을 때는(나의 경우엔 없을 때가 더 많다. 흑...) 여행 계획에 따라 개인 일정을 재조정하면 된다. 일도 없는데 무슨 스케줄 조정까지...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으나 백수가 과로사한다고 일이 없어도 백수는 바쁘다. 아니, 바빠야 한다. 당장 돈이 안돼서 그렇지 생계를 위한 궁리를 끊임없이 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 공부하고 배우고 익혀야 하며 틈틈이 집안일에 삼시 세 끼도 직접 해 먹다 보면 하루가 훅-하고 지나간다. 또한 이 모든 걸 지속 가능하도록 하기 위해 나날이 떨어지는 체력을 끌어올릴 운동도 해야 하므로 회사 다닐 때보다 더 부지런해질 수밖에 없다. 하루키가 괜히 달리기를 하는 게 아니며 정신력은 체력이란 외피의 보호 없이는 구호밖에 안된다는 미생의 띵언이 그냥 나온 게 아니더라... 소파에 누워 멍 때리는 게 백수의 삶이 아니다. 물론 그것 또한 백수의 필수 교양과목에 해당하긴 하지만. 



백수가 되면 화끈하고 멋진 여행을 떠나야지. 다짐하던 날들이 있었다. 회사의 휴가로는 결코 갈 수 없는 머나먼 곳으로 가는 거야. 이를테면 남미 대륙의 끝까지 가서 빙하를 보고 펭귄을 만난다거나 인도에 가서 명상과 요가를 배우고 디지털 노매드가 되어 한 달에 한 도시씩 살아보는 것도 좋겠지. 회사를 그만두기 전에는 아마도 그런 여행을 하게 되지 않을까 내심 약간의 기대를 했었다. 하지만 인생이 어디 마음먹은 대로 흘러가던가. 상황이 여의치 않은 탓인지 추진력이 부족한 탓인지 그만큼의 열정은 없는 탓인지 아직까지 마음속에 고이 담아두고만 있다. 하루 24시간이 모두 나의 시간이 된 일상은 때론 여행보다 더 새롭고 신기했기에 그렇게나 간절하던 여행 생각이 도무지 나지 않은 탓도 있다.  


시간이 많은 백수니까 언제든 가고 싶을 때 갈 수 있다고 생각하니 여행이 마치 장바구니에 담아두고 결재만 하지 않았을 뿐 이미 내 손안에 있는 것인 양 여겨지기도 한다. 직장인일 때의 여행은 1개 남음! 품절 임박!이라는 문구를 떠올리게 했다. 일로 인해 지칠 때, 사람 때문에 힘들 때, 당장 어디론가 사라지고 싶을 때, 그저 좀 쉬었으면 할 때, 정말로 필요할 때 갈 수 있는 게 아니라 언제 가겠다고 미리 스케줄을 빼놓고 계획해야 떠날 수 있었다.


자녀가 있는 사람들은 아이들 방학에 맞춰 한여름 성수기에 떠나고 싱글들은 부모의 잔소리를 피해 명절 성수기에 떠났다. 내가 다니던 회사는 매년 12월 마지막 주에 회사 전체가 문을 닫고 쉬었다. 휴가라면 강제로 쉬는 거라도 꿀맛이지만 이때는 크리스마스와 새해가 겹친 성수기 중에 성수기. 그래도 가야 했다. 비싼 값을 치르더라도 떠나야만 했다. 휴가란 내가 안 간다고 아무도 안타까워하지 않는다. 따로 챙겨주는 사람도 없다. 제일 억울한 건 안 가도 안 간 줄 모른다. 쓰지 않으면 더운 여름날 사르르 녹아 사라지는 아이스커피 속 얼음 같은 것이었다. 그러니 꼭 필요하지 않더라도 솔드 아웃되기 전에 일단 가고 보자는 심리가 발동한다. 일도 성수기, 여행도 성수기, 돈도 성수기, 마음도 성수기. 직장인은 이래저래 성수기의 전문가들이 된다.


화끈하고 멋진 여행은 마음속 장바구니에 여전히 담아놓고 대신 백수니까 할 수 있는 소소하고 호쾌한 여행을 해야지. 게다가 경제적이기까지 하면 바랄 나위가 없겠지.


"더 추워지기 전에 다음 주에 고호를 보러 가지 않을래?"


육아휴직 중인 친구에게 톡을 보냈다. "우리 출출한데 일본에 우동이나 먹으러 갈까?"와 같은 말처럼 이 무슨 부르주아적인 발언이란 말인가?! 이유가 있었다. 친구는 엄청난 고호 마니아로 소원 중 하나가 암스테르담의 고호 미술관에 가보는 거였다. 친구의 카톡 프로필 사진이 한동안 고호 미술관의 풍경이었던 것이 기억났다. 회사 때문에 육아 때문에 이런저런 상황 때문에 밀리고 밀려나서 핸드폰 속 사진으로 걸려있는 여행이 '언젠가'가 아니라 '지금'이 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가고자 한다면 결단코 가지 못할 이유도 없지만 그렇다고 또 딱히 미치도록 가야만 하는 이유도 없기에 (그것이 소원이라 하더라도 말이다) 자꾸만 미루고 안주하려는 엉덩이를 일으켜 세우고 등을 떠밀어줄 누군가가 가끔은 필요한 것이다.   


여행이라면 최소한 3개월 전에는 미리 계획을 세워 스케줄을 짜고 모든 예약을 해두어야 하는 철저한 계획형인 친구는 안 봐도 동공 지진. 뭐? 다음 주? 응! 다음 주! 내 말이 농담인 줄 알았던 친구는 매우 당황해했지만 곧 회사 복직을 앞두고 있었기에 지금이 아니면 언제라는 심정으로 나의 무계획 충동 제안에 얼떨결에 덥석 손을 잡고 말았다. 친구는 아이를 맡기는 등 스케줄 문제로 며칠의 시간이 더 필요하다고 했다. 그러지 뭐. 나는 시간이 많은 백수니까 친구의 스케줄에 맞추는 건 일도 아니었다. 


우리는 마침 둘 다 쌓아는 놨는데 미처 쓰지는 못한 A항공사의 마일리지가 있었고 비수기였던 탓에 보너스 항공권도 일사천리로 예약이 되었으며 하루 만에 미술관 티켓과 싸고 괜찮은 숙소와 모든 이동 기차 편을 예약하는 번갯불에 콩을 훌륭하게 볶는 쾌거를 이루었다. 떠나는 비행기 안에서 친구가 말했다. "여행이 이렇게도 떠나 지는 거구나. 그냥 가면 되는 거였네!" 


암스테르담에 도착한 우리는 본델파크라는 이름의 커다란 공원 옆에 위치한 숙소에 짐을 풀었다. 그곳은 공원이라기보다는 숲에 가까웠다. 다음날 예약해둔 고호 미술관에 가기 전 우리는 공원에 들렀다. 일요일 아침의 공원은 싱그러움과 활력이 샘솟았다. 달리기를 하는 사람들, 아름답고 커다란 개들, 반짝거리는 호수와 나무들, 걷는 사람들... 친구와 나도 걸었다. 목적지에 도착하기 위해서만은 아니었다. 어쩌면 여행의 이유는 가려는 그곳보다 지금 걷는 이 걸음 속에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가던 걸음을 자꾸만 멈추어야 했다. 하늘이 예뻐서 멈추고 벤치에 앉아 쉬기도 하고 호숫가가 좋아서 가져간 돗자리를 펴고 잠시 눕기도 하고 함께 모여 운동을 하던 사람들이 같이 하자며 우리를 부르기도 했다.


고호 미술관에서 고호를 만난 우리는 기차를 타고 파리로 향했다. 안 봐도 된다는 친구를 끌고 별이 총총 뜨는 파리의 밤거리를 산책하고 한밤에 에펠탑에 불이 반짝반짝 들어오는 광경을 오래도록 바라보았다. 안 봐도 된다면서 친구는 나보다 에펠탑 사진을 더 많이 찍었다. 오르세 미술관에서는 고호의 자화상을 보았다. 내친김에 고호 마을이라고 불리는 파리 근교의 오베르쉬르우와즈에도 갔다. 그곳엔 고호와 동생 테오의 묘지가 있었다. 친구는 꽃가게에서 노란 꽃이 활짝 핀 작은 화분을 사서 고호의 무덤 옆에 놓아주었다. 묘지라고 해서 뭔가 어둡고 슬픈 기분이 들 줄만 알았는데 이곳의 묘지는 햇볕이 잘 들고 밝고 아름답고 심지어 경쾌하기까지 했다. 사실 날씨가 좋았던 탓도 크다.  


고호 형제 말고도 마을 주민들로 보이는 무덤이 많았는데 하나같이 누가누가 더 멋지나 내기라도 하듯 꽃이며 갖가지 물건들로 뒤덮여 있었다. 마치 생일파티에 초대된 기분이 들었다. 고인의 사진을 비롯 평소에 좋아하던 인형, 아끼던 애장품, 장식품, 편지 등 그 사람이 살아있을 때의 모습을 추측할 수 있는 이야기가 흘러넘쳤다. "이 무덤 디자인 좀 봐. 감각 있네.", "이 사람은 축구를 무지 좋아했었나 봐.", "아니 묘지가 이렇게까지 재미있을 일인가?", "여기 오니 죽음과 삶이 동떨어진 게 아니라 하나로 연결된 것 같아.", "아무튼 고호는 죽어서도 심심하진 않겠어"


묘지 근처에는 고호의 마지막 작품으로 알려진 <까마귀가 나는 밀밭> 속 풍경이 펼쳐져 있었다. 일렁이는 노란빛, 슬픔, 외로움, 광기보다 강한 고통. 이 그림을 끝으로 고호는 권총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그림은 그러했지만 현실은 추수가 끝난 드넓고 한갓진 밭에서 까마귀들이 무언가를 쪼아 먹고 있었다. 더 이상 평화로울 수가 없었다. 아마도 내 마음이 여유로운 비수기 같아서였을까?


어떤 풍경이 전해주는 느낌은 실제 모습보다는 현재의 내 마음 상태에 의해 많이 좌우된다. 또한 그 마음이란 시시각각 변하는 날씨와 같아서 처한 환경에 의해서도 많이 좌우된다. 회사를 다닐 때의 내 마음은 늘 성수기 같았다. 항상 바쁘고 시간이 부족하고 해야 할 일이 하고 싶은 일을 늘 압도하고 시간이 부족하다는 핑계를 대고 그러니까 늘 여유가 없고 여유가 없으니 주변을 돌아보지 못하고 그러니 자꾸만 이기적이 되어가고... 영화 <사랑의 블랙홀>에서 같은 날이 매일 반복되듯 내 삶을 영화로 찍는다면 <성수기의 블랙홀>이 아니었을까. 햇살 같은 미소를 띠며 밀밭을 배경으로 셀피를 찍고 있는 친구를 바라보았다. 일과 육아에서 잠시나마 해방된 친구의 마음도 지금은 비수기일 테다. 


우리는 고호가 밝은 태양을 찾아 떠났던 곳이자 <밤의 카페테라스>라는 그림으로 유명한 프로방스의 아를에도 갔다. 친구의 동생이 십 년 전에 여행하며 묵었던 숙소를 혹시 나하고 추천해주었는데 다행히 아직도 그 자리에, 비수기였던 탓에 심지어 가격도 거의 십 년 전 그대로였다. 까짓 거 호기롭게 만원을 더 내고 방을 업그레이드했다. 싱글 침대 2개에 소파와 테이블이 있는 넓은 방, 방만큼 큰 화장실, 커다란 창문으로는 아를의 예쁜 골목을 내려다볼 수 있었는데 1박에 9만 원이었다. 아침식사도 훌륭했다.    


봉쥬르~ 굿모닝!

커피 or 티? : 커피!

케냐 or 코스타리카? : 코스타리카!

진하게 or 연하게? : 진하게!

우유 or 크림? : 우유!

오렌지 or 믹스 주스? : 오렌지!


세세하게 뭔가를 엄청 물어보는 듯했지만 결국 준비된 건 두 가지였고 둘 중 선택하는 거였다. 잘 내려진 커피, 빵과 쨈 그리고 주스와 우유. 몇 가지 안 되는 심플한 아침식사였지만 선택이 주는 만족감이랄까, 하얗고 두꺼운 도자기 그릇을 따뜻하게 데워서 정성스럽게 내어주는데서 오는 대접받는다는 느낌이랄까, 풍성한 아침을 맞이하는 기분이었다. "과연 서비스란 무엇인가?", "이분들 뭘 좀 아시네", "회사에서 미치도록 바쁘지만 않으면 나도 일을 이렇게 세심하게 할 수 있는데 말이지." 우리는 밥을 먹으며 이런 말을 주고받았다.


아를은 아주 작고 조용한 동네였다. 비수기를 맞아 관광객이 거의 없다시피 한 마을은 마치 우리가 전세 낸 듯했다. 친구와 나는 한가로움을 마구 뿌리고 다녔다. 느그적느그적 어기적어기적. 집 보러 다니는 사람처럼 집들을 구경하고 한적한 골목을 돌아다니며 봤던 가게를 또 보고 점심과 저녁을 먹을만한 레스토랑을 물색하고 <론강의 별이 빛나는 밤>의 배경이 된 강가를 따라 걷고 또 걸었다. 


흐르는 물이 있는 곳을 좋아한다. 흘러가는 물을 보고 있으면 내 마음도 따라 흘러가는 기분이 든다. 나는 종종 막히곤 했다. 흘러가려는 마음을 흐르지 못하게 붙잡곤 했다. 흐르고 싶어 하는 것을 흘러가게 내버려두어야 삶이 자유의 빛을 띤다는 걸 머리로는 알면서도 마음은 그러질 못했다. 그렇게 막고 막다가 터져서 흘러넘치기 직전에야 허둥지둥 빠져나왔다. 


저녁에는 광장에 나가 <밤의 카페테라스>와 조우했다. 너무나 유명한 그림. 집들이 인테리어로 걸려있곤 하던 그림. 드디어 그 그림의 풍경 속으로 풍덩 들어와 있는 기분을 느껴야 할 텐데... 현실은 그림과 많이 달라져 있었다. 나는 스마트폰으로 트립어드바이저 리뷰를 체크해 보았다. 음식 맛이 최악이다. 비싸다. 관광객만 바글바글... 그래도 여기까지 오셨으니 그냥 커피만 드세요... 커피도 비싸요... "아니 사람들이 어째 낭만이 없냐", "이게 현실인 거지 뭐.."

            

"나는 간혹 낮보다는 밤이 더 생동감이 있어 색채가 넘치고 있는 것처럼 생각해. 푸른 밤, 카페 테라스의 커다란 가스 등이 불을 밝히고 있어. 그 위로는 별이 빛나는 파란 하늘이 보여. 바로 이 곳에서 밤을 그리는 것은 나를 매우 놀라게 해. 검은색을 전혀 사용하지 않고 아름다운 파란색과 보라색, 초록색만을 사용했어. 그리고 밤을 배경으로 빛나는 광장은 밝은 노란색으로 그렸어. 특히 이 밤하늘에 별을 찍어 넣는 순간이 정말 즐거웠어." - 고호의 편지 중


푸른 밤, 카페를 바라보며 그림을 그렸을 고호를 상상해 보았다. 예술가로서 생애 동안 늘 가난에 시달리며 고독했던, 그래서 어쩌면 비수기의 삶을 살았지만 나는 고호가 우리가 알고 있는 사실보다 훨씬 행복했을 거라고 생각한다. 적어도 많이 감탄할 줄 알고, 밤하늘에 별을 찍어 넣는 순간의 기쁨을 아는 사람이니까. 그리고 우리들의 여행을 떠올렸다. 친구도 나도 어떤 면에선 인생의 비수기를 보내고 있었기에 가능한 여행이었다. 미술관에서 보았던 그림들, 공원의 풍경들, 골목들, 많은 산책과 그보다 더 많이 주고받았던 이야기들. 그건 매번 감탄하고 밤하늘에 별을 찍어 넣는 순간들이었다.


여행의 마지막 날 우리는 기차를 잘못 타고 말았다. 기차는 분명 제시간에 왔고 파리행이라 한치의 의심도 없이 기차에 올랐는데 출발하는 순간 이건 뭔가 아니다 싶은 느낌에 친구와 나는 동시에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어떤 기운이 척추를 타고 스멀스멀 올라오는 게 싸해졌다. 사람의 직감이란 신기하기도 하지. 우리는 난데없이 '님'이란 도시에 불시착하게 되었고 가방을 들고 기차역 티켓 창구로 냅다 뛰어갔다. 파리에 가서 돌아가는 비행기를 타야 하는데... 


마음이 급하니 말도 꼬였다. 아를 역에서, 기차, 분명, 제시간에, 우리, 탔어, 근데, 이유, 몰라, 암튼, 잘못된 기차, 파리, 가야 해, 오늘! 우리말을 듣던  티켓 부스의 여자가 말했다. 표는 바꿔줄 수 있어. 근데 파리행 마지막 기차가 3분 뒤에 출발이라 너네 못 탈 것 같은데? 우리는 동시에 오우 노오오! 그러자 이야기를 듣고 있던 다른 직원이 오더니 티켓을 던지며 "일단 뛰어! 기차를 보면 칸이고 뭐고 따지지 말고 무조건 올라타! 행운을 빌어!" 친구와 나는 올림픽 백 미터 결승전에 출전한 선수처럼 달렸다. 역내를 달리면서 기차가 출발하는 승강장 위치 표지판 스캔에 1분, 승강장으로 가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1분, 기차를 향해 1분, 그리고 영화에서 처럼 기차를 향해 가방부터 던지고 올라탔다. 그리고 문이 닫히며 1초의 지체 없이 기차는 칼같이 출발했다.


이거 실화냐? 더 이상 움직일 힘도, 말할 힘도 없어진 우리는 비어있는 두 자리를 발견하고 일단 털썩 주저앉아 티켓을 확인했다. "오 마이 갓! 여기 우리 자리야. 봐봐. 게다가 무려 일등석이야!", "심지어 원래 타야 하는 기차보다 30분이나 일찍 파리에 도착한다고! 이럴 수가!", "그리고 솔직히 우리가 기차를 잘못 탄 거니까 표를 바꾸기는커녕 원래 새로 사야 하는 거 아냐?", "님 기차역 매표소의 그분들한테 감사 이메일이라도 써야 할까 봐" 


파리로 향하는 기차 안에서 친구가 말했다. "아까 기차역에서 마음속으로 기도했거든. 내가 무언가를 절실히 원하면 대부분은 이루어지는데 항상 그냥은 안 주시더라. 그걸 받기 위해 신은 나를 늘 뛰게 하셔. 오늘은 또 무슨 큰 선물을 주시려고 이렇게 심하게 뛰게 하나 했더니만. 아주 마음에 드는 선물이야. 근데 앞으론 좀 덜 뛰고 싶어ㅋ", "아무튼 너 덕분이야ㅋ 또 비수기니까 이런 행운이 다 있네."  


그렇게 비수기의 전문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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