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바라보는 시선
'사람은 가변적인 존재이다'.
대학 시절 은사님 한 분은 이 문장 속에 사회복지의 중요한 가치관이 들어있다고 설명하셨다.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 나빠질 수는 있어도 좋은 쪽으로 바뀌기는 어렵다 '는 통념을 뒤집어보자고. 그러면 이 말은 현재 어떤 부분이든 어려움이 있는 분들도 좋은 쪽으로 변화할 수 있다는 뜻이 된다. 내담자들의 어려움을 도울 때 긍정적인 변화가 가능하다고 믿는 것이 사회복지사들이 가져야 할 태도이다.
사회복지사들은 어떤 모습의 클라이언트를 만나더라도 지금 보이는 모습이 아니라 [앞으로 긍정적으로 변화할 모습]을 기대하며 바라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인간의 존재 자체가 지닌 존엄성을 표현한 그날의 강의는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사람의 본성은 변하지 않는다, 사람은 고쳐 쓰는 게 아니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어찌 보면 사회적 통념에 반대되는 듯한 가치관이니 언뜻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 뜻을 체감한 것은 현장실무를 하면서 다양한 내담자를 만났을 때다.
벌게진 얼굴로 심한 주취를 풍기며 몸도 못 가누며 상담실에 오셨던 알코올중독 환자, 경제적 지원을 받기 위해 거짓말을 했다가 들통난 가정, 아내의 외도를 의심해 자녀 앞에서 자해한 남편, 남편의 폭력으로 심한 내상을 입고 응급실에 왔다가 자녀들이 걱정되어 돌아갔으나 더 심한 상처를 입고 돌아온 환자, 외국인 노동자의 산재를 책임지지 않기 위해 도망간 사업주...
교수님이 이상주의자이셨나, 아니면 사회복지의 가치 자체가 너무 높은 이상인가 싶을 만큼 도저히 바뀌기 어려울 듯한 상황을 만난 때도 있었다.
그럼에도 '인간은 긍정적으로 변화할 가능성을 지닌 존재'라는 말은 살아갈수록 강력한 선언으로 다가왔다. 긍정적인 변화를 기대하며 바라보아야 내담자에 대한 진정한 존중이 가능한 경우가 종종 있었다.
때로는 문제해결이나 변화가 불가능해 보이는 상황에서도 실낱같은 가능성이 보이고, 그 적은 가능성이 삶의 변화를 가져오는 예는 실재했다. 다만 그 과정에는 긍정적인 변화에 대한 흔들리지 않는 믿음이 필요했을 뿐이다.
내담자를 이해하려는 노력을 놓지 않도록 나를 잡아주었던 말이 이제는 누구에게나 희망은 있다는 말로 재해석된다. 사회복지사들은 희망을 건져 올리는 사람들이었다.
꾸준히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한 방향을 찾아 각자의 속도로 걸으며 하루하루를 보내는 삶의 방식.
그날 교수님의 가르침이 준 교훈은 사람을 바라보는 올바른 시선이었다. 그러나 그 시선은 나를 먼저 수용할 때 비로소 내 안에 자리 잡을 수 있는 것이기도 했다.
사회복지사로 일하며 배운 깨달음들은 경단녀가 되고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도 내가 누군가를 바라보는 시각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렇다. 사회복지를 전공하고 현장에서 작은 희망을 찾아 건져 올리는 동안 정작 먼저 치유된 것은 바로 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