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이브의 기적

그날의 전화 한 통

by 온현

*예약발행 오류로 다시 발행합니다.



둘째 아들의 건강 때문에 사회복지 임상을 그만두고 대학 강의만 하던 무렵, 몇 년간 인터넷청소년상담사이트의 자원봉사자로 일한 적이 있다.


익명의 인터넷 상담은 오프라인 상담에 비해 청소년들이 쉽게 접근하기 쉬울 것이라 여긴 한 기관이 시작한 일이었다. 상주직원도 없는 신생 사이트의 상담 건은 많지 않았다. 올라오는 게시글은 또래관계, 이성교제, 학업, 가족과의 갈등 등의 내용이 대부분이었다.


관련 직종에 종사하는 전문가들이 교대로 게시판 관리를 했다. 자원봉사자들은 각자 담당 요일을 정해 시간이 되는 대로 상담글에 답변을 달았다.


상담 시작 후 첫 크리스마스이브.

다음날이 공휴일이니 인터넷 상담도 공식적으로는 이틀간 휴무였다. 저녁예배를 드리고 오는 길, 그날따라 문득 게시판이 생각나 들어가 보았다.

놀랍게도 새 글 알람이 반짝거렸다. 자살 예고글이 두 개 올라와 있었다.


첫 글은 00 분 이내에 자신이 살아야 할 이유를 상담해 주는 이가 없으면 죽으러 간다, 누군가 본다면 연락 달라는 글이었다. 두 번째 글도 같은 게시자. 자신의 문제 상황을 짧게 써 놓았다.



내가 그 글을 보았을 때는 이미 첫 글을 게시한 시점으로부터 삼십 분이 지나 있었다. 처음에는 종종 있는 장난글일까 싶기도 했다. 그러나 크리스마스이브 저녁에 굳이 유명하지 않은 사이트에 찾아와 이런 장난글을 올릴 가능성은 적어 보였다.
그래서일까, 자꾸 마음에 걸려 자원봉사자 연락망에 상황을 알리고 글에 남겨진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다행히 통화가 되었다.


장난이 아니었다. 죽음을 고민한 한 청소년이 실행 직전에 혹시 하는 마음으로 익명의 힘을 빌어 마지막 도움을 요청했던 상황이었다. 스스로를 죽음으로 몰기 전에 혹시 하는 마음이 들었단다. 살아야 할 이유는 없을지, 누군가 한 사람이라도 죽지 않아야 할 이유를 알려주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낯선 게시판에 글을 남긴 것이었다.



세계인이 그리스도의 탄생을 축하하는 공휴일. 어떻게든 마지막으로 살아야 할 이유를 찾으려 했던 자살기도자.


갈 곳이 없었던 십 대 후반의 피상담자는 인터넷을 계속 사용할 상황이 안 되었다. 배터리가 떨어질 때까지 전화로 계속 상담하며 설득했다.

무사히 크리스마스가 되었다. 다행히 공휴일 다음날 청소년 기관으로 바로 연결할 수 있었다. 이후에는 쉼터의 담당 사회복지사와 연락하며 직업훈련과 자립을 도왔다.


그 청소년은 꽤 오랜 시간 근황을 전해 왔다. 몇 년 후 조금 이른 나이에 결혼을 했고, 그 후 자녀를 낳고 잘 지내고 있다는 소식을 마지막으로 들었다.


그 청소년 상담사이트는 몇 년 운영하다 조용히 문을 닫았다. 그러나 인터넷에 남겨진 작은 흔적을 따라 간 누군가의 전화 한 통. 그 전화가 불씨가 되어 생명을 살렸던 그 해의 크리스마스 기간은 놀라운 기적의 시간이었다.


생명의 소생보다 더 큰 기적이 있을까.

어쩌면 한 상담사이트의 역할은 그 기적에 함께 한 것만으로 충분했을지도 모른다.


keyword
화, 목, 토, 일 연재
이전 09화그녀는 아름다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