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이자 직장인
이 글은 많은 문제의 벽에 부딪쳤던 사회복지사의 성장기 중 일부이다. 여기에서 일하는 엄마로서 느꼈던 출산과 육아의 벽을 빼놓기는 어렵다.
오래전 첫 아이를 제왕절개로 출산한 후의 일이다. 당시 법정출산휴가는 60일이 최대였다. 조산기로 인해 출산휴가를 일부 앞당겨 썼던 나는 산후 35일 만에 출근을 시작하게 되었다.
어렵게 입주도우미 이모님을 구했으나 남에게 손주를 못 맡긴다는 시아버님의 걱정에 아이를 시댁에 맡겨야 했다. 남편이 학생이고 내가 가장이었던 시기여서 쉴 수도 없었고, 무엇보다 당시에는 육아휴직이 거의 용인되지 않는 분위기였다.
나는 임신기간 중 과로로 유산기, 조기파수, 조산기를 다 겪고 어렵게 출산한 데다 빠른 업무복귀로 충분히 쉬지 못해 회복이 더뎠다. 설상가상 늦여름에 다시 근무를 시작해 에어컨 바람을 쐬는 바람에 업무 복귀 삼일 만에 심한 산후풍이 왔다. 퇴근 후 틈을 내어 찜질방에 다녀도 온몸이 시리고 추웠다. 몸이 아프니 마음도 무너졌다.
매일매일이 다른 영유아기, 첫 아이의 성장을 곁에서 지켜보지 못하는 초보엄마는 죄책감이 커져갔다.
책상 유리에 작게 자른 아기 사진을 끼워두고 근무하던 어느 날, 원장님이 내 사무실에 들렀다가 사진을 보셨다. 원장님은 " K 과장, 아기 사진인가 봐요?" 하시고는 다른 말 없이 일찍 돌아가셨다. 단지 그뿐이었지만, 근무에 지장 준다는 말을 들을까 봐 그날로 사진을 책상서랍에 넣어야 했다.
일하는 엄마라 직장에서 아이 때문에 일에 소홀하다는 평가를 받을까 신경 써야 하는 입장. 엄마가 되었다는 이유로 내 능력과 관계없는 평가를 받을까 걱정하는 상황이 서글펐다.
점심시간이면 사무실 한쪽에서 유축기로 모유를 짜서 냉동실에 넣었다가 미니 아이스박스에 넣어 퇴근 후 시댁에 가지고 갔다. 시어머니께서 무슨 일이 있어도 6개월은 젖을 먹여야 아이가 건강하다고 강권하셨기 때문이다. 아이가 다행히 모유도 분유도 잘 먹어서 혼합 수유가 가능했다. 젖을 먹이고 나면 아이를 재운 뒤 시댁 집안일을 해놓고 내 집에 돌아와 또 밀린 일을 했다. 집안일을 마치고 대학 강의 준비까지 마치면 새벽 두세 시였다.
이유식을 시작한 후로는 일이 더 늘었다. 시댁에 저녁 내내 있어도 정작 아이와 눈 한 번 맞추고 안아줄 겨를이 없었다. 회복이 덜 된 채 무리하는 나날에 몸은 낫지 않고 우울감, 죄책감이 커져 갔다. 출산 후 5개월쯤이 되자 나는 지칠 대로 지쳐 있었다. 도저히 마음이 안정되지 않아 하루는 다른 병원에 근무하는 선배에게 전화해서 슈퍼비전을 청했다. 회복되지 않는 산후우울증을 토로하며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울었다.
평소 친절했던 선배였지만 그날은 달랐다.
"K 선생, 정신 차려. 스스로 극복할 힘이 있는 사람이 왜 그래.
운다고 누구도 해결해주지 않아."
선배는 단호하게 현실을 지적해 주었다. 갑자기 정신이 번쩍 났다.
"누구도 대신해 줄 수 없으니 스스로 극복할 수밖에 없구나.
엄마이기 전에 전문직 여성이니 강해져야만 하는 거구나."
궁지에 몰리면 쥐도 고양이를 문다는데, 그 시절 아직 젊은 엄마쥐에게는 자신을 채찍질하는 길 외의 선택지가 없었다. 가장이자 엄마이면서 직장인이었던 나는 그렇게 산후우울증을 혼자 이겨내야 했다.
돌이켜보면 건강을 돌볼 새 없이 심신을 갈아 넣어가며 일해야 살아남았던 시대였고, 나는 한 부서의 나어린 책임자였다. 선배의 말은 나를 일으켜 악바리처럼 일하게 했지만, 그 조언이 최선의 도움이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때의 산후풍은 둘째를 낳고 나서도 무리한 탓에 쉬이 낫지 않았고 내 안에 깊이 뿌리내린 고질병이 되었다. 설상가상 둘째는 임신기간에 무리한 탓에 미숙아로 태어나 죽을 위기를 거듭 넘겼다. 결국 아픈 아이까지 두 아이들을 돌보기 위해 둘째가 네 살 되던 해 나는 정규직을 놓았다. 파트타임으로 대학 강의만 하며 일을 줄였지만, 산후에 쉬지 못하고 무리한 대가는 컸다.
십수 년이 흐른 뒤 나는 난치성 질환인 섬유근통증후군 진단을 받았다.
육아휴직은 꿈도 꾸지 못하고 결혼도 눈치가 보였던 시절. 결국 경력단절로 끝난 나의 고단한 분투는 서랍에 아기 사진을 넣어야 했던 그날, 이미 예견된 것이었을까. 아니면 임산부이면서도 충분한 병가를 쓰지 못하고 태아를 살리느라 출산휴가를 당겨 써야 했던 그때부터 시작된 것이었을까.
나에게 당시의 상황이 주는 이중의 책임감은 커다란 벽과 같았다.
지금은 출산휴가가 석 달, 남녀 모두 육아휴직이 가능한 시대이지만 출산율은 더 낮아졌다.
출산과 육아의 문제는 가정 내에서 대체인력을 구하는 것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경제적 부담을 줄여주는 것만으로는 해결이 안 되는, 부모자녀 모두를 위한 사회적 장치와 도움이 필요한 영역이기 때문이다.
그 시대부터 지금까지, 사회활동을 병행하는 엄마의 길을 선택한 이들에게 좀 더 나은 길은 없었을지.
지금은 이들에게 좀 더 나은 제도적ㆍ사회적 지원이 있으리라 믿지만, 과연 그때보다 월등히 아이를 키우기 쉬운 환경인지를 종종 생각해 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