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교란 무엇일까
그날따라 상담약속이 잡힌 것도 아닌데 자꾸 한 환자가 생각났다. 결국 퇴근하면서 병실에 들렀다 가기로 결정했다. 이틀 전 병실에서 본 환자의 상태가 좋지 않았던 것이 내내 마음에 걸렸다.
A 씨는 재발한 백혈병 환자였다. 처음 의뢰되었을 때에는 치료비 지원이 목적이었으나 일차 치료 후 6개월 뒤 재발하여 다시 의뢰되었다. 이후 1년 가까이 환자와 가족을 위한 심리적 지지상담이 함께 이어지던 중이었다.
2년째 투병 중인 청년은 늘 홀어머니를 염려했고, 어머니는 아들이 낫지 못할까 걱정이었다. 유난히 사이가 좋은 모자였다. 어머니는 유일한 삶의 희망인 아들을 놓지 못했다. 꼭 나을 수 있다고 적극적인 치료를 고집하셨다.
병실에 올라갔을 때, 오랜 치료에 따른 체력 저하로 힘들어하던 환자는 놀랍게도 혼자였다. 필요한 것이 있어 어머니가 잠시 집에 가셨다고 했다. 그 주 내내 40도 고열이 계속되어 환자의 피부가 마치 두세 겹으로 갈라진 삼베처럼 들떠 있었다.
그저, 퇴근 전에 와보고 가야 할 것 같았다고 인사를 건넸다. 환자는 말을 길게 하기 힘들었지만 자신은 준비가 되었다고, 고마웠다고 힘겹게 말하는 눈빛이 맑았다. 내일 다시 올게요, 인사하고 나오며 왠지 마지막 만남일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다음날 출근하자마자 A 씨 어머니에게서 연락이 왔다. 이른 새벽, 어머니가 집에서 오자마자 환자의 생명이 떠나갔던 것이다. 내가 알기로 그 가족은 장례준비를 도와줄 친척도 경제적 여유도 없었다.
사망 후 종결된 환자의 장례식을 챙기는 것이 내 일은 아니었지만 2년간 상담해 온 가족을 돕고 싶었다.
당시 나는 첫아이 임신 5개월째였다. 공교롭게도 A 씨보다 열흘쯤 앞서 나의 친할머니께서 돌아가셨다. 보수적인 양가 부모님이 태교에 좋지 않다고 적극 반대하셔서 빈소에 가보지도 못했다. 과연 태교가 무엇인지 고민이 되던 즈음, 또 장례식과 마주친 것이다.
아마도 태어날 아기를 귀히 여기는 마음, 안전하고 무사하게 태어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태교가 시작되었을 터이다. 좋은 것, 아름다운 것만 보고 음식도 가려먹는 것이 태교라고 들었다.
그러나 나는 사회복지사였다. 응급실에서 자살기도환자나 가정폭력피해자의 의뢰가 오면 퇴근하다가도 가서 상담해야 하는 직업을 가졌다. 아프고 힘든 환자들을 돕는 것이 나의 일이었다.
장례식장에 가기 전, 아이의 태명을 부르며 배에 손을 얹고 이야기해 주었다.
"엄마는 일시적으로 힘든 상황에 처한 분들을 돕는 게 직업이야. 너는 엄마와 함께 응급실도 갔었지. 곧 장례식장에도 갈 거야. 고운 것, 좋은 것만 가려서 보여주지는 못할 것 같아. 하지만 엄마는 oo이가 그 경험을 통해 포용심과 따뜻한 마음을 가진 성품으로 태어나기를 바라며 기도해. 엄마와 너는 지금 특별한 태교를 하는 중이란다."
기도인지 태담인지 모를 뱃속 아기와의 이야기를 마치고 장례식장에 갔다.
홀어머니는 썰렁한 빈소에 환자를 간병하던 차림 그대로 넋을 놓고 앉아있었다. 상복을 마련할 경황도 돈도 없었던 것 같다. 급히 상복으로 입을만한 단정한 검은 투피스와 스타킹, 구두를 사다 드렸다. 검은 옷으로 갈아입은 고인의 어머니는 그제야 상주 같았다. 장례식장 비용 일부를 지원하고 이런저런 일처리를 돕느라 짧은 장례기간이 금세 지나갔다.
A 씨 어머니는 장례를 마치고 나중에 전화를 주셨다. 임신 중에도 장례까지 도와주어 고마웠다고. 헐렁한 근무복을 입었어도 티가 났었나 보다.
이후 출산 때까지 전보다는 마음 편히 일할 수 있었다. 태교를 잘 못하는 엄마가 아니라 내 나름의 태교를 한다고 생각하자 부담이 줄어들었다. 그런 엄마가 나 하나뿐이었겠는가.
엄마의 직업 때문에 특별한 태교를 경험한 큰 아이는 교사가 되었다. 유난히 심리적, 경제적 어려움이 있는 학생들에게 관심이 많고 타인의 정서에 민감한 편인 모습을 보면 그때 장례식에 가기 전 복중 아이와 나눈 대화가 떠오르곤 한다.
지금 아들의 성품이 그때의 태교 덕분인지 과연 태교가 무엇인지 엄마인 나는 아직도 잘 모르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