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머리의 자원봉사자
고령의 자원봉사자
예전에 내가 사회복지사로 근무했던 병원에는 여든이 훌쩍 넘은 최고령 자원봉사자가 계셨다.
병원 직원들은 이 분을 전도사님이라 불렀다. 여기에는 이유가 있었다. 이분은 근처 교회의 은퇴 전도사님이었기 때문이다. 자그마한 체구와 하얀 머리. 흰 피부와 오목조목한 이목구비 탓에 70대가 채 안 되어 보이는 동안이셨다.
첫 만남에서 자신은 아직 잔병치레 없고 건강하니 자원봉사를 할 수 있다고 하셨다. 개원초기라 자원봉사자의 손길을 필요로 하는 곳이 많다는 소식을 듣고 직접 봉사팀을 모아 온 적극적인 분이다. 사실 담당 사회복지사로서는 조심스러울 수 있는 연세이지만 자원봉사자 연령 제한이 없어 봉사를 시작하실 수 있었다.
이 봉사팀은 매주 정해진 시간에 병실을 방문해 환자들에게 무료 도서대여를 했다. 무료한 병실생활에 도서를 가져와 빌려주어 인기 있는 자원봉사였다.
환자들에게 단정한 모습을 보이기 위해 늘 연한 화장과 단정한 파마머리로 오시던 전도사님. 더운 날이면 쉬는 시간에 화장을 꼼꼼히 고치며 외모를 가꾸시는 모습이 20대 못지않았다. 꼿꼿한 자세로 늘 환한 웃음과 함께 시원시원한 화법을 구사하는 미인이셨다.
조직해 오신 팀은 대부분 50대의 주부이셨고 이 봉사자께서는 내 할머니 연배. 당시 30대 초반의 나는 상대적으로 어린 담당직원이었다. 그럼에도 전도사님은 솔선해서 내게 깍듯하게 존대하며 예의를 지키셨다. 이런 태도는 나와 다른 자원봉사자들과의 관계에 큰 도움을 주었다. 나이 상관없이 소탈하게 사람들과 잘 어울리는 분이라 처음의 염려가 무색했다. 전도사님의 근무날은 활기가 넘쳤다.
일 년이 지났을 때 그분은 병원 최초의 모범 자원봉사자상 수상자가 되셨다.
그렇게 계절이 바뀌고 해가 바뀌었다.
헤어짐의 시간
4년여의 시간이 지났다.
봉사기간이 길어지면 자연스레 개인사를 듣게 되기도 한다. 할머님은 첫 부인을 사별하신 분과 결혼해 나이차 없는 남편의 외아들만을 열심히 키워내셨다. 그 아드님이 일찍 세상을 떠나 장성한 손자와 살면서 교회 여전도회 일 등 다양한 활동을 해오셨다. 말씀만 들어도 그동안의 삶이 쉽지만은 않았을 터였다. 그 옛날에 대학을 나오고 사회생활을 계속하신 분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세대차이보다는 배울 점이 많았다.
그러던 어느 날 봉사를 잠시 쉬어야겠다는 전화가 왔다. 평소의 듣기 좋은 또렷한 목소리가 아니었다. 몸이 좀 힘들다 하셨다. 체력이 회복되면 곧 다시 올 테니 자리를 남겨놓아야 한다는 부탁이 이어졌다. 4년 넘게 개근하셨던 분이라 다시 뵐 수 있을 줄 알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편찮으시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할머님은 노환으로 돌아가실 때까지 다시는 봉사하러 오시지 못했다. 얼마 뒤 손자분께서 장례를 마치고 전화를 주신 것이 마지막 소식이었다.
아마도 J 전도사님은 천국에서도 여전히 특유의 발랄한 모습으로 행복하게 지내고 계실 것 같다. 그 후에도 그분과 함께 오셨던 자원봉사팀은 오랫동안 병원의 환자분들을 돕는 든든한 손길로 남았다.
지혜로운 어른을 추억하며
나이라는 사회적 편견의 벽을 예의와 사랑, 겸손함으로 부드럽게 돌파해 간 할머니 봉사자.
J 전도사님은 정말 아름다운 어른이셨다. 꽤 긴 시간을 뵙는 동안 주변 사람들을 불편하게 하신 적이 없고 오히려 유머감각이 뛰어난 분위기 메이커이셨던 분이다. 나이를 앞세워 대접받으려 하는 어르신이 아닌 주위를 챙기고 섬기는 삶을 보여주신 분이라 함께 일하는 동안 진정한 어른이 무엇인지를 배울 수 있었다.
살면서 나이가 걸려 무엇인가를 포기하고 싶어질 순간이면 종종 하얀 머리의 특별한 자원봉사자님을 떠올렸다. 생의 마지막 계절까지 타인을 도우며 살아가셨던 어른. 그분에게서는 늘 은은한 분내가 났었다. 이 분에 비하면 내 나이쯤이야, 내게도 용기 한 줌이 얹어지는 듯했다.
끊임없이 새로운 일에 도전하고 타인을 돕는 삶. 나이를 의식하지 않고 늘 새로운 마음으로 오늘을 사는 분을 이미 보았으니까.
이 분을 통해 생물학적 나이가 주는 편견에 지지 않고 조화롭게 살아갈 지혜를 배웠던 이가 나만은 아니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