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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심의 또 다른 이름

집중력과 몰두

by 온현

집중력이 좋은 사람들이 각광받는 시대이다. 집중력이란 무엇인가에 몰두할 수 있는 힘이다. 한 번에 오래 몰두할수록 집중력이 좋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러나 뛰어난 집중력이 언제나 좋은 것일까?


내 경우, 집중력이 꽤 좋았다. 무언가에 꽂히면 적당히가 안 되고 끝을 보아야 하는 기질이기도 해서 보고서이든 과제물이든 시작하면 한 번에 마무리해야 손을 놓았다.



책을 들면 시리즈가 끝나야 놓아지고, (그래서 망친 중간고사, 기말고사들아, 미안했다!) 퀼트에 빠졌을 땐 아픈 관절을 무시하고 밤새 바느질을 할 수 있었다.


집안일도 어쩌다 꽂히는 날이면 눈에 보이는 모든 일이 끝날 때까지 해야 직성이 풀렸다. 지병이 생기고 나서도 어쩌다 시동이 걸리면 이 꼬리를 물고 계속 눈에 들어왔다. 당연히 부실한 체력이 따라주질 못했고 수시로 탈이 나서 지인들의 걱정을 많이 듣고 살았다.

요즘은 나이가 들어가니 그나마 조심하게 된다 싶더니만 얼마 전 또다시 무리를 하고 말았다.


치료받으며 들은 조언과 반대로 움직인 날이었다.

그 조언은, 우리 몸은 쓰는 만큼 약해지고 노화가 빨라지니 건강하게 살고 싶으면 과도하게 무리하지 말라는 것이었는데.


하필 설거지하려다 기름기 묻은 레인지 후드가 눈에 딱 거슬릴 게 뭔가. 정신 차리고 보니 어느새 밀렸던 일을 몰아서 하고 있었다.



주방 싱크대 위 먼지 제거부터 레인지 후드 청소로 시작해서 주방가구와 거실, 화장실까지. 빨래도 해야 하고, 화분도 돌봐야 하고, 차도구도 씻어야 하고... 하나 끝나면 또 하나가 보였다.


끝없는 도미노게임처럼 온 집안을 쳇바퀴 돌며 치운 날. 열거하기도 숨찬 자잘한 일들을 연속으로 해치웠다. 마치 젊은 시절로 돌아간 듯 오랜만에 쉬지 않고 일하며 냉장고에 냉침차까지 가득 만들어 넣었다. 그나마 분리수거물품을 내놓는 일은 남편 몫이라 다행이었다.

중간에 점심ㆍ저녁도 간단히 차려 먹고 설거지도 바로 마쳤다. 열심히 치워놓고 설거지가 밀리는 건 주부에게 모독이지. 일을 시작하면 딴짓 한 번 않는 건 다름 아닌 집중력 탓이다. 덕분에 오전 일찍 진료 다녀와서 늦은 점심 후 시작한 일이 밤 11시가 되어서야 마무리되었다. 죽어라 해도 내 만족일 뿐 티도 안 나는 집안일이건만.


날, 온몸이 쑤셔오는 상태에서 일을 마치고는 또 무리했구나, 반성하지 않을 수 없었다.


20대부터 40대까지는 오늘 안 하면 죽을 듯이 활동을 많이 했다. 대부분 일의 성과는 좋은 편이었다. 집중력을 최대한 발휘해 말 그대로 나를 갈아 넣으며 몰두했기 때문이다. 직장 일도, 집안일도, 며느리ㆍ딸 노릇도... 사람이면 동시에 다 잘 해낼 수 없는데 나는 욕심이 많았나 보다.


문제는 체력의 한계와 발맞추지 못했다는 것이다. "나 아직 이만큼 할 수 있어", 이 날 튀어나온 욕심의 소리. 예전에 버렸어야 할 과욕을 따라 집중한 결과는 심한 몸살이었다.


몸에 밴 습관은 뿌리 뽑기 어려운 잡초와도 같다. 몰두할 수 있는 집중력은 좋은 것이지만 무엇이든 과유불급이다. 건강이 따라주지 않는 과한 집중력은 독이 든 성배인 것이다.

늘 후회하면서도 다시 장착하게 되는 [지나친 몰두와 체력을 무시한 집중력의 발휘]. 어쩌면 욕심의 또 다른 이름일 것들을 덜어내자고 몇 번째일지 모를 다짐을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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