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직 걸어가고 싶다
글을 잘 쓰고 싶다,
글 쓰는 사람으로 살고 싶다...
일곱 살, 학교에서 처음 배운 한글 덕분에 책과 사랑에 빠진 이후 나의 오랜 꿈이었다.
고 2 때 신앙을 갖게 되면서 하고 싶은 일이 아닌, 누군가 해야만 하는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문학가가 꿈이던 소녀는 당시만 해도 무척 낯선 직업이던 사회복지사가 되었다. 실무를 하다 제대로 일할 수 있는 전문성을 갖추기 위해 대학원에 갔고, 뒤늦게 공부와 사랑에 빠졌다. 박사진학 전 실무경력을 채우기 위해 일하던 중 결혼을 하게 되었다. 연년생의 육아와 결혼에 수반된 며느리로서의 의무에 밀려 학자의 꿈도 오랜 시간에 걸쳐 바스러져갔다.
40대에 건강과 여러 고민으로 일을 놓기 전, 어린 시절의 꿈이 다시 떠올랐다.
"나도 내 이야기를 쓸 수 있을까?"
십 년의 대학강의를 접자마자 학부로 편입해 국문학을 전공했다. 2년간 모든 전공과목을 다 듣고 졸업했지만 글을 어떻게 써야 할지는 누구도 알려주지 않았다. 그 사이 건강은 계속 나빠졌고 시아버님이 폐암을 앓다 돌아가셨다. 원래 전공으로 박사과정을 하기엔 이미 늦은 나이였고 국문학 공무를 계속할 상황도 아니었다.
글을 쓰는 일이 내가 할 수 있는 것일까 고민만 했던 시기. 결혼 후 어쩌면 가장 마음이 힘들었던 시기이기도 했다. 공부는 나의 작은 숨구멍이었다. 혼자 끄적이며 글로 생각을 정리하는 오래된 습관은 여전했지만 그뿐이었다.
그렇게 십여 년이 또 흘렀다. 자가면역질환을 앓다 췌장암이 되셨던 시어머님을 집에서 간병하다 보내드렸고, 미숙아로 태어나 우여곡절을 겪으며 아픈 손가락으로 자란 둘째 아들이 이른 독립을 했다. 긴장이 풀리니 최소한의 건강을 회복하는 데에만 삼 년이 걸렸다.
결혼 이후 가족 우선으로 살았던 생활의 축이 조금씩 나 자신에게로 기울었다.
다시 글을 써보고 싶어졌다. 지난 4.5월쯤부터였을까, 그저 떠오르는 대로 글을 적어보기 시작했다.
어떻게 쓸지, 쓸 수는 있을지 고민하다가 글이 몇 개 쌓이자 브런치스토리 작가 응모를 했다. 오랜 기간 스마트폰 하나로 논문 쓰기, 과제 내기, 일기 쓰기, 이메일 등 모든 글쓰기를 해 왔다. 그런 내게 작가의 서랍에 글을 공짜로 저장할 수 있다는 것은 큰 매력이었다. 그렇게 글을 편히 모아두기 위해 얼렁뚱땅 브런치 '작가'가 되고, 지난 6월부터 처음으로 누군가에게 보이기 위한 공식적인 글쓰기를 시작했다.
브런치 글쓰기를 시작하고 얼마 안 된 지난 7월 어느 날, 새 글 알림에 내 필명이 뜬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평론을 읽기 위해 구독하고 있던 김왕식 평론가께서 내 글을 논해주셨다. 내용을 다 읽고는 가슴이 떨렸다. 내가 가장 쓰고 싶었던 이야기 중 하나인 그녀와의 추억담이 전문가 평론의 소재가 되다니.
이 작은 사건 이후 남편이 노트북을 선물로 사주었다. 열심히 써보라는 무언의 격려였다.
어떤 형태로든 글 쓰는 삶을 계속 꿈꾸어도 되는 것일까?
그날 이후 조금씩 내면의 소리가 나를 부추겼다. 인생의 종반전을 남겨둔 나이, 남들은 하던 일도 접을 때인데. 부족한 체력과 지병에도 불구하고, 계속 꿈꾸며 글을 쓰고 싶어졌다.
그래도 좋을까? 나, 아직 꿈을 향해 걸어갈 수 있을까? 자문하며 오늘도 글을 쓴다.
(아래는 내게 용기를 준 글이다)
https://brunch.co.kr/@3cbe431230de42b/436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