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담 비틀어보기
<벼의 항변>
"내게
무거운 의미를
얹지 말아 줘"
고개 숙여 부탁하는 소리는
너에게 닿지 않았나 보다
네 마음대로 휘두른 낫질에
볍씨와 짚단까지 내어주고도
여전히 '겸손'에 갇혀 있으니
" 난 그저
볍씨가
버거웠을 뿐이야"
성숙한 인격이 될수록
고개를 숙이는 것이라
나를 제한해 온 너희들에게,
무겁게 지고 있는
또 다른 이름의
작은 볍씨 하나 없었을까?
언젠가 여행길에 추수 직전의 가을 논을 본 적이 있었다. 황금빛 들판은 무척 아름다웠다. 바람에 흔들리며 휘청이는 휘어진 벼들을 보며 문득, 익숙한 속담 하나를 떠올렸다.
한국사람들이 겸손을 말할 때 흔히 사용하는 말이 있다.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 벼가 익어 휘어진 모습이 자랑하지 않는 겸손한 인격을 말하는 것이라 배워왔던 속담이다.
사실 벼가 무슨 생각이 있었을까.
벼는 그저 어느 날 가냘픈 몸피에서 자란 열매가 버거워져 목이 굽었을 것이다. 머리가 무거워 이제 날 좀 털어줄 때가 되었다고 말하는 중인지도 모른다. 그 벼를 보며 선조들은 겸손을 떠올렸다. 아는 것을 자랑하지 않고 나서지 않는 것을 성숙한 인격이라 믿는 사회적인 분위기 탓도 있었으리라.
속담은 어떤 현상이나 이야기에 비유적 의미를 부여한 사회적 약속이다. 하나의 관습적 언어이기에 절대적이지는 않다. 그럼에도 우리는 마치 불변의 진리처럼 속담을 사용한다. 그렇게, 한국 사회에서 익어서 고개 숙인 벼는 성숙한 자의 겸손을 상징하는 언어로 고정되었다.
그러나 인간에게는 자신만의 렌즈로 세상을 바라보려는 성향이 있다. 하나의 현상에도 사람에 따라, 사회와 시대에 따라 수많은 이론과 해석이 따라붙는다. 수학 기호처럼 정확한 합의가 존재하는 영역이 아닌 한 입장의 차이는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다. 어느 각도에서 보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대상일 뿐이다. 바라본 시야가 달랐다는 이유로 어느 한쪽을 잘못이라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당연히 고개 숙인 벼에 대한 다른 해석도 나올 법하지 않은가. 만약 '수능시험 문제라면 누구나 '실력 있는 사람일수록 겸손한 인격을 갖추어야 한다'는 뜻을 선택할 테지만.
남편의 일로 미국에서 잠시 살았던 때, 학교의 학부모상담이 기억난다. 한국에서 모범생이던 첫째는 내성적이고 조심성 많은 성격이었다. 형과 달리 엉뚱하고 호기심이 많아 평소 질문이 다양했던 둘째는 한국에서 나댄다는 말을 듣기도 했었다.
미국 학교 선생님들의 평가는 어땠을까?
첫째의 담임선생님은 아이가 영어를 잘하는 편인데도 자신 있게 나서지 못할 때가 있다고 소극적인 면을 걱정했다. 반면 둘째를 맡은 선생님은 아이를 아낌없이 칭찬했다. 동양계 학생들이 대부분 의사표현에 소극적인데 이 아이는 드물게 적극적인 태도를 지니고 있어 발전이 빠르다는 것이었다. 한국에서는 수업진행을 방해하는 질문쟁이라고 배척받았던 기질이 미국에서는 창의성이 뛰어난 자질로 받아들여졌다. 실제로 둘째는 미국 주정부가 주관하는 영재교육프로그램에 선발되어 미국 체류기간 동안 무료로 영재교육을 받을 수 있었다.
위 속담대로라면 한국 사회에서 둘째 녀석은 고개를 뻣뻣이 든 미성숙한 벼였다. 단지 거주하는 지역사회가 바뀐 것만으로 아이는 긍정적인 성품의 소유자로 인정을 받았다. 즉, 벼가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는 속담의 해석은 관점에 따라 달라질 수도 있다는 뜻이다. 더욱이 시대가 바뀌면서 지금은 자기 자신을 브랜딩 하고 마케팅하는 것이 익숙한 세대들이 주류가 되어간다. 교육에도 다양성이 강조되는 시대가 되었다. 겸손이 쓰일 때와 확실한 자기주장이 필요한 상황이 함께 존재한다.
어릴 적 어머니는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이해 못 할 일이 없다고 가르치셨다. 그 영향인지 나는 평화주의자로 자라서 "네 말도 옳고 네 말도 옳다"라고 했던 황희 정승의 포용적 태도를 좋아한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일은 하나의 방향으로 귀결되어야 할 수도 있다. 그래도 가끔은 황희 정승 같은 허허로움이 우리의 긴장된 오늘을 다독이는 위로가 되지 않을까.
찬반양론, 양대 대립구조가 강화된 사회, 정답이 하나인 사회가 아니라면, 흑백논리를 벗어나 다양성을 인정하고 서로 존중해 줄 수 있다면, 세상이 훨씬 평화롭고 여유로울 지도 모른다.
잘 익었어도 고개를 숙이지 않는 벼들도 있을 것이다. 겸손의 덕목은 계속 이어질 듯하지만 자신을 확실히 드러내기 좋아하는 이들에게도 질타가 아닌 칭찬이 주어진다면? 어쩌면 속담의 뜻도 바뀌어야 하지 않을까 발칙한 상상을 해 보게 된다.
인정해 주자. 어떤 벼는 그저 버거워서 고개를 숙였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