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늙어가기
40대부터 누군가 내게 삶의 목표를 질문하면 대부분 나의 대답은 " 잘 늙어가기, 죽음을 향해 잘 걸어가기"였다.
태어난 이상 누구나 한 번은 죽는다. 그러므로 죽음을 잘 맞이하는 준비가 삶의 목표라 생각했다. 그러나 이것은 단순히 '잘 죽어가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잘 살아가야 잘 죽을 수 있다. 그래서일까 더 나이 들었을 때 나는 어떤 모습일까를 종종 상상하곤 했다.
40대 후반에 본 영화 '송포유'는 내가 되고 싶은 노년의 모습을 고민하고 구체화하는 데 작은 영향을 끼쳤다.
영화는 노년의 남편 아서와 아내 메리언의 삶을 그렸다. 아서는 자신을 이해하는 따스한 부인 외의 사람들에게는 무뚝뚝하고 완고한 노인이다. 아서와 달리 메리언은 사람들과 두루 관계가 좋은 따뜻한 감성의 소유자다. 딱딱한 아서의 유일한 친구였던 메리언. 시한부 판정을 받고도 합창단 연습에 매진했던 메리언이 사망한 후 아서는 바뀐 상황에 적응할 수밖에 없게 된다.
완고한 기질로 망가졌던 아들과의 관계를 다시 돌아보고, 부인이 사랑했던 합창단 활동을 대신하며 조금씩 바뀌어 가는 것이다. 영화는 아서를 통해 변화를 힘들어하는 노인의 특성과, 주변의 지지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준다. 아내를 잃은 아서를 돕는 사람들, 그리고 서서히 사람들과 소통하기 위해 노력하며 변화되는 아서의 모습이 진한 감동을 주었다.
영화 초반 이서의 모습은 보수적이고 완고했다. 비슷한 성품이셨던 시아버님과 그 아버님을 닮은 남편의 노년을 저절로 상상하게 되는 캐릭터였다. 마침 남편도 아들들과 갈등을 겪고 있었다. 개인적인 경험 때문에 더 깊이 감정이입이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이 영화를 본 후 내가 바라는 노년의 모습이 구체적으로 그려지기 시작했다. 남들은 재테크나 자녀의 학업을 고민할 시기였지만, 부모님의 노년을 가까이서 바라본 나는 다가올 노년을 상상했다.
지금 내가 바라는 노년의 나는 이런 모습이다.
노인의 특성 중 하나가 사고가 고착되는 것이라 한다. 그러나 나는 언제나 사회에 대한 관심이 있기를 바란다. 새로운 지식을 향한 목마름이 있는 사람이기를, 새로운 상황과 지식에 유연하게 반응할 수 있는 지혜가 있기를 바란다.
세월이 가며 두뇌회전은 어쩔 수 없이 느려지겠지만 호기심을 잃지 않는 나날이고 싶다. 기존의 고정관념이 편견이 되지 않도록 늘 경계하며, 젊은 이들의 의견에 듣는 귀가 열려있는 유연한 삶이면 좋겠다. 더 나이 들었을 때, 마음이 딱딱한 자기중심적인 고집쟁이가 되지 않기를 바란다.
말랑한 고무찰흙처럼 필요한 곳에 잘 어울리고 섞이어 무슨 모양이든 될 수 있는 노년이라면 얼마나 멋질 것인가. 남은 시간 동안 의미 있는 관계가 더 많아질 것 같다.
주름이야 나이에 맞게 생기더라도 미소가 어울리는 고운 표정주름이 있는 모습이었으면 한다. 늙어가는 나를 받아들이고 자신 있게 웃을 수 있도록.
무엇보다 노년의 나는 언제나 타인을 향한 칭찬과 배려를 잊지 않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주인공의 자리를 내어주고 남은 빈터에 상실감 대신 매일의 감사와 기도를 채우는 시간이길... 예의 바른 어른, 모국어가 따뜻한 사람으로 늙어간다면 좋은 사람들과의 관계가 계속 이어질 것이라 믿는다.
사람들을 향해 지갑을 열 수 있도록 조금은 여유가 있는 경제적ㆍ심리적 형편이라면, 그리고 나이보다는 나은 체력을 유지해서 주변에 걱정을 끼치지 않을 정도라면 금상첨화이다. 때로는 체력에 맞게 불필요한 관계들을 줄이고 내가 우선 감당해야 할 사람들을 사랑하는 일에 집중하는 결단력도 필요할 테지만.
이런 모습이라면 생의 마지막 자리를 향해 당당히 걸어갈 수 있지 않을까.
오늘도 나는 멋진 노인이 되기를 꿈꾸며 즐거이 나의 시간을 걸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