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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록 May 10. 2019

어떤 무관심

어쩌다 마주친 그대 No16

회식이 끝나고 버스를 탔다.  10시가 조금 넘은 시간.  을지로 입구에서 탄 버스 안에는 수요일,  가까스로 한 주의 절반을 넘긴 이들의 고단함과 피로함이 잔뜩 늘어져 있다. 버스가 출발하고 5분쯤 지났을까. 헤드폰에서 이상한 소리가 난다. 으으흑…으흐흐흑. 내가 엉뚱한 노래를 틀었나 싶어서 음악 앱의 플레이리스트를 본다. 아니다. 평소에 듣던 노래고, 그 노래에는 그런 코러스는 없다.  


다시 가만히 듣는다.  

소리는 사라진 듯하더니 다시 들린다.

이상하다 싶어 헤드폰을 벗어보니, 현실의 소리다.


버스의 뒤쪽에서 들려오는 소리. 제일 뒷좌석에 앉아 있는, 20대 초반쯤 되어 보이는 청년이 자신의 귀를 감싸고 고개를 앞뒤로 흔들며 소리를 낸다.


으으으흐흐흑 허어어거어흐어걱…..


그의 소리는 점점 커지고, 그의 옆에 앉은 어머니로 보이는 중년의 여인은 아들을 달래려 애쓴다.

“OO야, 괜찮아. 왜 그래? 응?!”

그녀의 목소리는 그런 상황을 종종 겪는 이가 가질 수 있는 차분함을 띄었지만, 동시에 그런 상황이 닥칠 때마다 느낄 수밖에 없는 곤혹스러움이 함께 느껴진다.


그 소리에 한 번씩 뒤를 돌아보던 이들도, 곧 그 소리가 없는 듯이 자신만의 생각에 잠겨 든다. 새로 버스를 탄 이들만 다시 한번 그 소리에 뒤를 돌아보지만, 역시나 그 소리가 없는 듯 가만히 창밖을 바라본다.  


그 사이에 그의 흐느낌은 점점 커지고 작아지기를 반복하고, 어떤 일정한 패턴을 따라 때로는 한 편의 운율처럼 때로는 한없이 거슬리는 소음으로 다가온다. 더 이상 아무도 돌아보지 않고, 누구 하나 뭐라 말하는 이들도 없다. 그리고 그 소리는 계속 이어졌다.  30분 남짓, 버스를 내릴 때까지 그 소리는 이어졌다.  내릴 즈음 지켜본 중년 여인의 표정은 체념에 가깝다. 아마도 내가 내리고 나서도 그 소리는 계속 이어졌을 테다.


그것은 무척이나 건조하고 차가운 풍경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은 어떤 따뜻함의 모습이기도 했다.

그러니까 그 모든 것들이 참 고마운 것이었다. 그것은 도시가 지니고 있는 어떤 무관심, 혹은 차가운 외면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어떤 무대와 같은 것이었다.  '무관심을 가장’해주던 버스 기사와 동승객들의 모습은 묘한 공모자들의 모습이었고, 그들은  혹여 그 모가 불편할 수 있을까 애써 함께 모른척해주었다.


그것은 고단하지만, 따뜻한 도시의 뒷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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