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 글이나요.
작년까지 EBS 문제집 집필진을 하면서 자유 글쓰기에 몹시 목말라 있었다.
독자의 기대가 명확하고, 틀이 있고, 수도 없는 검토를 거치며, 또 어찌 보면 어떻게 써도 비난받을 수 있는 문제집을 집필하면서 나의 사고가 점점 굳는 느낌이었다.
글감을 찾기 위해 다독을 했지만 글을 읽으면서도 이걸 어떻게 문제로 만들까에 초점을 두다 보니 재미없기는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문제집 집필은, 문제집 집필에 진심인 능력 있는 누군가에 의해 언제나 대체될 수 있지만(나는 진심이 아니었어서 그렇게 힘들었나 보다) 내 경험을 쓰는 것은 나만이 할 수 있는 것이다.
10여 년 전부터 운영하던 네이버 블로그에 글이 멈춘 지 오래.
소액의 수익이 나면서 무려 겸직 신청까지 했는데 말이다.
중학교 때부터 다이어리를 쓰고, 10년 넘게 자질구레한 경험까지 기록했던 나는,
작년 휴직을 하면서 다시 본격적으로 기록을 시작되었다.
나는 가벼운 노트북을 가방에 꼭 들고 다닌다. 블로그에 글을 쓰는 것은 어디서든 가볍게 쓸 수 있다. 브런치에는 글감이 떠 오를 때 그때그때 문장을 써서 저장해 둔다.
플랫폼에 따라 플랫폼이 원하는 글쓰기가 있고, 나도 플랫폼에 맞게 쓰고 싶은 주제를 나누어두었다.
아이들과 어디를 다녀왔었는지 그곳은 어땠는지, 아이들과 뭘 먹었는지, 그런 세세한 기록은 네이버 블로그에,
정보글을 찾다가 발견하고 알게 된 것을 정리하는 것은 티스토리에,
나는 요즘 어떤 생각으로 살고 있는지, 오늘 하루는 어떤 기분이었는지, 어떤 인사이트가 생겼는지에 대해서는 브런치에.
지나치게 개인적인 글쓰기만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고찰을 해보지만
아이들과 어딜 가고, 뭘 먹고의 경험의 기록은 그곳을 방문할 타인에게 도움이 될 것이고,
내가 어떤 어려움을 겪고, 어떤 느낌이었는지, 그리고 그 시기를 어떻게 지나갔는지에 대한 기록은,
마치 나의 프로필 사진에 쓰여 있는 것처럼 누군가의 survival guide가 될 수도 있다.
One day, you will tell your story of how you've overcome what you are going through now, and it will become part of someone else's survival guide.
내가 발달장애 아이를 키우는 다른 부모를 보며 '아 이렇게 살 수도 있구나! 나보다 더 어려운 상황인데도 잘 이겨내셨네.' 라며 눈물을 훔쳤던 경험처럼, 내가 ADHD와 자폐가 있는 두 아이를 키우며 느끼는 힘듦을 기록해 두면 누군가는 또 그 글을 읽고 '아 이런 사람도 그냥 살아가는구나' 하고 힘을 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글을 쓴다. 그래서인지 가장 애착을 갖고 정성 들여 글을 쓰는 곳이 브런치이다.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라는 최근 넷플릭스 드라마에서 번아웃이 되어 가상치매 증상이 온 워킹맘에게 의사 선생님께서 '자서전을 써보세요, 부정적 감정에 체크해 보세요'라는 처방을 내리시는 장면이 나온다. 정신병원에 입원한 이 워킹맘은 처음에는 망설이며 몇 줄 못쓰다가 나중엔 술술 써내려 간다. 아이를 낳고 나서 부정적인 감정이 특히 많아졌다는 걸 확인하면서 그 감정을 하나씩 긍정적으로 바꾸어 나가보자고 한다. 그렇듯 글쓰기는 자기감정을 확인하며 치유하는 효과가 있다. 나도 브런치에 나의 특별한 아들들에 대한 내 감정을 쓰면서, 내 기대에 한참 못 미치는 남편에 대해 쓰면서 부정적인 감정이 많이 정리되었다. 지금도 가끔은 롤러코스터 타는 듯한 감정이 들 때도 있지만, 계속해서 써나갈 거니까, 그 또한 시간이 흐르며 정리되지 않을까.
2024년에는 글쓰기 강의를 듣기로 했다.
아무렇게나 일기처럼 쓰던 글 보다, 원래 내가 브런치에 글을 쓰려고 했던 목적에 맞게, 즉, 누군가에게는 내 글이 survival guide가 될 수 있도록. 좀 더 가독성 있는 글을 쓰기 위해 글쓰기 강의를 수강한다. 2024년 드림보드에 처음으로 써 놓은 나의 목표이다.
2024년은 좀 더 ‘잘’ 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