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메이 Feb 12. 2024

시작부터 열이 납니다. 해열 수액도 맞고요.

여행자 보험 만세!

고되게 보라카이에 입성한 탓일까. 자주 병치레를 하는 둘째 조카(9세)가 열이 나기 시작한다. 당연히 해열제도 종류별로 챙겨가고 코미시럽과 각종 감기약도 챙겨 왔기에 약을 먹여보았지만 열이 좀처럼 잡히지 않는다. 보라카이 도착 첫날 수영장 물에 뛰어들었을 때 으슬으슬했던 나도 덩달아 열이 난다. 머리가 지끈지끈한 게 코로나때와 증상이 비슷하다. 코로나인가? 우리는 6명이 같은 방을 쓰고 있는데, 보름살이 하는 우리 모두 코로나에 걸리면 보름살이는 엉망이 되어버리고 말 것이다!


초기에 병을 잡고자, 구글 맵에서 병원을 검색해서 어학원 근처에 있는 로컬 병원에 찾아갔다. 병원은 우리나라 90년대 언저리에 있는 병원의 느낌이었다. 모든 걸 수기로 작성한다거나, 열을 잴 때 겨드랑이에 체온계를 갖다 대고 띠~ 소리가 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거나, 모든 과정이 숨 넘어갈 정도로 느리다거나... (병원비 영수증을 수기로 작성하는데 먹지를 대고 작성하길래 내 눈을 비비고 의심했다. 분명 먹지야 저건!! 저 밑에 깔려 있는 종이를 나에게 줄 건가보다 했는데 역시나... 그러했다.)


어쨌든 나와 조카는 비슷한 증상으로 내원하였는데, 일단 피검사를 한다고 한다. 피검사는 왜 하냐고 물어봤더니 혹시나 모를 바이러스가 있을까 봐 그런다고 한다. 피검사하는데만 30분. 둘째 조카는 주사기로 피 뽑는 게 무섭다고 병원 사방을 뛰어다니며 도망 다니기 시작. 보다 못한 간호사는 둘째 조카에게 손가락 끝에 살짝 바늘로 찔러서 나오는 피를 모아서 검사하겠다고 겨우 설득해서 조카를 앉혔다. 내가 보기엔 그게 훨씬 눈뜨고 보기에 지독한 경험이고 시간도 걸리는데 간호사는 엄청난 인내심으로 피 한 방울 한 방울을 모았다.

어쨌든 그렇게 나온 검사 결과는 이상 무.

헤모글로빈 수치가 낮으니 철분을 먹으라는 얘기도 친절하게 해주셨다.

나무 의자에서 진료를 받았다

피검사가 이상 없음이니 이번엔 코로나 검사를 해보자고 하신다(코로나 검사를 먼저 하는게 맞지 않나?). 또 둘째 조카는 코로나 검사가 무섭다며 2차로 병원 사방을 뛰어다니며 도망 다니기 시작. 나는 우리나라 코로나 검사가 유난히 검사도구를 깊이 찔러 뇌까지 찌를 것 같은 느낌을 준다는 것으로 세계적으로 악명이 높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조카에게 '여기는 우리나라 반만 찌르니까 걱정하지 마라'라며 여러 번 가스라이팅을 한 후(실제 필리핀은 어떻게 검사하는지 모르니까) 겨우 조카를 앉혀놓고 코로나 검사를 했다. 이것도 20분 걸렸다. 결과는 이상 무.


그렇게 1시간 내내 한 검사는 병원 복도에서 이루어졌다. 내 목 안이 부었는지 살펴볼 때도 의사는 휴대폰 라이트로 내 목안을 비추었다. 나는 타이레놀계 진통제와 감기약을 받았고, 둘째 조카는 폐렴 진단을 받고 페니실린계 항생제를 받아왔다. 약국에서 약 받는데도 20분 정도 걸린 것 같다. 둘째 조카와 체스 한판을 하고 나서도 약은 나오지 않았다. 둘째 조카는 몸을 베베 꼬며 도대체 언제 돌아가는거냐고 난리를 치며 바닥을 뚫고 몸이 기어들어갈 즈음 드디어 나온 약. 그런데 내 감기약 사이즈를 보고 기절할 뻔했다. 무슨 놈의 감기약이 발포비타민 사이즈가 아닌가. 어쨌든 엄청난 시간과 비싼 돈을 들여 병원을 다녀왔으니 약을 먹긴 했는데, 감기가 낫기 전에 알약에 질식사할 뻔했다. 한 1시간 이상은 목에서 감기약이 머물러 있었던 것 같다. 어쨌든 그 약을 먹고 나의 열과 두통은 잡혔다.


나중에 알고보니 발포성 정제가 맞다. 맙소사... 왜 설명을 안해줬냐고!

둘째 조카는 이 날 받아온 항생제를 먹어도 상태가 호전이 되지 않아서, 다음날 또 다른 로컬 병원에 갔고, 급기야 해열 수액을 맞고 왔다. 그렇게 해서 겨우 열이 잡혔다. 이렇게 병원 투어를 하고 나니 30만 원 넘는 병원비가 나왔다!


우리는 해외여행을 하면서 한 번도 여행자 보험을 가입한 적이 없었는데, 이번엔 아이들만 데리고 가는 나름 장기체류라 처음으로 여행자 보험을 가입했었고, 이건 정말 신의 한 수였다. 집에 돌아와서 보험료 청구를 하니 다음날 바로 30%를 제외한 금액이 통장으로 들어왔다. 우리 집 둘째가 수영장에서 며칠 놀다가 콧물 방울을 계속 달고 다니길래, 보라카이 생활 8일 차쯤 병원을 또 갔었고, 요 녀석도 항생제를 처방 받아먹고 나서야 좀 괜찮아졌다.


나는 필리핀의 로컬병원을 얕잡아(?)보고 의사와 간호사 심지어 약사까지 의심의 눈초리로 지켜보았지만, 결론적으로는 병원에 다녀온 덕분에 나와 둘째 조카와 우리 집 둘째도 모두 상태가 호전되었고, 덕분에 보라카이 여행을 잘 마무리할 수 있었다.


어느 나라를 가든 병원은 병원이고 의사는 의사다! 약사도 약사다!!

그리고 아이들과 장기 여행을 다닐때 여행자 보험은 필수다!


이전 02화 유럽도 아닌데 12시간 걸려 도착한 보라카이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