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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etter Feb 19. 2024

그 어떤 의미라는 게 슬픔일 수 있다는 것을

나의 우울증에 대한 여섯 번째 글

우울증을 겪고 있는 사람에게 가장 견디기 힘든 시간은 오후 여섯 시다. 보통의 사람처럼 그들은 퇴근을 기다리지 않는다. 퇴근이란 쉼이 아니다. 타인으로 둘러싸인 지옥이 끝나고 내가 만든 지옥이 시작되는 것뿐이다.


걷다 멈춰 숨을 쉬어보기도 했다. 정말 내가 살아있는 게 맞나 의심이 들었다. 길을 지나는 사람들은 내가 보일까 싶었다.


그때야 신철규의 시집 제목 <지구만큼 슬펐다고 한다>의 슬픔을 이해한다. 슬픔은 크기로만 설명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지구는 끊임없이 돌고 돌고, 슬픔의 바람과, 슬픔의 비와, 슬픔의 눈과, 슬픔의 공기로 가득하다. 나는 그 안에 서있다.


그래서 행복이 두려웠다. 즐거운 식사, 편안한 휴식, 사랑하는 사람... 이제 내게 앞으로 없다 여겼다. 설령 운이 좋아 누군가 내게 와도, 혹은 이미 내 곁에 있다 해도, 그걸 나만 모르고 있다 해도 알고 싶지 않았다. 잃을까 두려웠다. 


자책하고 후회하면서, 울고 삭히면서, 이렇게라도 하면서 슬픔을 견디고 있는데 지금보다 더 슬프고 싶지 않았다. 가진 행복이라도 차라리 포기하고 싶었다. 다시는 마음속에 상상과 희망을 들이고 싶지 않았다.


니체는 말했다. "사는 것은 고통이고 살아남은 것은 고통 속에서 어떤 의미를 찾는 것이다". 왜 이제야 알았을까? 그 어떤 의미라는 게 슬픔일 수 있다는 것을. 대단한 꿈같은 걸 바라며 노력하며 쫓았던 그날들이 또 생각나 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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