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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etter Feb 21. 2024

위험한 날들이었다

나의 우울증에 대한 일곱 번째 글

어쩌면 우울을 만났던 날은 가장 행복을 바란 날들이었을 것이다. 몸 누울 자리 있다며, 주어진 복을 감사하게 여기려고도 해 봤다. 그러나 그건 처방전일 뿐 받아 든 약봉지는 내 것이 아니었다.


이진숙은 말했다. '타인의 고통에 대해, 타인의 행복에 대해 공감하지 못하는 인간의 미래는 이미 정해져 있다. 그것은 파멸이다'. 이 말은 자신의 고통과 행복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에게도 똑같이 적용된다. 나는 나를 이해하고 있을까? 나는 나를 사랑하고 있을까? 나는 나를 꿈꾸고 있을까?


애써 차라리 잘됐다는 생각도 들었다. 나의 고통이 나에게만 머물고 타인으로까지 가지 않음은 천만다행이었다. 하루 종일 나는 내 안의 우울과, 감사와, 미움과, 불안과, 행복과, 두려움과, 사랑과, 증오와, 희망과, 원망과, 이해와, 질투와, 다정과, 분노와, 기대와, 낙담과, 설렘과, 후회와, 기쁨과, 절망과, 웃음과, 울음과 싸우고 있었다.


그래서 하루가 지나면 힘이 다 빠졌다. 그러니 저것들이 내 안에만 있었으니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내 주위에 다른 사람이 없었으니까 말이다.


점점 멍청해졌다. 길을 못 찾아 헤매는 날이 많았다. 내려야 할 지하철역을 놓쳤다. 반대방향을 타는 날도 여러 날이다. 어느 날은 앱을 다운로드하였는데 회원가입하지 못했다. 덧셈뺄셈이 되질 않아 계산기를 써야 했다.


몸도 정신도 모두 약해졌다. 위험한 날들이었다. 이러다 정말 죽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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