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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러 Feb 21. 2024

어제 내가 만든 오늘의 나, 오늘 내가 만든 내일의 나

나의 우울증에 대한 여덟 번째 글

작년 마지막 주였던가. 기회가 닿아 웹에서 모임을 가졌다. 한 해를 돌아보는 자리였다. 


질문은 며칠 전에 각자에게 주어졌다. 그 자리는 준비된 답을 서로에게 말하는 자리였다. 질문 중에 한 해 동안 자신에게 가장 영향을 준 사람이 누구냐는 게 있었다.


처음에 누구도 떠오르지 않았다. 왜냐면 사람을 만나지 않았으니까. 만나도 가벼웠다. 먼저 연락하지 않는다면, 결국 없는 사람들이었다.


한 명씩 적고 지우다가 그 끝에서 나를 발견했다. 나도 사람이니까. 내가 가장 대화를 많이 했던 사람은 나였다. 지금의 나에게 가장 크게 영향을 준 것은 과거의 나다. 과거의 나는 어떤 선택을 했고 선택에 따라 행동했다. 그 행동의 결과는 나다.


한때는 선택이 잘못됐다고 생각했다. 왜냐면 나는 최선을 다했으니까. 그런데 왜 지금의 나는 삶의 죄책감에 갇혀야 할까? 왜 벌을 받고 있는 것일까? 그러니 선택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면, 지금의 내 삶을 설명할 수 없다.


그렇게 다시 생각의 굴레에 걸린다. 한참을 사막에서 방황하다가 뭉친 모래에 걸려 넘어졌다. 태양은 뜨겁고 바람은 불지 않는다. 앞은 보이지 않고 나는 방향을 잃었다. 다시 나는 내게 묻는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충격처럼 깨닫는다. 그런데 나는 진짜 최선을 다했을까? 정말로 정성을 다해 그날의 선택을 믿고 노력했을까? 수많은 생각을 걸어 도달한 곳은 의심이었다. 왜 내가 나에게 거짓말하고 있다는 걸 몰랐을까?


선택은 잘못되지 않았다. 하지만 그때의 나는 나를 믿지 않았다. 노력한다면서 그렇지 않았다. 사랑한다면서 사랑하지 않았다. 원한다면서 원하지 않았다. 이뤄지지 않을 희망에 기대며 살았다.


그랬다. 이런 과거의 나는 현재의 나를 만든 사람이다. 질문의 답, 내게 가장 영향을 준 사람은 나 자신이었다. 


이대로는 싫었다. 영원히 끝도 없는 우울 속에서 살 순 없다. 나는 편안하고 싶다. 아마 현재의 나는 똑같은 방식으로 미래를 나를 만들 것이다. 나는 나를 부정해야 했다. 무너지지 않으려면 과거의 나를 더 버려야 했다. 그래야만 살 수 있다. 


내 마음은 한번 죽었다. 죽음은 재생이리니. 이미 사라진 삶이 아니라 앞으로 생겨날 삶을 위해 살아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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