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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etter Feb 17. 2024

우울의 나무는 참 빨리도 자라나지

나의 우울증에 대한 다섯 번째 글

2023년 9월 21일 일기에는 '사는 게 정말 지긋지긋하다. 재미가 하나도 없다.'라고 적혀 있다. 생각이라는 게 참 우습다. 생각의 집은 한없이 넓어서 떠올리면 떠올릴수록 커진다.


사랑이 사랑하면 할수록 깊어지듯 우울 역시 그렇다. 둘은 같이 존재할지언정 서로를 상쇄하지 못한다. 그렇기에 그때 자신이 어떤 상황이냐에 따라 달라지곤 한다. 그렇게 나는 계속 우울해졌다.


김금희는 <문상>에서 이렇게 적었다. '그의 날들은 그냥 과거와 과거가 이어져서 과거의 나쁨이 오늘의 나쁨으로 이어지고 그 나쁨이 계속되고 계속되는 느낌이었다. 그러니까 어차피 나빠질 운명인 것이다'.


어차피 나빠질 운명. 12월 즈음이었나. 그때는 슬프지도 않았다. 더 슬플 것도, 더 기쁠 것도 없기 때문에 그랬다. 내 마음을 포기했다.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는 삶.


목소리도 점점 줄어들었다. 그러다 말도 사라졌다. 편의점에서 담배를 사려고 섰는데 점원이 나를 바라보기만 했다. '왜 꺼내주질 않지?' 깨달았다. 생각으로만 말하고 입으로는 뱉질 않았다는 걸.


그때부터 나는 누군가에게 카톡을 보낼 적에 답장을 기다리지 않는다. 전화를 할 때에 멈추지 않는 수신음 대기만 한다. 회신 없을 이메일을 보낸다. 무엇을 줄 적에도 반응을 바라지 않는다. 오늘 잠들면 내일 일어날 것이라고 기대하지 않는다. 아직까지도 여전히.


주말의 명화였던가? 영화 <사랑의 블랙홀>이 생각났다. 하루가 매일 반복되는 이야기다. 그땐 조금 주인공이 부럽기도 했다. 일어날 일을 이미 알고 대처할 수 있으니까.


그런데 돌이켜보니 '지금 내가 블랙홀에 빠져있는 거 아닌가?' 싶었다. 내일을 기대하지 않는다는 거니까.


기대가 사라지자 뭘 하려고 행복하려고 궁리할 필요가 없어졌다. 어차피 거부당할 건데, 그래봐야 나는 존재하지 않는 사람인데, 결국은 사라지고 잊힐 인연인데. 포기였다. 살기 위해 살고 있었다. 내일이 사라졌다.


더 행복해질 수 없다는 걸 깨닫게 되니 더 불행해지지 않고 싶었다. 힘들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다시 처음으로 돌아갔다. 사는 것은 힘들고 죽는 것은 편하다.


우울의 나무는 참 빨리도 자라나지. 이리도 컸네. 베어내기도 어려운데, 뿌리는 깊고 깊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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