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살이 5년
벌써 2023년의 5월의 끝자락이다. 그런데도 여전히 2023년이라는 해의 숫자가 너무 미래에 있는 느낌이다. 여전히 낯선, 2023년.
도쿄로 2018년 10월 왔다. 여전히 나는 이방인인데, 벌써 이곳에 산지 이제는 1,000일이 훌쩍 넘어 버려 더 이상 이곳에 온 지 며칠이 지났는지 세어지지 않는 날이 되어버렸다. 여전히 나는 이곳에 방문자 같은 느낌이지만, 도쿄라는 도시는 내가 태어나 가장 오래 머문 해외 도시가 되었다. 이방인이며 방문자의 모습을 지우지 못한 채 시간은 계속 흘러간다. 그러는 동시에 많은 것들에 익숙해지고 있다.
4월과 5월은 특히나 바빴다. 코로나가 풀리고 해외여행이 조금씩 자유로워지면서 가족들이 코로나 이후 첫 해외 방문으로 선택한 곳은 내가 살고 있는 도쿄였다. 그렇다. 순전히 내가 살기에 나를 볼 겸해서 도쿄를 선택한 것이다. 엄마와 아빠가 다녀가셨고, 오빠네 가족들이 왔다 갔다. 5년간 살고 있는 내가 살고 있는 이 도시를 잘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정말 4월과 5월은 내가 정말 두 번의 해외여행을 한 것 같이 참 바빴다. 계획을 세우고, 같이 여행하며. 내가 살고 있는 도시로의 여행은 나쁘지 않았다. 그리고 역시나 어디로 여행하느냐보다 누구와 여행하느냐가 중요하다는 것을 다시 느끼게 되었다. 나이가 들어가는 걸까. 점점 어떤 새로운 세계로의 탐험보다는 누구와 함께 무엇을 공유하느냐가 점점 좋아지고 있다. 이것은 분명 나이가 들어가는 것임에 틀림없다. 예전의 나는 그러지 않았기 때문이다.
본론으로 다시 돌아오면, 가족들이 도쿄에 와서 의아했던 것 중에 하나가 집 열쇠이다. 한국에서 열쇠로 문을 여는 집이 얼마나 될까.. 처음 도쿄로 이사 와서 깜빡하고 문을 잠그지 않고 외출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혹은 집에 들어와서 문을 잠그는 것을 잊버린 적도 많았다. 자동키에 익숙해져, 열쇠를 가지고 문을 잠그는 것이 익숙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문이 닫히면 자동으로 잠기겠구나 하는 습관이 있어 그렇게 자주 잊어버렸다. 이제는 열쇠로 문을 열고 잠그고 하는 것들이 익숙해졌다. 불편하다는 생각을 하지는 않는다. 그런데 가끔 열쇠를 잃어버리는 상상을 하곤 한다. 정말 생각도 하기 싫다. 보통 도쿄의 멘션이라고 불리는 아파트에는 경비가 있지 않다. 열쇠를 잃어버리는 순간 정말 나는 노숙자가 되는 것이다. 예전의 동료가 집 열쇠를 잃어버려 열쇠를 새로 맞추는데 20만 원이 들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또 심지어 바로 만들어지지도 않아 그날은 호텔에서 하루 묵었단다. 결국 키를 잃어버려 그날 밤 날린 돈과 스트레스를 생각하면.. 그 이야기를 듣고 정말 집을 나올 때며 들어갈 때며 늘 열쇠가 잘 가방에 있는지 먼저 확인한다. 어찌 되었던 이제는 그게 사실 불편한다거나 깜빡한다거나 하지 않는다. 가족들은 매번 열쇠로 집에 들어갈 때마다 한 마디씩 하는 걸 보고 내가 일본 생활에 많이 익숙해졌구나를 느꼈다.
또 알게 모르게 익숙해진 것은 우측통행이다. 사실 우측으로 걸어야지 하며 의식하며 걷는 건 아니다. 그냥 에스컬레이터에서나 길을 걸을 때 사람들이 서 있거나 걷는 방향에 따라서 걷다 보니 나도 모르게 몸이 자동적으로 기억하게 되었다. 한국 갈 적이면 자꾸 반대로 서게 되는 내 모습을 발견하곤 한다.
편의점에서 공과금을 내고, 편의점에서 복사 및 스캔까지 하는 일이 놀랍거나 대수롭지 않게 되었다. 또 이제는 편의점에 파는 계란 샌드위치를 굳이 사 먹지 않는다.
처음에는 아파트를 아파트라고 당연히 불렀다. 여기서는 나도 왜인지 모르겠지만 한국처럼 큰 아파트 단지도 없을뿐더러, 한국에서 보이는 빌라 같은 건물들을 멘션이라고 부른다. 이제는 멘션이라고 부르는 게 익숙해졌다.
2023년이라는 숫자는 어색하지만, 이런저런 변화 속에 많은 변화에 익숙해졌고, 또 어떠한 변화가 있었는지 조차 잊은 채 어제와 다를 바 없는 오늘을 보내고 있다. 유투부를 하는 사람들은 떡상이라는 표현을 한다. 갑자기 어떤 영상 하나가 대박이 나면 떡상이라는 표현을 하는데 이를 통해 갑자기 인기 유투버가 되기도 하고, 티브이에 나오는 유명 연예인들은 하루아침에 스타가 된 케이스도 있다. 그런데 우리네 일상 속에 그렇게 갑자기 떡상한 사람들은 얼마나 될까. 우리는 그저 평범한 하루 속에 꾸준히 작은 변화들이 오고 가며 그 삶 속에서 익숙해져 가는 것이 아닐까 싶다.
며칠 전 유퀴즈에 이금희 아나운서가 나와했던 말이 뇌리에서 오랫동안 사라지지 않았다.
누가 이런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인생은 너무나 남루한 것이어서 가끔 좋아하는 사람들과 맛있는 음식을 먹고, 괜찮은 대화를 나누는 순간이 있지 않다면 우리는 견딜 수 없다.
- tvn 프로그램 <유퀴즈 온 더 블록>에서 이금희 님,
사실 여러 사건들이 내 인생에서 오고 간다. 그 당시에는 세상이 무너지는 것 같았던 경험들도 있었다. 지나고 나면 모든 기억들이 희미해져 가고 동시에 다른 일련의 사건들로 인해 세상이 무너져갔던 경험의 기억은 옅어진다.
결국 나를 행복하게 하는 건,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좋은 사람들과의 행복한 대화, 그리고 나만의 소소한 행복을 감사해할 줄 아는 마음이 아닌가 싶다. 2023년 5월의 마지막, 여전히 도쿄의 이방인이며 2023년이 내가 살고 있는 년인 것 같지 않지만, 올해의 남은 하루하루도 작은 행복들로 하루를 채워 나가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