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Panda Jun 23. 2023

인간증발

나는 아무도 모르게 사라져 버릴 수 있을까

사카에가 보기에 일본 열도는 “압력솥” 같다고 했다. 일본인들은 마치 약한 불 위에 올려진 압력솥 같은 사회에서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그러다 압력을 견딜 수 없을 정도가 되면 수증기처럼 증발해 버린다.

결국 예의를 지키고 타인에게 폐를 끼치지 않기 위해 증발이나 자살을 선택한다. “일본인들은 실패, 수치심, 매정한 거절을 견디는 힘이 약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타인보다는 자기 자신을 괴롭힌다". 추스 베네딕트가 쓴 글이다.
우리 일본 사회는 실패에 관대하지 않습니다. 실패는 개인이 사회에서 해야 할 의무와 역할을 다하지 못했다는 의미죠.

- 책 "인간증발 사라진 일본일들을 찾아서" 중

인간 증발은 프랑스의 한 기자가 일본에서 사라져 버린 사람들을 취재한 이야기다. 1990년대 일본 버블 경제로 인해 사채를 썼다, 돈을 갚지 못해 완전히 사라져 버린 사람들도 있었고, 취업이나 사업등에 실패해 수치심으로 사라져 버린 사람등, 사라지는 이유가 다양했다.


갑자기 증발을 결심하게 되는 사람들은 어떤 마음이었을까.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사람들은 어떤 마음일까.



나는 2018년 10월 도쿄로 이직과 동시에 이사를 했다.


해외에 혼자 살다 보면 가끔 망상에 빠질 때가 있다. 만약 내가 갑자기 집안에서 쓰러지면, 누군가에게 연락을 할 겨를도 없이 갑자기 그렇게 쓰러지면 나는 얼마 만에 발견될까. 그렇게 나는 며칠간은 아무도 누구도 찾지 않은 채 자의가 아니게 증발해 버리게 되면 어쩌지. “혼자 이렇게 타지에서 살다가 보면 내가 사라져도 아무도 모를 수도 있겠다.”하는 망상을 가끔씩 하곤 한다. 물론, 엄마와 3일에 한 번꼴은 연락하니, 내가 연락이 안 되면 엄마가 곧 내가 연락이 안 되는 것을 알 것이고, 직장이 있으니, 내가 갑자기 무단결근을 하게 되면 회사에서 나에게 연락을 해 올 것이다. 망상에 빠졌다가, 자의든 타의든 나는 증발이 어려운 사람이라는 생각 하니 안도의 한숨이 쉬어진다.


한 번씩 내가 사라지면 어떻게 될까 하는 망상에 젖을 때가 있다.

가끔은 누구나 삶의 무게에서
도망가고 싶다는 생각을 일생에서
한 번씩은 해보지 않을까.


혹은 정말 한 번씩 증발까지는 아니더라도 아무도 모르게 내 존재를 모르는 곳으로 훌쩍 떠나 1년간은 그렇게 누구와도 연락을 하지 않고 있다 지내다 오고 싶다는 생각도 해 본 적도 있다. 근데 생각해 보니, 나는 일본으로 나를 아는 사람이 정말 아무도 없는 곳으로 떠나온 몸이다. 훌쩍 떠나 나를 모르는 곳으로 나는 실제로 떠나왔다. 그런데 이곳에서 새롭게 나를 아는 사람들을 만들게 되어, 결국 나는 훌훌 떠난다 해도 결국은 그곳에서 나를 아는 연결고리와 사회를 만들게 되어 버리는 사람인 걸 깨달았다.


첫해 도쿄에 와 한달간 은 비즈니스호텔에서 지냈었다. 우선 회사에서 먼저 와서 일을 했으면 했고, 워킹 비자가 나오는 동안 나는 여행 비자로 출장처리가 되어 일을 시작했었다. 당시 우리 회사가 협업을 맺은 회사가 한국에 있어 그 회사로 등록되어 출장 처리가 된 것이었다. 워킹 비자가 처리되기까지는 약 2-3달 정도가 걸렸고, 그동안 나는 핸드폰을 개통했고 이곳에서 살집을 구했다. 그리고 회사에서 구해준 호텔과 숙소를 떠돌면에 지냈다. 그렇게 나의 첫 일본 살이는 도쿄의 비즈니스호텔에서 시작되었다. 도쿄의 물가가 높은 만큼 특히 중심가 지역의 호텔 비용은 만만치 않았다. 하루에 약 15만 원 정도의 호텔에서 묶었는데, 아주 큰 침대가 하나 들어가 있고, 모니터와 책상 하나가 놓여 있는 게 전부였다. 책상과 침대 사이에 아주 비좁게 오갈 수 있는 공간 말고는 호텔방에 내 여진 여분의 공간은 허락되지 않았다. 낡은 모니터와 약간 빛바랜 베이지 색깔의 커튼, 그리고 방 중앙에 위치한 거대한 침대 하나. 내가 엉망으로 방을 어지럽히고 가도 돌아오면 깔끔하게 침대가 정돈되는 거 말고는, 그 작은 비즈니스호텔에서의 생활에는 장점이 하나도 없었다. 아니 어떻게 이런 방을 구해 줄 수 있느냐고 회사에 따져 묻고 싶어 호텔 방 가격을 확인해 보니 주말에는 1박에 20만 원이 되기도 했다.

물론 서울살이 하면서 자취를 했었고, 자취집이 지금의 호텔방을 불평할 만큼 대단히 큰 집은 아니었지만, 어찌 되었든, 그 방을 보지 않고는 그 답답함을 이루 설명하기가 어렵다. 그리고 새로 시작한 낯선 도시에서의 모든 상황이 나를 극도의 외로움과 쓸쓸함으로 몰았는지도 모르겠다.


아는 사람이 하나 없이 시작한 생활,

복잡하고 번잡한 비즈니스 디스트릭트에 위치한 호텔,

그리고 그곳에 홀로 떨어진 나,

호기롭게 이곳을 왔지만 나만 모르는 규칙과 질서가 존재하는 것만 같은 이곳,

매일 혼자서 먹어야 하는 저녁밥,


이 모든 것들이 나도 모르게 나를 짓눌렀던 했던 것 같다. 호텔에서 음식을 해 먹을 수 없기에 일 끝나고 저녁은 나가서 무언가를 사 먹거나, 편의점에서 음식을 사서 먹어야 했다. 한동안은 저녁을 같이 먹을 만큼 친한 동료도 없었고 친구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 날 숨이 잘 쉬어지지 않는 경험을 했다. 소리 내어 웃을 때마다 가슴이 답답했다. 일을 겨우 끝내고 호텔로 돌아와 잘 쉬어지지 않는 숨이 계속 느껴져 '피곤했나' 하는 생각에 반신욕을 하기도 하고 따뜻한 차를 마셔보기도 했다. 밤이 되니 더 심해졌다. 누워 있지도 서 앉아있지도 못했다. 숨이 잘 쉬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때 그 망상에 빠졌더랬다. 이러다 호텔 방에 쓰러져 다음날 아침에 내가 쓰러진 지도 모르 채 신원미상으로 발견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극단의 망상. 도저히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결국 호텔 로비에 영어가 가능한 병원을 안내해 줄 것을 부탁했고 호텔 리세셥에서 택시를 잡아줘서 병원 응급실로 갔다.


일본 응급실은 사람이 아픈데 기입해야 할 것들이 너무나도 많았다. 어디가 아픈지, 언제부터 아팠는지, 어떤 증상을 얼마간 느꼈는지, 이전에도 이런 증상을 느낀 적이 있었는지 등등 엄청나게 많은 질문에 답을 해야 했고 겨우 의사 선생님이 배치되어 진료를 보았다. 그리고 천식치료와 같은 치료를 받고 나는 정상으로 숨이 쉬어졌다. 모든 진료가 마친 후 150만 원이라는 어마어마한 진료 비용을 지불했다. 나중에 다행히도 회사에서 여행자 보험으로 처리를 해주기는 했지만, 정말 아찔한 비용이었다. 천식 증상을 경험해 본 적이 처음이었다. 한동안은 병원에서 준 천식 기구를 사용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공황 증상이었나 하는 생각도 든다. 다음날 나는 내가 얼마나 타지에서 힘들었는지, 내가 숨이 어떻게 대체 안 쉬어졌는지 이 처음 느껴본 통증에 대해 가족들에게 설명했고 가족들의 위로를 받고 나서야 마음이 진정이 되었다.


나는 내 존재가 잊힌다는 건 내게 어려운 일인지도 모르겠다.



사라진다는 건은, 내가 태어나서 지금까지 일궈놓은 것들을 모두 뒤로하고 내 존재를 완전히 감춰 버리는 것은 어떤 결심이 필요할까.


사라지는 상상을 해본적이 있다. 계속되는 취업 실패로 인해 백수 생활이 길어졌을때 아픈 이별을 했을 적, 그리고 여러 이유에 의해서 외부와 연락을 끊고 혼자만의 터널을 지내온 적도 가끔씩 있기도 하다. 그럴때면 정말 아무도 만나고 싶지도 않았고 누구와도 이야기하고 싶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그때 사라지고 싶고 아무도 만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의 끝에는 다른 사람에게 보여질 내 모습에 대한 초라함이 그 저변에 깔려있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일본인들은 실패, 수치심, 매정한 거절을 견디는 힘이 약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타인보다는 자기 자신을 괴롭힌다"와 같은 문구가 무엇보다 가슴이 아팠다. 이게 과연 일본인들에게만 해당되는 사항일까 하는 생각에 잠기게 되었다.




이전 06화 도쿄 여행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