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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nda Dec 31. 2017

나는 엄마를 얼마나 알고 있던 거였을까.

교토를 가다.



혼자라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온 세상에 나만 홀로 뚝 떨어져 누구에게도 사랑받을 수 없는 존재라고 느껴질 때가 있다.

그런 생각의 불씨가 점점 커지면 점화가 되어 나는 철저하게 혼자구나 라는 끝을 맺게 된다. 이런 상념은 언제나 나를 슬프게 만든다.

만약 내가 갑자기 사라진다면 날 위해 울어줄 사람이 있을까.. 곰곰이 생각해 보다 '없다.. 없구나' 하고 결론 내리던 차에 한 명에 얼굴이 스쳐 지나갔다.


엄마


내가 사라질 수도 있겠다. 모든 관계를 끊고 어디론가 숨어 없어져버려야겠다.

'그래, 아무도 날 찾지 않을 거야' 하다 문득 엄마의 얼굴이 떠올랐다. 내가 사라진다면 엄마는 나 없이 이 세상을 살아갈 수 있을까. 1초에 망설임도 없이 "아니다" 라는 말이 중얼거려졌다.


나는 세상으로부터 도망치기가 어려운 사람이다.

엄마 때문에 그렇다. 내가 도망친 세상에서 사는 엄마는 그려지지가 않는다. 그렇게 때론 모든 연결고리를 팽팽하게 지탱해주는 이유를 만들어준다. 더 잘살아야겠다, 도망치면 안되겠다, 하는 연결고리를 만들어주는 엄마와 나, 딸과 엄마, 부모와 자식 간.


<2017년 12월>

엄마와 교토에 와 있다. 이렇게 단둘만의 여행은 처음이다. 가족끼리, 혹은 엄마 아빠나 셋이서는 자주 여행을 했었지만 오롯이 둘만 해본 적은 없었다. 엄마는 둘만의 여행을 원했다.

 


어떤 여행을 하고 싶으셨던 걸까

 

여행 내내 나는 멀리서 엄마를 지켜보았다.

나는 "여보세요" 라는 목소리만 들어도 그녀의 기분을 단번에 파악할 수 있는 '엄마감정감별사'라고 엄마를 놀린 적이 있었다. 그런데 멀리서 여행을 하는 그녀를 바라보며 ‘나는 엄마를 얼마나 알고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본 적 없었던 엄마의 표정을 보았다.

그녀는 온전히 무언가를 바라볼 수 없는 사람이었다. 우리가 어렸을 때는 늘 상 우리를 돌보아야 했고 자식들이 다 커서 앞가림을 하게 된 지금은 그 자식들인 우리를 위해 대신해서 손자들을 보살펴야 했으며 아빠와 단둘이 있을 땐 옷가지며 속옷이며 남편의 모든 걸 챙겨야 했다. 여행을 해도 엄마는 자신만을 위한 여행은 할 수 없었던 사람이었다. 그래서 이번엔 무슨 핑계를 대서라도 단둘이 여행을 원했던 건지도 모르겠다.


오토와산 중턱의 절벽 위에 위치한 사원인 기요미즈데라[청수사]는 엄마와 나의 도쿄여행의 첫 번째 장소였다. ‘교토 여행객에게 가장 인기 있는 방문지’라는 수식어가 붙은 곳답게 외국인, 일본인 할 거 없이 많은 사람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형형색색 기모노를 입고 관광을 즐기는 이들 덕택에 이곳이 더 아름답게 느껴졌다. 엄마의 손을 잡고 청수사 안 구석구석을 돌아보며 함께 걸었다. 사람이 많았지만 치인 다는 느낌은 없었다. 신사 안팎으로 중간중간마다 기도를 드릴 수 있는 장소가 곳곳에 숨겨져 있다.


엄마는 가는 곳곳마다 기도를 드렸다

'무슨 기도를 저렇게 하시는 걸까..?'

무얼 기도 했는지에 대해서는 물어보지 않았다. 하지만 분명한 건 누구보다 간절하게 그리고 순수하게 기도 드리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서두를 것도 없었고, 얼른 가자며 서두르는 사람도 없었기에 엄마를 재촉할 이유가 없었다. 그래서 나는 그저 한 발치 떨어져 그녀의 기도가 끝날 때까지 기다렸다.

청수사를 나와 산넨자카 니넨자카 거리로 내려갔다. 기념품 샵과 먹거리 가게들로 가득 찼다. 지나가는 가게에 들어가 친구들의 선물을 고르는 엄마가 보인다.

한참을 걷다 다음 장소로 움직이기 위해 기차를 탔다. 기차를 타고 이동할 때면 창밖을 호기심에 찬 눈으로 쳐다보는 엄마가 보인다. 기차 안 바쁜 걸음을 움직이는 사람들을 쳐다보는 엄마.

일상에서 엄마는 어쩜 타인을 바라봐야 할 시간이 없었는지도 모르겠다. 누군가의 바쁜 걸음을, 기차 밖으로 보이는 풍경을, 사람들이 소소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그저 한없이 바라볼 수 있는 시간이 엄마에게는 없었는지도 모르겠다.

공항으로 가기 위해 새벽부터 일어나 한 쉬도 쉬지 않고 걸었던 탓에 힘들지는 않았을까 걱정이 되어 잠시 눈 감고 쉬고 있으라는 나에 말에 괜찮다며 기차 안 사람들을 쳐다보며 미소를 짓는 엄마를 보았다.


무얼 꼭 하지 않아도 되겠다. 생각해 두었던 카페며, 소품 샵이며, 초밥집은 굳이 가지 않아도 되겠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대로 여행이 끝나도 좋겠다. 내가 모르던 엄마의 얼굴, 그걸로도 이번 여행은 오길 참 잘했다. 둘이 오길 참 잘했다.


엄마 때문에라도 나는 도망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다시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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