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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nda Jan 29. 2018

누구와 여행하고 계신가요?

내가 했던 고민들이 생각이 나지 않았다.

엄마는 처음으로 내게 이렇게 말했다.


"내년에 단풍이 물드는 시기가 오면 다시 같이 청수사에 와보자. 궁금하네..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지"


교토 여행 가이드 책에 나온 문구처럼 가을 단풍이 질 때 청수사가 가장 멋있다고 엄마에게 알려줬을 때 엄마가 한 대답이었다. 


그녀는 늘 상 그랬다.


"한번 와 봤으면 됐지 뭐."


그런 엄마 입에서 처음으로 들은 이야기다. 와봤던 곳을 또 와보고 싶다고, 가을에 이곳이 궁금하니 내년에도 함께 오자는 엄마. 엄마는 늘 버리는 것에 익숙한 사람이었다. 하나를 채우면 그 자체에 감사함에 더 큰 욕심을 바라지 않는 분이셨다. 그런 엄마가 여행을 했던 이 곳을 또 방문하겠다고 말했을 때 내게는 굉장히 큰 사건처럼 느껴졌다.


'나는 내년 가을에 이곳을 또 올라와 보게 될까?'


문득 궁금해졌다.


여행 내내 나는 반은 철저히 가이드 마인드였다. 다음 장소를 어떻게 가야 할지, 음식은 무얼 먹어야 엄마가 좋아할지 하는 생각에 몰두했다. 미리 검색해 두었던 맛집을 갔을 때 엄마가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면 기분이 좋아졌고, 여러 교토의 신사를 돌며 호기로워하는 그녀를 보면 나도 모르게 내가 마치 엄마이고 엄마가 내 딸인 것 마냥 사랑하는 누군가를 잘 케어하고 있다는 생각에 저절로 기분이 좋아졌다.  반면에 엄마는 주변 풍경을 바라보고, 외국에서 택시와 버스를 타보기도 하며, 발길 닿는 대로 아무 식당에 들어가 현지인들처럼 음식을 주문 시켜보며, 그렇게 사람들에 섞여 내 뒤꽁무니를 졸졸졸 따라다니면서 주변을 살피는데 몰두했다. 새로운 경험이 흥미롭다고 했다.


순간, 여행 오기 전  무슨 고민을 그렇게 했더랬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도통 생각이 나지 않았다. 엄마에게 물었다. 엄마 역시도 분명 참 많은 고민이 있기는 있었는데 그것들이 떠오르지 않는다고 했다.


때론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웃음이 날 때가 있다.

때론 몸이 피곤해도 피곤한지 모르게 발걸음이 가벼울 때가 있다.

때론 아무 생각이 나지 않은 채 지금 순간에만 집중할 때가 있다.

그건 아마 사랑하는 이와 맛있는 음식을 먹고 경험을 나누고 있을 때가 아닐까..


함께 하며 경험하며 공유하다 보니 한번 와봤던 곳을 더 와보고 싶은 사치를 그리고 일상에 고민을 잊게도 되나 보다.


누구와 함께 여행하고 계신가요?


 

비단 여행에만 국한되지는 않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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