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했던 고민들이 생각이 나지 않았다.
엄마는 처음으로 내게 이렇게 말했다.
"내년에 단풍이 물드는 시기가 오면 다시 같이 청수사에 와보자. 궁금하네..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지"
교토 여행 가이드 책에 나온 문구처럼 가을 단풍이 질 때 청수사가 가장 멋있다고 엄마에게 알려줬을 때 엄마가 한 대답이었다.
그녀는 늘 상 그랬다.
"한번 와 봤으면 됐지 뭐."
그런 엄마 입에서 처음으로 들은 이야기다. 와봤던 곳을 또 와보고 싶다고, 가을에 이곳이 궁금하니 내년에도 함께 오자는 엄마. 엄마는 늘 버리는 것에 익숙한 사람이었다. 하나를 채우면 그 자체에 감사함에 더 큰 욕심을 바라지 않는 분이셨다. 그런 엄마가 여행을 했던 이 곳을 또 방문하겠다고 말했을 때 내게는 굉장히 큰 사건처럼 느껴졌다.
'나는 내년 가을에 이곳을 또 올라와 보게 될까?'
문득 궁금해졌다.
여행 내내 나는 반은 철저히 가이드 마인드였다. 다음 장소를 어떻게 가야 할지, 음식은 무얼 먹어야 엄마가 좋아할지 하는 생각에 몰두했다. 미리 검색해 두었던 맛집을 갔을 때 엄마가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면 기분이 좋아졌고, 여러 교토의 신사를 돌며 호기로워하는 그녀를 보면 나도 모르게 내가 마치 엄마이고 엄마가 내 딸인 것 마냥 사랑하는 누군가를 잘 케어하고 있다는 생각에 저절로 기분이 좋아졌다. 반면에 엄마는 주변 풍경을 바라보고, 외국에서 택시와 버스를 타보기도 하며, 발길 닿는 대로 아무 식당에 들어가 현지인들처럼 음식을 주문 시켜보며, 그렇게 사람들에 섞여 내 뒤꽁무니를 졸졸졸 따라다니면서 주변을 살피는데 몰두했다. 새로운 경험이 흥미롭다고 했다.
순간, 여행 오기 전 무슨 고민을 그렇게 했더랬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도통 생각이 나지 않았다. 엄마에게 물었다. 엄마 역시도 분명 참 많은 고민이 있기는 있었는데 그것들이 떠오르지 않는다고 했다.
때론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웃음이 날 때가 있다.
때론 몸이 피곤해도 피곤한지 모르게 발걸음이 가벼울 때가 있다.
때론 아무 생각이 나지 않은 채 지금 순간에만 집중할 때가 있다.
그건 아마 사랑하는 이와 맛있는 음식을 먹고 경험을 나누고 있을 때가 아닐까..
함께 하며 경험하며 공유하다 보니 한번 와봤던 곳을 더 와보고 싶은 사치를 그리고 일상에 고민을 잊게도 되나 보다.
누구와 함께 여행하고 계신가요?
비단 여행에만 국한되지는 않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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