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Panda Feb 07. 2018

너와 나 사이의 거리

적당한 보폭을 유지하는 건 연습이 필요한 걸까

#1. Drip Coffee

한남동에 한 카페에 방문했었는데 카운터 앞에 놓인 쪽지가 눈에 들어왔다.


 “커피 수업을 하고 있으니 원하시는 분은 연락처와 이름을 남겨주세요”. 


커피를 워낙 좋아해서 이번 기회에 좀 알고 마시면 좋겠다 싶어 신청을 했다. 총 4번으로 집에서 혼자 커피를 내려 마실 수 있는 취미 수준 선의 수업이었다. 선생님은 커피는 내리는 사람마다 다 자기만의 방식이 있기 때문에 딱 정답이다 라고 할 수 있는 건 없지만 Coffee driping 시 지키면 좋은 몇 가지 수칙들은 있다고 하셨다.

 

첫째는, 드리퍼(Dripper)*와 서버(Server)**의 클렌징이다. 클렌징이란 커피를 내리기 전 뜨거운 물로 드리퍼와 서버를 따뜻한 물로 한번 헹궈 주는 작업이다. 찬 것과 뜨거운 것 사이에 갑작스러운 마찰은 커피의 맛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한다. 그래서 둘 사이에 적정한 온도 차이를 위하여 클렌징 작업을 해주 것이 란다.

두 번째는, Driping의 속도이다. 내리고자 하는 양의 1/2를 1차 Driping 때 내리는데, 이때 중요한 것은 촘촘하게 그리고 너무 빠르지 않게 달팽이 모양으로 원을 그리는 것. 커피가 어느 한쪽으로 치우침 없이 고르게 내려지기 위함이라고 하였다.

셋째는, 커피를 내리는 시간이다. 이는 2분 30초를 넘기지 않는 게 좋다고 한다. 커피 찌꺼기에 너무 오랫동안 물이 침체되어 있으면 오히려 커피 맛을 방해하기 때문이란다. 2분 30초가 지난 후에도 여과지에 물이 다 내려지지 않는다면 과감히 남겨진 커피를 버리라고 하셨다. 만약 커피 맛이 진하게 느껴진다면 그냥 뜨거운 물을 조금 더 부어 조절하는 것이 낫단다.



커피를 내리는 것에는 정석이 없으나, 커피를 내리는 순간에는 '중도'가 필요하다는 것이 핵심이 아니었나 생각이 들었다. 미세한 온도와 속도 그리고 기다림의 차이로 커피 맛의 한 끗, 그 한 끗이 결정되고 결국 커피 전체 풍겨져 나오는 풍미감과 퀄리티를 결정짓는다. 너무 과해도 그렇다고 너무 덜해도 안 되는.. 너무 빠르게도 그렇다고 너무 느리게도 안 되는 그런 적당한 타이밍이 필요한 작업.

* 드리퍼: 드립(Drip) 방식 추출에 사용되는 드리퍼는 일종의 깔때기와 같은 형태로 생겼다.
** 서버: 커피를 드립퍼(Dripper)로 내릴 때 드립퍼(Dripper) 아랫부분에 받혀내는 기구를 서버라고 한다.


#2. Relationship

사람마다 다른 감정선이 존재한다. 친한 친구, 가족, 그리고 사랑하는 연인 사이에도 우리 모두 서로 다른 감정선을 가지고 있다. 혹여 정말 운이 좋아 같은 감정 속도를 지니는 누군가가 내 옆에 존재하더라도 표현의 방식은 또 다를 수 있다. 이 이치를 머리로도 마음으로도 잘 이해하고 인지하고 있지만 유독 자꾸 잊어버리게 되는 순간이 있다. 그것은 연애의 순간. 주인의 관심을 받기를 기다리는, 주인이 잠시라도 떠나 있으면 혼자 그 외로움을 이기지 못해 집안 온 구석을 난장판으로 만드는 강아지 마냥 사랑을 구걸하게 된다. 언제나 상대방도 내가 기대하는 만큼 따라와 주기를 바란다. 빠르게 뜨거워지는 냄비처럼 불타오르기를 바라는 나를 볼 때가 있다. 그렇게 끊어 오른 냄비가 금방 식는 줄은 모르고 그 뜨거움이 지속되기를 바라는 나를 마주할 때가 있다. 모든 걸 공유할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그렇지 못한 상황에 화를 내고야 만다.

매번 연애를 시작할 때 마음으론 다짐한다. 때론 그의 속도에 맞춰줘야 한다는 걸. 때때론 느리게 혹은 빠르게.. 기다림이 필요하다는 걸.


#3. 그 남자, 그 여자 

한 남자와 여자가 있다. 핸드폰은 물론 이거니와 전화도 집집마다 있지 않던 시절.

남자와 여자는 친구의 소개로 만났다. 첫 만남 이후 주말이면 남자는 1시간을 걸어 여자가 살고 있는 집으로 찾아간다. 그 여자가 사는 곳은 어느 작은 시골 마을.. 찾아온 남자를 위해 여자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그 저 동네 한 바퀴, 두 바퀴 돌며 이야기를 나누는 것 말고는.... 그렇게 동네 몇 바퀴를 돌고 어둑해질 저녁 무렵 남자는 다시 집으로 발길을 돌린다. 그 남자는 다시 1시간을 걸어 집으로 가야 한다. 두 사람은 헤어지면서 별 다른 약속을 잡지는 않는다. 하지만 남자는 매주 주말이면 어김없이 여자가 살고 있는 시골집으로 찾아간다.

그 여자는 항상 그 자리에서 그 남자를 기다린다. 그렇게 한 달, 두 달, 세 달... 몇 달의 만남을 지속하다 두 사람은 결혼을 하게 되었다. 연락이라는 걸 할 수 없던 시절, 데이트라는 걸 즐길 수 없던 시절. 기다림이 서로에 대한 확신을 주던 그때. 왜 매일 찾아오지 않느냐고 서운해하지도 않았다. 왜 약속을 잡지 않느냐고 묻지도 않았다. 서로에게서 적당한 보폭을 유지하며 서로의 다른 상황을 인정하며 그들만의 관계를 지속시켰다.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이 남자와 이 여자의 이야기는 바로 나의 엄마와 아빠의 수줍은 사랑 이야기이다.

엄마에게서 두 사람의 연애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 과연 그게 가능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 확신도 없이 그렇게 매주 아빠를 기다리는 엄마를 상상해 보았다. 주말이면 엄마를 보기 위해 1시간씩 시골길을 걸어가는 아빠의 모습을 상상해 보았다.

어쩜 엄마와 아빠는 서로의 상황을 이해하고 서로에게 많을 걸 바라지 않았기에 가능한 관계였는지도 모르겠다. 좋아하는 마음만은 변함이 없는 것이기에... 엄마를 보기 위해 묵묵히 길을 걷는 아빠의 얼굴을 상상 속으로 그려 보았다. 미소가 그려졌다.


나와 같지 않음을 인정하는 마음. 적당한 너와 나 사이에 거리를 유지하는 건 연습이 필요한 것일까.

구걸하지 않는 관계를 위해서 한 보폭씩 다가가는 연습 해 보아야겠다. 건강한 관계를 위해서 너와 나 사이의 거리를 유지하는 것, 그것이 필요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전 16화 누구와 여행하고 계신가요?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