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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nda Aug 25. 2019

퇴근길에 꽃 한 송이를 샀습니다.

집에 대한 고찰

회사 생활을 하면 두 번의 장기 출장이 있었다. 참 우연치 않게도 둘 다 한 도시에서 약 2달 정도를 머물렀어야 했다. 한 곳은 중국의 베이징이었고 한 곳은 영국 런던이었다. 물론 출장이었기 때문에 2달간 나는 호텔 생활을 했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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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베이징 출장이었을 때는 운이 참 좋았다. 당시 내가 프로젝트 매니저(Project manger)였는데 프로젝트 매니저라고 해서 뭔가 대단한 일을 한 것은 아니었고, 프로젝트 예산을 관리하는 게 주요 업무였다. 정해진 예산에서 수익률을 유지하기 위해 인력 관리서부터 심지어 회식비 관리까지 했어야 하는 게 내 주 임무였다. 나는 2 달이라는 장기 호텔 투숙객이었고, 그 외 나를 통해 결제되는 많은 출장자가 있어 당시 묵었던 호텔에 우량고객과 같았다. 덕택에 호텔 측에서 내게 특별 대우를 해주었다. 할인은 못해주는 대신 내 방을 업그레이드 하여 스위트 룸으로 머물게 해 주겠다고 했다. 마다할 이유는 없었다. 스위트 룸 치고도 꽤나 넓은 호텔방에서 2달을 지냈다.


매일매일 일 마치고 들어오면 내가 아무리 방을 더럽게 하고 가도 깨끗하게 치워져 있고, 늘 새로운 이불과 베개 시트를 갈아주는 호텔에서의 생활은 매우 행복할 것이라 생각했다. 꽤나 넓은 호텔 방에서 첫날은 이리저리 뛰어다니기도 했다. 하지만 그 행복은 오래가지 않았다. 호텔 생활은 생각과 달리 그리 기쁘지 않았다.


아무것도 내 것이 없었다.


내 재취와 나의 공간이라는 흔적은 일을 마치고 돌아오면 사라져 있었다. 분명 같은 공간이고 장소이지만 내가 어제 머물었던 그곳, 즉 내 집과 같은 느낌은 사라져 있었다. 어느 것도 나를 증명해 줄 수 있는 것은 없었다. 한 달이 지날 때쯤부터 향수병이란 게 찾아왔다. 호텔에서 준비해준 컵으로 물을 마시고 차를 마시는게 어쩐지 찝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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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후 다른 회사에서 나는 런던으로 출장을 가게 되었다. 원래는 3주 예정이었으나 업무 일정이 지연이 되면서 1주, 2주 연장이 되다가 결국 예상보다 4주가량 더 머물게 되었다. 총 7주를 머물게 된 것이다. 런던은 언제나 내게 추억의 도시이자 선망하는 도시였다. 출장으로 그곳에 가야 된다고 결정 되었을 때, 사실 동료들에게는 출장 가면 고생만 한다, 가서 일만 하고 올 거라며, 출장은 여행과는 사뭇 다른 거라며, 가기 싫다는 불평불만을 해댔지만, 그냥 어쩐지 너무 들떠 있어 보이면 초자 같아 보일 것 같은 허세스러운 마음에, 나는 출장이 싫지만 전무님께서 가라 하셔서 어쩔 수 없이 간다라는 코스프레를 했었다. 하지만 사실 내심 설레고 들떠 있었다.



처음 2주는 전무님과 동행했다. 일하게 되는 고객사 근처에 숙소를 정했고 전무님이 한국으로 돌아가신 후 나 혼자 머물게 되었을 때는 워털루 역(Waterloo station) 근처에 숙소를 잡았다. 고객회사는 그다지 런던 중심 부가 아니었는데 전무님은 무조건 아침에 10분 이내로 갈 수 있는 곳에 숙소를 원했다. 정말 회사-호텔-회사-호텔을 오갔다. 꼼짝없이 아침-점심-저녁 전무님과 붙어 다니며 밥을 먹어야 했는데, 상사와 하루 종일 동행은 체기가 안 내려 간 기분이 하루 종일 지속되는 느낌이었다. 전무님이 한국으로 먼저 돌아가시기로 결정하자마자 숙소부터 바꿨다. 도심이 아닌 곳에 머물고 있자니 답답하기 그지 없었다. 저녁 늦은 시간에는 대부분 식당은 문이 닫혀있었고, 슈퍼를 가려고 해도 15분 정도 어둠을 뚫고 가야 하기 때문에 시도 조차 못했다. 회사에서 조금 멀더라도 무조건 가장 번화 한 곳에 숙소를 잡고 싶었다. 그래서 선택한 장소가 워털루 역(Waterloo station)이었다. 아침에 잘 차려 입고 런던너들과 함께 했던 출근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뭐 내가 이룬 거라고 하나도 없고, 그저 나는 마냥 그곳에 일하러 간 그저 그런 아무것도 아닌 회사원이었지만 마음만은 런더너였다. 출장으로 온 런던은 여행과 어학연수로 왔을 때의 모습과 달랐다. 일 끝나고 돌아오면 반겨주는 템즈강을 바라보며 마시는 커피는 달콤했다.


운동복으로 갈아입고 며칠간은 러닝을 하며 런던너 코스프레를 해보기도 했다. 템즈강 바라보며 러닝 하는 것은 내 소박한 위시 리스트 중 하나였다. 기회가 없었다. 여행자 일 때도 학생일 때도,

이 기분은 그다지 오래가지 않았다. 정확히 일주일 갔다. 아무도 반겨주지 않는 호텔방에 들어왔을 때 느끼는 적막감은 템즈 강도 이기지 못했다. 베이징에서 느꼈던 동일한 감정을 느꼈다. 일 끝나고 집으로 바로 가서 두발 펴고 누워 치킨을 시켜 먹는 것이 얼마나 큰 행복인지를 알았다. 호텔은 그럴 수 없는 공간이었다. 물론 뭐 맛있는 거 사들고 가서 호텔 방에 누워 두 발 뻗고 먹으면 된다.


그런데 어색하고 불편했다. 뭔가 처량한 기분도 들었다. 퇴근해서 돌아가고 싶은 집에 느낌은 아니었다. 모든 것은 깔끔하게 정돈되었지만 내게 안정감을 줄 수 있는 물건은 아무것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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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으로 직장을 구해서 오게 되었다. 우선 이곳으로 오긴 하였지만 비자가 나오기까지는 대략 3달이 걸린다고 한다. 비자가 나오기 전까지는 집을 구할 수가 없었다. 즉 한동안은 호텔 신세를 면치 못하는 것이었다. 우선 한 달간은 호텔에서 지내기로 했고, 그 다음 두 달간은 회사에서 구해준 집에서 머물기로 했다.


일본에 비즈니스호텔은 한국에 고시원만큼이나 작았다. 이미 두 번 장기 호텔 생활에 불편함을 겪었던 터라 잘 견뎌낼 수 있을까 걱정부터 앞선 건 사실이었다. 슬픈 예감은 언제나 틀린 적이 없다고, 갑갑하기 그지없었다. 회사에서 구해 준 집은 사정이 좀 다를 거라고 생각했다. 회사 근처 집값이 워낙 높아 7평 남짓한 방이었지만 월세는 상상초월이었다. 방에는 침대, 책상, 세탁기, 냉장고 등 필수적인 요소들이 모두 구비되어 있었다. 일본에는 한국처럼 대형 아파트들이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나라도 치자면 대부분의 집들이 빌라의 형식이었다. 그리고 이런 집들을 맨션(mansion)이라고 불렀다. 회사에 구해 준 맨션은 회사와 10분 거리었기에 생활하기에는 불편함이 없었다. 근처에 마트도 있었다. 그런데 호텔에서 받은 그 느낌들과 다르지 않았다. 내 것이 하나도 존재하지 않은 공간에서의 생활은 편안함을 주지 못했다.


 2달만 지나면 진짜 집을 구해 이사를 해야 하기 때문에 당장 물건을 사는 것은 현명한 선택이 아니었다. 이미 놓인 침대와 커튼은 모두 내 취향은 아니었다. 새로 그 집으로 들어가자마자 청소부터 해댔다. 근데도 뭔지 모를 찝찝한 기분은 사라지지 않았다. 전체적인 생활 역시도 나를 이곳에 여행자 느낌을 주었다. 아직까지 나는 여행자다 라는 기분이 사라지지 않았다.


결국 내 것이 아닌 것은 나를 편안하게 해주지 못했다.


나를 나답게 해주는 것은 결국 오롯이 내가 결정하고 내가 선택한 내 것이 나를 완전하게 만들어준다는 것을 느꼈다. 2달 후 집을 구했고 집에 수저부터 침대까지 내가 결정하고 내가 모두 사들였다.


물론 쉽지 않았다. 혼자 이사하고 비록 작은 집이었지만 집을 꾸미기 위해 이것저것 사야 하는 상황은 그렇게 신나지 많은 않았기 때문이다. 고단하고 힘들었다. 어쨌든 그렇게 7평짜리 내 방은 모두 내손과 내 검색과 내 고심 끝에 완성이 되었다. 이사를 하고 집에 모든 기본적이 물건들을 들이고 꽃을 사들여 꽃병에 꽂아 놓을 여유가 되어서야 나는 여행자의 느낌을 지울 수가 있었다.



드디어 내게 집이 생긴 순간 안정감이라는 단어가 내게 왔다. 나는 집을 내 집으로 칭할 수 있었고 내가 사는 동네를 우리 동네라고 말할 수 있었다. 집에 들여놓은 냉장고는 어쩜 이전 살던 집에 구비된 냉장고보다 비싸지 않은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래도 나는 내 냉장고가 생긴 것이었다. 그 냉장고는 전자기기 상가에 2-3번 방문해서 여러 제품들과 가격과 성능을 비교한 후 가성비를 따져 내가 구입한 나의 냉장고였다.

깨끗하게 청소를 하고, 예쁜 컵과 나 혼자 쓸 나만의 취향이 깃든 그릇을 사서 집 근처 꽃집에 들러 사놓은 꽃들과 화분으로 장식한 집에 들어왔을 때 나는 마침내 안온함을 느꼈다.


집을 꾸미는 일은 새로운 재미를 주었다. 세상에 내가 노력한 만큼의 결과물을 바로 확일 할 수 있는 것들이 얼마나 될까? 심지어 아무리 노력을 해도 그만큼의 결과를 얻지 못하는 게 허다하다. 집은 달랐다. 화분을 하나 새로 사 들여놓았을 때와 아닐 때 집에서 묻어나는 분위기는 달라졌다. 어질러진 집은 청소를 통해 바로 다른 공간으로 변모한다. 나를 나답게 해주는 곳이 집이었고 노력의 결과물을 바로 얻을 수 있는 것이 바로 집이었다.



결국 모든 것은 나로부터 시작한다. 향이 없는 꽃은 매력적이지 않다. 결국 나를 나로 만드는 것은 내 재취와 노력이 담긴 것은 아닐 까.


오늘도 나는 퇴근하는 길에 좋아하는 집 근처 꽃집에 들러 작약 두 송이를 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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