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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on Nov 17. 2019

11. Nahant Beach / Fenway Park

27APR19

 Nahant Beach


 전날 밤은 아주 즐거웠다. 친구 부부를 따라 저녁식사를 위해 중국 본토 요리 전문식당을 갔다. 친구의 남편은 상하이 출신으로 다른 문화권 사람들에게 중국음식을 대접하는 것을 좋아하는 것 같았다. 예전에 친구와 그가 사귀던 시절 런던에서 그를 처음 만났을 때도 그는 나를 차이나타운의 유명식당으로 데려가 딤섬 먹는 법을 가르쳐 주었다. 친구와 그녀의 남편은 런던 필름 스쿨에서 유학 중 만났다. 친구는 학부에서 건축설계를 전공하였는데 졸업 후 건축설계 사무소를 다니다 영화 공부를 한다며 훌쩍 런던으로 떠났다. 그녀는 영화학교 졸업 후 한국으로 돌아와 다시 건축설계 일을 하다가 공부가 부족한지 하버드 건축대학원으로 진학하였다. 확실히 그녀는 동기들 중에서도 특이하면서 정말 능력 있는 인재다. 친구의 남편은 영상 관련 프리랜서로 상하이 소재 프로덕션들과 일하며 하버드에서 한국어 수업을 듣고 있다고 하였다. 배우자가 하버드 학생이면 무료로 몇 가지 강좌를 수강할 수 있는 혜택 덕분이라고 하였다. 남다른 하버드의 배움을 장려하는 클래스가 느껴지는 부분이었다.


 식사자리에는 친구의 남편과 함께 수업을 듣는 친한 클래스메이트도 함께하였다. 스무 살의 미국 흑인 여성으로 또박또박 한국말로 자신의 생각을 말하는 모습이 어린아이처럼 귀여웠다. 친구의 남편은 수업을 열심히 듣는지 전보다 한국어 실력이 많이 늘었는지 한국어 대화를 대부분 알아 들었다. 술을 좋아하는 그가 한국에서 나를 생각해서인지 소주를 마시자고 하였다. 내 기억으로는 메뉴판에는 소주가 없었다. 친구의 남편은 종업원을 부르더니 중국어로 대화를 주고받았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나 종업원이 도자기 주전자를 가지고 나왔다. 따라서 마셔보니 소주가 분명하였다. 친구의 남편은 보통 중식당에서 종원들끼리 마시는 한국식 소주가 항상 있다고 귀띔해 주었다. 역시 애주가다운 눈썰미와 협상력을 갖춘 그가 존경스러웠다. 기름진 중국음식에 반주로 소주를 마시며 다 같이 한국어로 대화하니 마치 서울의 중식당에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즐거운 저녁식사를 마치고 스무 살의 어린 친구는 귀가하고 서른 살 이상 얼큰해진 어른들은 아쉬움을 달래려 근처에 있는 펍으로 향했다. 그곳의 시그니처 메뉴 중 오이 얼음이 들어간 칵테일이 신기해서 주문하였다. 얼음이 녹으면서 느껴지는 진한 오이의 향이 취해가는 나의 정신을 흔들어 깨웠다. 안주로는 생굴을 주문하였는데 보스턴이 바다와 가까워 이곳 사람들은 해산물 요리를 많이 즐긴다고 하였다. 굴은 고급 요리로 취급되는데 서빙되어 나온 양고 가격을 비교해 보니 수긍이 되었다. 보스턴 사람들이 통영에 한번 가보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거나하게 취한 친구의 남편과 나는 이제는 거의 대화가 아니라 서로에게 혼잣말을 하고 있었다. 술을 한잔도 마시지 않아 제대로 된 판단이 가능한 친구는 자신의 차로 나를 숙소까지 데려다주겠다며 자리를 정리하였다.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그녀는 내일 자신의 기말 과제 관련해 근처 해변에 사진을 찍으러 갈 것인데 함께 가겠냐고 물었다. 오후 늦게 야구를 보러 가는 것 말고는 딱히 계획이 없어 흔쾌히 함께 하기로 하였다.



 아침에 눈을 떠 창밖을 바라보니 오늘도 그리 맑지는 않은 것 같았다. 친구가 해변에 가기 전 아메리칸 스타일의 브런치 맛집에 가자고 하였는데 공짜 조식이 아까운 생각에 식당으로 내려갔다. 어제보다 아침을 먹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았다. 해장으로(?!) 시리얼과 커피 한잔을 마시고 올라와 나갈 준비를 하였다. 그들은 어제저녁 나를 데려다준 쿠페형 4인승 차를 몰고 왔다. 말이 4인승이지 문이 두 개밖에 없고 뒷좌석은 어느 정도 덩치 있는 성인 남자가 장시간 앉아있기에는 불편한 사이즈였다. 다행히 몸집이 작은 친구가 뒷좌석에 앉아서 나는 조수석을 차지하였다. 맛집 근처에 다다랐을 때 자리가 있나 전화를 하였는데 현재 만석이고 1시간 이상 기다려야 한다는 종업원의 슬픈 대답밖에 들을 수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우리는 근처에 있는 친구 부부의 또 다른 맛집인 'Sun Kong'이라는 중국 본토 요리 식당으로 향했다. 친구는 어제저녁에도 중국음식을 먹었는데 괜찮겠냐고 물었지만 나는 무얼 먹어도 상관없었다. 이미 시리얼로 워밍업을 마친 내 위는 무엇이든 받아들인 준비가 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식당에 들어가자 종업원이 자리를 안내해주며 메뉴판을 건네주려는데 친구의 남편은 괜찮다는 제스처와 말을 하였다. (중국어로 말했지만 누가 봐도 그런 말을 했을 거라 짐작되는 상황이었다.) 그는 종업원들이 카트에 음식을 담고 돌아다니는데 그때 먹고 싶은 게 있으면 고르거나 없으면 그때 주문하면 된다고 알려주었다. 얇은 만두피 안에 소고기가 든 전병 같은 음식을 시작으로 간장소스에 절여진 듯한 내장요리, 중국식 갈비, 달콤한 노란 소가 들어간 찐빵, 소고기가 든 찹쌀 튀김, 새우가 들어있는 두부튀김, 에그타르트 마지막으로 저민 소고기가 들어간 듯한 죽까지 엄청난 중식 브런치 코스를 달렸지만 아직도 먹어보지 못한 음식들이 카트에 가득한 것이 눈에 들어왔다. 중국 본토 요리의 그 끝없는 스펙트럼을 체감하는 순간이었다. 근처 카페에서 커피를 테이크 아웃해서 목적지인 해변을 향해 달렸다. 오전과 다르게 날씨가 아주 맑아졌다. 한눈에 들어오는 사방으로 끝없이 펼쳐진 하늘은 생경하면서도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어주었다. 십여분쯤 달리고 나니 조금씩 바다가 보이기 시작했다. 거의 평지나 지형 때문인지 바다가 마치 땅처럼 느껴지기도 하였지만 표면이 일렁거리는 쪽이 바다라는 것이 분명해 보였다.



 양쪽으로 바다가 펼쳐진 도로 위를 달리다 중간쯤 한쪽으로 빠져나온 공터에서 차가 멈춰 섰다. 그냥 공터라고 하기에는 주차라인도 그려져 있고 차 몇 대가 이미 서있는 걸 보니 공식적으로 주차가 가능한 곳인 것 같았다. 친구는 이곳이 바로 'Nahant Beach'라고 알려주었다. 차 밖으로 나오니 엄청난 바람이 온몸에 느껴졌다. 친구 부부를 따라 주차장 앞의 낮은 언덕을 넘어가니 생각지도 못한 광경이 펼쳐졌다. 좌우 앞뒤로 끝을 알 수 없는 회색빛 해변 위로 부는 바람으로 만들어진 모래 뱀들이 바다를 향해 빠른 속도로 질주하고 있었다. 해변과 바다가 맞닿은 바다 위에서는 낙하산을 잡고 서핑을 즐기는 사람들이 꽤 보였다. 오기 전 내 머릿속에 그려본 해변과는 바다가 있다는 것 빼곤 하나도 같은 점이 없는 모습이었지만 나는 단숨에 이곳에 매료되었다. 쉴 새 없이 부는 바람이 모든 소리를 삼켜버렸고 파도는 계속해서 모래 뱀들을 집어삼키고는 물보라를 일으켰다.



 친구는 해변 쪽으로 다가가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계속해서 셔터를 눌러대는 친구의 옆으로 그녀의 남편이 가만히 서 있었다. 처음 둘을 함께 본 것이 3년 반 전이었다. 시간이 흘러 그들은 부부가 되었고 지금 각자의 고향에서 멀리 떨어진 이 해변에서 나란히 서있다. 갑자기 누군가와 미래를 약속하는 것은 해변에 서서 계속해서 카메라의 셔터를 눌러대는 것과 같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수평선 너머에 있을 무언가를 그리며 함께 있는 지금 이 순간을 기억으로 남기는 하루하루. 둘은 어떤 상상을 하며 하루하루 함께할까? 그 순간 친구와 그녀의 남편이 뒤 돌아 나를 향해 걸어오기 시작하였다. 장난기 가득한 웃음을 띤 그들의 얼굴을 보니 내 질문을 듣기라도 한 것 같았다.




Fenway Park


 보스턴에서 제일 중요한 마지막 일정이 남았다. 물론 여기에 있는 친구들과 세계적으로 유명한 대학들을 구경하는 것도 정말 뜻깊은 시간이었지만 무엇보다도 보스턴에서 내가 가장 고대하던 순간은 Fenway Park를 가는 것이었다. 2004년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아메리칸리그 챔피언십 시리즈(2004 MLB ALCS)에서 숙명의 라이벌인 양키즈와 레드삭스가 맞붙었다. 양키즈는 처음부터 내리 3경기를 승리로 가져가며 가볍게 레드삭스를 물리치고 월드시리즈 진출을 눈앞에 두었다. 그리고 운명의 4차전. 9회 말 레드삭스가 3:4로 뒤지고 있는 상황에서 마운드에는 양키스의 전설적인 마무리 투수 ‘샌드맨’ 마리아노 리베라가 버티고 있었다. 레드삭스에게는 라이벌에게 치욕적인 시리즈 스윕을 당하고 '밤비노의 저주'가 이어지는 절망적인 그 순간!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It ain't over till it's over)'라는 요기 베라의 명언이(1940년 후반부터 1960년대 초반까지 양키스의 주전 포수로 월드시리즈 우승반지를 10개나 챙긴 전설적인 선수) 양키스에게 비수로 꽂히기 시작한다. 리베라는 1루 주자의 도루를 허용한 뒤 곧바로 적시타를 맞고 동점을 허용하고 만다. 그리고 연장 12회에서 레드삭스의 홈런타자 '빅 파피' 데이비드 오티즈가 끝내기 투런 홈런으로 레드삭스가 귀중한 1승을 챙긴다. 이렇게 시리즈의 분위기 반전을 성공한 레드삭스는 나머지 경기를 모두 가져가며 월드시리즈에 진출한다. 레드삭스는 양키스와의 치열했던 시리즈의 여파로 피로가 누적되었을 법도 하지만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는 시리즈 스코어 4:0으로 가볍게 물리치고 86년 만에 그 지독한 '밤비노의 저주'를 풀고 드라마 같은 월드시리즈 우승을 일궈낸다. 기적과도 같은 레드삭스의 우승을 지켜본 고등학생은 그 팀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똘똘 뭉쳐 헌신하는 선수들의 모습은 진정한 팀 스포츠의 정신이 어떤 것인지 느끼게 해 주었다. 그 뒤로 계속해서 레드삭스 경기 소식을 챙겨보며 언젠간 꼭 보스턴 있는 레드삭스의 홈구장인 Fenway Park에 가서 경기를 보겠다고 마음먹었다.


 해변에서 보스턴 시내로 돌아와 친구 부부와 작별인사를 하고 경기장으로 향했다. 원래 함께 경기를 보기로 했었지만 친구의 학기말 과제 마감이 코앞으로 다가와 어쩔 수 없이 나 혼자 오게 되었다. 신기한 건 그들은 이곳에 1년 가까이 살면서 단 한 번도 Fenway Park를 가보지 않았다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보니 어쩌면 미국인이 아닌 내가 이 작고 오래된 도시의 오래된 야구팀을 좋아하는 게 남들이 보기에 더 신기한 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스쳤다.



 경기장 바로 앞 차도는 차량이 다니지 못하게 막아놓았는데 마치 경기장의 일부인 것처럼 이용되고 있었다. 경기장 쪽에는 각종 먹거리와 맥주를 파는 노점들이 줄지어 서있었고 반대편에는 단층 건물로 된 대형 기념품샵이 그 끝을 알 수 없을 정도로 길게 뻗어 있었다. 걷다 보니 기념품샵 지하로 내려갈 수 있는 문이 보였는데 텔레비전으로 경기를 보며 술을 마실 수 있는 펍의 출입구인 것 같았다. 이곳까지 왔는데 기념품을 사지 않을 수 없어 샵으로 들어갔다. 한편에는 디자인이 제각각인 베이스볼 캡이 벽면 전체를 뒤덮고 있었고 나머지 매장 내부 공간은 반팔티, 긴팔티, 후드티 등이 걸린 수많은 옷걸이들이 가득하였다. 우선 오늘 관람할 때 쓸 모자를 탐색하기 시작했다. 디자인뿐만 아니라 디테일과 기능이 다양한 수많은 종류의 베이스볼 캡들이 자신을 집어달라며 매력적인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비슷해 보이지만 다 제각각인 모자들을 만져보고 써 본 뒤 심사숙고 끝에 캡 아래에 'Fenway'라는 하얀 자수가 새겨진 스냅백을 선택하였다. 조금 촌스러운 디자인 같기도 했지만 아무래도 이곳에 온 것을 기념하기 위해선 이만한 녀석이 없을 것 같았다.


 새로 산 모자를 쓰고 의기양양해졌지만 배속은 그렇지 않은 것 같았다. 허기를 채우러 핫도그를 사러 갔다. 핫도그 노점의 점원이 겉이 약간 그을린 큼지막한 소시지를 빵 사이에 끼워 그 위에 볶은 양파를 올려주었다. 소스는 한쪽에 비치된 디스펜서에서 각자 취향껏 뿌려먹는 방식이었는데 익숙하지 않아 마치 새가 변을 본 것(!) 같은 비주얼을 만들고야 말았다. 핫도그 노점 옆에서는 보스턴의 유명 브루어리인 '사무엘 아담스'의 생맥주를 팔고 있었다. 기름진 큼지막한 소시지가 든 핫도그에 맥주가 빠지면 얼마나 섭섭할까? 그렇게 한 손에는 핫도그와 다른 손엔 방금 받은 생맥주를 들고 스탠딩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주위를 둘러보다 힐끗힐끗 나를 쳐다보는 사람들의 시선이 느껴졌다. 레드삭스 모자를 쓰고 핫도그와 맥주를 마시는 동양인의 모습을 신기해하는 듯한 눈빛이었다. 그러고 보니 주위의 레드삭스 팬들은 대부분 백인들이었다. 양키스 스타디움에서 봤던 양키스 팬팬들과 비교해 보니 그 비율이 월등히 높아 보였다. 어딘지 모르게 초대받지 않은 파티에 온 불청객 같은 기분이 들었다. 뭔가 주눅이 들어 허겁지겁 핫도그를 해치우고 경기장 안으로 들어갔다.



 필드가 보이고 저 멀리 '그린 몬스터'가 그 모습을 드러냈다. 이 구장은 비대칭적인 평면으로 왼편 외야가 홈플레이트에서 훨씬 가까운데 이것을 보정하기 위해 왼쪽 펜스를 높게 만들었다. 높이가 11m나 되는 녹색의 펜스는 자연스럽게 그린 몬스터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다. 영화 '꿈의 구장'에서 레이 킨셀라(케빈 코스트너)가 펜웨이 파크에 입장하며 그린 몬스터를 마주하고 감탄하는 장면이 떠올랐다. 예전에 보았던 영화의 감상에 젖어서 우두커니 서있다 주위에 오고 가는 사람들의 인기척에 정신이 들었다. 내가 예매한 좌석에 다다르니 내 자리 옆으로 이미 사람들이 앉아있었다. 자리에 앉으며 바로 옆자리 노신사와 인사를 나눴다. 자세히 보니 가족 3대가 함께 레드삭스를 응원하러 온 것 같았다. 제일 안쪽에는 손자인 아기가 침을 질질 흘리며 필드에서 몸을 푸는 선수들을 뚫어지게 바라보았고 노신사와 아들은 최근 레드삭스의 성적 부진에 대해서 열띤 토론을 나누었다. 어딘지 모르게 전형적인 대를 잇는 미국 야구팬 가족이 내 옆에 앉아있었다.



 경기가 시작되었다. 양키스 스타디움의 맨 꼭대기층과는 비교도 안될 정도로 필드에 가까운 자리에 앉으니 선수들의 얼굴 표정까지 알아볼 수 있었다. 역시 좋은 좌석은 결제한 것만큼의 값어치(!)를 하는 것 같았다. 시작부터 레드삭스 타자들의 방망이가 허공을 가르는 소리가 끊이지를 않았다. 실망스러운 플레이가 이어지고 있는데 옆자리 노신사가 나에게 말을 걸었다. 분명 이곳과는 어색한 나의 존재가 신경 쓰이면서 어떻게 이곳에 오게 되었는지 궁금하였을 것이다. 한국에서 왔다고 소개하니 갑자기 악수를 청하였다. 뭔가 한국에 대해서 좋은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것이 분명하였다. 카투사 시절 한미동맹을 굳건히 하는 의미를 가진 구호가 생각났다. '같이 갑시다!' 이곳에 와서 처음으로 환대를 받은 것 같아 기분이 좋아졌다. 노신사는 오늘이 자신의 손자가 처음으로 펜웨이파크에 왔다고 알려주었다. 이제는 침뿐만 아니라 콧물까지 동시에 흘리는 저 귀여운 어린 친구와 나는 펜웨이파크 첫 관람 동기가 되었다. 그렇게 경기 중간중간 노신사와 대화를 이어가며 경기를 지켜보았지만 도통 레드삭스 선수들이 힘을 발휘하지 못하였다. 3회가 끝나자 노신사는 자리를 일어서며 오늘은 여기까지 보러 왔다는 말을 남기고 작별인사를 하였다. 그의 아들은 손자를 앉은 채 나에게 눈인사를 하였고 손자는 여전히 필드에 눈을 떼지 못한고 손가락을 입에 문채 들려 나갔다. 이 상당한(!) 좌석에서 3회까지만 보고 가는 그들의 뒷모습에서 경제적으로 여유로운 아우라가 느껴졌다.



 그들이 떠나고 나자 보스턴의 차디찬 봄바람이 무자비하게 살갗을 파고 들어왔다. 이대로는 버티기 어렵다는 생각에 알코올의 힘을 빌리기 위해 맥주를 사러 갔다. 500ml 한 캔이 만원이 훌쩍 넘었다. 안주거리로 땅콩 한 봉 지도 추가하니 거의 2만 원은 되는 것 같았다. MLB 선수들이 연봉을 많이 받는 이유를 어렴풋이 알 것만 같았다. 자리에 돌아와 열심히 떨며 땅콩과 함께 맥주를 들이켜니 조금씩 알딸딸해지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오늘 경기에서 레드삭스 선수들의 대단한 플레이를 보기는 어려운 느낌이 들었다. 그렇게 7회가 끝나고 맥이 풀려있는데 어디선가 익숙한 노래의 전주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바로 닐 다이아몬드의 'Sweet Caroline'이었다. 레드삭스의 공식 응원가가 울려 퍼지자 구장이 들썩이고 사람들의 합창소리가 커지기 시작했다. 취기가 올라온 상태에서 나도 모르게 큰소리로 노래를 따라 부르기 시작했다.


Sweet Caroline~

Good times never seemed so good~~~


여기저기서 후렴부 'So good!'을 반복해서 외치는 소리가 터져 나왔다. 정말 처음으로 이곳을 방문한 레드삭스의 팬이라면 뭉클해질 순간이었다. 그렇게 신나게 노래를 부르고 난 뒤 다시 경기가 시작되었다. 결국 레드삭스는 템파베이 레이스에 1:2로 패하였다. 첫 방문부터 내가 원하는 경기를 볼 수 있기를 기대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토록 고대했던 곳에서 예기치 않은 야구팬 가족 3대와의 만남과 관중들과 함께 부르는 Sweet Caroline만으로도 충분히 만족스러운 시간이었다. 선수들이 경기를 보러 온 관중들에게 감사 인사를 하고 더그아웃으로 들어갔다. 사람들은 재빨리 자리를 뜨거나 구장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가만히 서서 몇 분 동안 경기장을 눈에 담고는 밖으로 나왔다. 숙소로 돌아가는 길을 걷는데 나도 모르게 'Sweet Caroline'을 흥얼거렸다. 혼자 걷고 있었지만 귓가에는 수만 명의 합창이 계속해서 울려 퍼지고 있었다.


So good! So good! So go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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