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제작 의뢰를 맡긴 슈트는 도착하지 않았다. 물에 오래 있으면 추울 거라는 미현의 얘기에 급하게 래쉬가드를 구해 입고 첫 출근일에 나섰다. 옷을 빠르게 갈아입고 출근한 수영장은 아담하지만 웅장한 느낌이 들었다. 25m 6개 레인의 수영장은 다른 작은 수영장 규모와 비슷한 크기였지만, 층고가 높아서 그런지 훨씬 커 보였다. 물리적인 규모도 그렇지만 수영장의 온갖 것들이 새롭게 느껴져서 정서적으로 더욱 커다랗게 느껴졌던 것 같다. 수영하러 갈 때만 해도 매번 수영장이 놀이터처럼 느껴졌는데, 수영을 가르치려고 온 수영장은 나에게 이곳이 아예 성질이 다른 영역이라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매달 첫날은 출석 체크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파일철에 미리 정리된 오늘 나에게 주어진 이름들이 이만큼 있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요원해지기도 했지만, 이내 마음을 고쳐잡았다. 마음을 단단히 먹지 않으면 이 모든 이름들을 순식간에 모두 물가로 흘려보낼까 싶어서 긴장감을 어느 정도 유지하려고 했다.
첫 시간은 상급반이었다. 예상은 했지만, 오전 수영반의 모습은 대체로 여성 수영인의 비율이 확실히 높았다. 이것은 사회 구조학적으로 설명할 수 있었지만, 지금 이 지점을 설명해야 하는 타이밍은 아니기에 간략하게 상황만 짚고 넘어간다. 상급반 수영인들은 이미 새로운 선생님이 온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고, 역사적으로 수영장에서 반복해 온 일이라 그런지 대체로 나를 보는 눈빛이 올 게 왔다는 듯 시큰둥하거나, 좀 더 세게 말하면 그러든지 말든지 하는 표정들이 대부분이었다.
“오늘부터 근무하게 된 수영 강사입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미지근한 박수 소리가 아침의 고요를 깨트리면서 본격적으로 이들 속에 합류할 수 있었다. 그리고 출석을 부르게 되면서 이들과 나와의 사이에 대해서 차차 실감하게 되었는데…
“ㅇㅇㅇ 회원님?”
“네!”
“ㅇㅇㅇ 회원님?”
“⋯”(아무 말 없이 손만 든다)
살면서 상대방을 회원님이라 불러본 적 없던 사람이 회원님을 부르고, 상대방이 응당 자신이 그 회원님 맞다고 망설임 없이 대답하는 상황을 맞닥뜨리게 되면서, 나와 이분들 사이에 명확한 관계가 형성되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나는 강사로서 서비스를 제공하는 주체이고 회원들을 정해진 시간 동안 잘 대해야 한다는 얘기이다. 강사 지원서를 쓸 때만 하더라도 수영 강사의 일이라는 것이 어슴푸레하게 느껴져 수영을 좋아하는 마음만 옮겨적었는데, 나와 상대방 사이에 뚜렷한 호칭과 관계가 생기게 되면서 강사로서의 마음과 직분에 대해서 빠르게 헤아리기 시작했다. 오랫동안 이 수영장의 문지방이 닳도록 다닌 상급반 수영인이 원하는 수영 서비스는 대체 어떤 것일까? 이름과 호칭을 붙여 부른 것뿐인데 삽시간에 수영장의 공기가 완전히 다른 공기로 전환되고 있었다. 여느 때보다 심장이 가빠지는 게 느껴졌는데, 일단은 모든 회원님들의 이름을 부르고는 킥판 잡고 발차기를 다녀오라 정중히 말하며 강사로서의 마음가짐을 재정비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