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물 요리>에 대한 오해와 진실
어느 해 크리스마스 이브날, 교회에 갔다가 조금 늦게 귀가한 어머니에게 할머니가 쓰레기통을 집어던져 머리 한가득 오물을 뒤집어 씌운 적이 있었다. 누구도 꺾지 못할 괴팍한 성격의 할머니는, 요리 솜씨든 일머리든, 능력이 탁월했을 뿐 아니라 모든 면에서 극성이었다. 나의 옷은 세탁 후 항상 할머니의 손에서 다림질되어 나에게 입혀졌다. 초등학교에 입학하여 처음 가게 된 소풍에 할머니가 따라가셨고, 교실에 장식할 꽃을 할머니가 직접 꽃집에 가서 골라주셨다. 손녀의 앞날을 생각하여 피아노며, 미술이며, 사교육도 할머니 선에서 결정되었다.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 나와 동생들은 간혹 할머니가 생전에 하시던 말씀을 주고받으면서 서로 웃었다. 할머니 어록을 하나 만들어야 하는 거 아니냐는 이야기도 오갔다. 할머니가 하신 말씀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것 중 하나는, “한 방울 국물도 없을 줄 알아!”이다. 어렸을 때는 도대체 국물이란 무엇이며, 국물이 한 방울도 없으면 과연 어떻게 될까 하고 의아했었다. 할머니의 걸걸한 입담으로 나온 협박성 멘트는, 국을 싫어하던 나에게 "앗싸! 나야 좋지, 할매~" 라며 곧잘 할머니를 놀리는 건수가 되곤 했다.
할머니가 국과 관련하여 늘 입버릇처럼 하시던 말씀이 하나 더 있었다. 그것은 바로 “국량¹이 늘어야 공부도 잘하는 법이다”였다. 아마도 용어의 원래의 뜻과는 상관없이 입 짧은 손녀에게 국을 푹푹 많이 떠먹으라는 할머니식 사랑의 표현이었던 듯하다.
한국인의 밥상에 김치 및 반찬과 아울러 반드시 차려지는 음식이 바로 국이다. 임금님 수라상에서부터 평민의 검소한 밥상까지, ‘국’은 절대로 빠지지 않는다. 뜨거운 국을 한 술 뜨면서 "시원하다"라고 할 만큼 '국'에 대한 전 국민의 애정이 지극하다.
그러나 어린 시절의 나는 '국'이라는 액체가 너무 싫었다. 내 의견을 묻지도 않고 할머니가 국에 밥을 말아 주시는 날이면 기분이 상해 오히려 공부가 안 될 지경이었다. 내게 있어 할머니의 격언은 "국량이 늘면 공부는 잘 안 되는 법이다"로 바뀌어야 할 판이었다.
프랑스에서 겨울을 지내면서, 얼음물에 적셔진 듯 눅눅한 추위와 맞닥뜨릴 때마다 한국의 ‘국’이 생각났다. 국이라고는 입에도 대지 않던 내가 곰탕, 육개장, 갈비탕, 감자탕, 된장국, 콩나물국, 돼지국밥, 어묵탕 등이 미칠 정도로 그리웠다. 내가 나를 이해할 수 없었다. 아마도 극성 할머니의 손녀 국먹이기 프로젝트가 훗날 손녀가 자랐을 때 국을 그리워하는 데 한 몫 하지 않았나 싶다.
여기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갈 것이 있다. 프랑스 기후는 한국과 많이 다르다는 점이다.
프랑스에 도착한 지 얼마 되지 않았던 시기였다. 교실에서 선생님이 계절에 대하여 설명하며 간단한 질문을 했다. 그중 기억나는 질문이 하나 있는데...
“산불 조심은 어느 계절에 해야 하나요?”였다.
나는 손을 번쩍 들었다. 내가 가장 먼저 손을 들었던지 선생님이 나를 지목했다. 나는 위풍당당, 자신만만하게 대답했다.
“겨울이오!”
그 순간, 교실에 있던 모든 이들은, 내가 마치 한 겨울 야외에서 언 발에 오줌 누고 그 발이 더 꽁꽁 얼어버린 것을 이해 못 하는 얼치기인 것처럼 어이없다는 듯한 반응을 보였다. 알고 보니 정답은 ‘겨울’이 아니라 ‘여름’이었던 것.
한국에서는 여름이 우기이고, 겨울이 건기이므로 산불조심은 당연히 겨울철에 해야 하는 덕목이었다. 그러나 유럽식 기후는 극동 아시아와는 반대이다. 우기인 겨울이 아니라 건기인 여름에 불조심을 해야 한다. 그것을 몰랐던 나는 주위의 친구들에게 이상하고 특이한 동양 아이라는 인식을 심어주었다.
겨울철 추위도 다르다. 추운 것은 동일하지만 엄밀히 말해 추위의 질이 다르다. 한국은 살을 에는 추위인 반면, 프랑스는 뼛속을 스미는 추위이다. 이렇게 말해서는 둘의 차이가 무엇인지 잘 와닿지 않을 수도 있겠다.
프랑스의 겨울은 좀처럼 영하권으로 내려가진 않는다. 하지만 겨우 내내 추적추적 내리는 비는 몸속 깊이 추위를 전달하여 말 그대로 뼛속에서부터 극한 한기를 느끼게 하는 추위이다. 모든 옷과 물건들이 차갑고 축축하여 말할 수 없이 스산하고 을씨년스럽다고 생각해보라.
혹독한 프랑스식 추위를 견디고자 나는 집에서 간단하게 국을 끓여 먹었고, 레스토랑에 가서는 수프를 찾기에 바빴는데…….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정말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프랑스식 국물요리를 먹고 싶어서, 레스토랑에 갈 때마다 메뉴판을 열공했지만 어디에도 국물요리는 찾을 수가 없었다.
프랑스에는, 가정식 느낌의 양파 수프도 있고, 지중해 연안에서 유래된 ‘부야베스(Bouillabaisse)’라는 생선탕도 있으며, 부르고뉴 고유 음식인 ‘뵈프 부르기뇽(Bœuf Bourguignon)’이라는 찜요리도 있다.
이 요리들은 모든 레스토랑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요리가 아니라서 보편적 프랑스 요리라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부야베스’는 바다를 인접한 지역의 레스토랑에서 주로 취급하고, ‘뵈프 부르기뇽’도 그 요리를 다루는 특정 레스토랑에 가야만 맛볼 수 있다. 만성절의 '호박 수프'와 겨울철에만 보이는 ‘양파 수프’는 계절적 경향이 강하므로 더욱 그러하다.
게다가 큰 스푼으로 한입 가득 떠먹고 싶은 나의 기대를 만족시킬 만큼의 충분한 국물량이 아니라는 것은 정말 안타깝다. 이 정도면 국물요리라고 볼 수가 없지 않은가.
비주얼로는 매운탕과 비슷한 색상이라 얼큰한 맛이 아닐까 싶겠지만, 토마토소스로 맛을 낸 이 음식은 한국식 매운탕과 완전히 다르므로 큰 기대는 하지 마시라.
프랑스인의 가정에 초대받아 갔을 때도 국물요리를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간단한 수프조차도. 따라서 프랑스 가정집이든, 레스토랑이든, 세팅된 테이블 위에서 ‘스푼’을 아예 찾아볼 수 없는 놀라운 현장을 발견하게 된다
어째서일까?
이유를 밝히고자 여러 프랑스인들을 대상으로 탐문조사를 했다. 그들이 왜 국물요리를 먹지 않는지.
많은 프랑스인들이 이구동성으로, 국물요리를 전혀 먹지 않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근데, 왜 발끈하지?!) 그들도 가정에서 가족과 함께 추운 겨울에 수프를 먹거나 쇠고기 찜요리도 해 먹고 생선탕도 끓여 먹는다고 한다. 물론 자주는 아닐 것이다. 아니, 어쩌면 진위여부의 확인이 불가능한지도 모르겠다. 예전에, 태어나서 단 한 번도 국물요리를 먹어본 적이 없다는 프랑스 여대생을 본 적이 있기 때문이다. 어쨌든.......
프랑스 가정에서 주로 먹는 수프 종류는 묽기 정도에 따라 불리는 이름이 여럿이다. 가장 묽은 수프(Soupe)에서 부터, 약간 더 점성이 있는 포타주(Potage), 벨벳처럼 부드러운 질감의 블루테(Velouté) 등이 있다. 우리나라의 죽과 비슷한 느낌의 포리쥐(Porridge)도 있고, 가장 농도가 짙은 퓌레(Purée)라는 것도 있다. 이렇게 종류가 다양하다는 건 그들 역시 수프를 먹는다는 소리다.
하지만 손님이 왔을 때는 절대 그런 음식을 내놓지 않는다! 그 이유는 바로, ‘국물 요리’는 가난한 사람들이 먹는 음식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정말 놀라운 사실이 아닌가.
프랑스 국물 요리의 효시라고 할 수 있는 ‘부야베스’의 기원을 보면 조금 이해가 빠를 것이다.
부야베스는, 옛날에 생선장수가 생선을 팔고 난 후 남은 찌꺼기를 한데 모아 물 넣고 푹 끓여서 가난한 사람들과 나눠 먹은 데서 유래한 음식이다. 그래선지 지금도 국물요리는 천하다고 여기므로, 가족과 함께 잘만 먹던 음식일진대 손님에게는 내놓지 않는 게 불문율이다.
우리가 흔히 패밀리 레스토랑이라고 하는 곳에 가서 양식 코스를 주문하면, 처음에 수프나 샐러드가 나온다. 이렇게 전식으로 수프를 먹는 스타일은 미국식이다. 많은 사람들이 미국 스타일의 양송이 수프나 야채수프를 좋아한다. 나도 예전에 O뚜기에서 나온 인스턴트 수프 가루에 물을 넣고 끓여서 레스토랑의 양송이 수프를 떠올리면서 먹었던 기억이 난다.
프랑스에 사는 나 같은 외국인들은 손님 대접에 있어서 특히 조심할 필요가 있다. 국물요리를 먹지 말라는 소리가 아니다. 프랑스인들도 가족과 함께 국물요리를 즐기지 않나. 실제로 프랑스에 있는 많은 라멘집과 쌀국수 식당에는 국물요리를 먹으려는 프랑스인 손님들로 문전성시를 이루는 것도 사실이니까. 하나, 손님을 초대했을 때, 본인이 평소에 너무나도 좋아하고 맛있게 먹는 음식이라서 손님에게 선보일 생각으로 국물요리를 내놓았다가는 그들이 돌아간 후 겪어야 할 후기는 감당하지 못할 것이다.
왜냐면 대접받는 그 순간에는 맛있게 먹겠지만, 속으로는 자신이 귀한 손님 취급을 받지 못했다고 강하게 인식하여 마음 한 구석이 심히 불편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아이러니한 문화가 아닐 수 없다.
만약 여러분이 프랑스인으로부터 초대를 받았는데, 대뜸 국물요리가 나왔다면, 호스트는 당신을 귀한 손님으로 여기지 않았다는 반증이라고도 볼 수 있다.
국물요리를 천하게 생각하는 프랑스인이 또 미천하게 생각하는 게 있으니, 그것은 바로 ‘튀김요리’이다. 그들이 일식 레스토랑에서 ‘뎀뿌라’²와 같은 튀김 요리를 전혀 먹지 않느냐? 그게 아니라는 것을 여러분도 이제 알 것이다. 이 역시 국물요리와 마찬가지로 자신과 가족은 맛있게 먹으면서, 방문한 손님에게만은 내놓지 않는다. 그뿐이랴? 타인으로부터 튀김요리를 대접받는 것도 싫어한다. 튀김이 맛이 없어서가 결코 아니다.
프랑스인들은 이런 사실을 대놓고 드러내는 법이 없다. 암묵적으로 실천하지만 직접 언급하지 않아서 여태 우리가 몰랐을 뿐이다.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인데도
체면과 관습 때문에 정작 스스로는
그 음식을 대접받기도 싫고
대접하기도 꺼린다는 사실
자신은 천한 신분이 아니며
그런 신분의 사람들과
교류조차 하기 싫다는
차별적 마음
&
그것을 발끈하며 감추는
위선적 태도
이. 것. 은.
자유, 평등, 박애를 외치고 있지만
아직도 귀족 계급이 존재하는
프랑스 사회의 아이러니한 진면목이다.
각주1
국량, 局量 /궁냥/ 명사
사람을 포용하는 도량(度量)과 일을 처리하는 능력. 국도(局度). [준말] 양(量)
각주2 '뎀뿌라' : 프랑스에 있는 일식당의 메뉴판에는 튀김요리가 Tempura 라고 표기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