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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사라 Sarah LYU Oct 03. 2022

악명 높은 와인 세러모니에 당황하지 않는 법

모르면 당황하고, 알면 당당하다!- 와인 테이스팅 세러모니

멀리서 나를 찾아온 친구와 불금을 보내기 위해 레스토랑에 갔다. 프랑스 여행 중인 그녀의 예쁜 추억을 위해 고르고 골랐다. 빈 테이블을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붐비는 걸 보니 잘 고른 것 같았다. 손품 팔아 검색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랜만에 훌륭한 요리를 먹을 기대에 우리 둘은 꽤나 들떴다.


친구와 함께 자리를 잡고 앉았다. 웨이터가 오길 기다렸다. 한참을 기다렸는데도 웨이터가 오지 않았다. 왜 이렇게 오래 걸리나 싶어 보았더니, 웬걸, 우리보다 늦게 온 옆 테이블에 메뉴판을 먼저 갖다 주는 게 아닌가. 내면의 앵그리버드가 서서히 고개를 들었다. 웨이터를 주시하는 내 눈에서 레이저도 방출되었다.


손님이 많아서 그런지 그는 정말 바빠 보였다. 굉장한 속도로 쉬지 않고 움직이고 있었다. 이러다 우리는 저녁식사만 5시간 걸릴 지도 모를 일이었다. 나는 손을 들고 웨이터를 불렀다.

“S’il vous plaît !”

그는 아예 우리 쪽으론 쳐다보지도 않았다. 호기롭게 부른 내 목소리가 무색했다. 오매불망 기다리던 웨이터는 당최 볼 수가 없었다. 청개구리 같으니라고. 우리는 기다리고 또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드디어 오랜 기다림 끝에 우리 손에 메뉴판이 들어왔다. 오예!


그런데, 웬 메뉴판이 이렇게 많은지…….


뭘 봐야 할지 동공이 흔들리던 찰나, 웨이터가 프렌치 악센트의 영어로 빠르게 말해주었다.

“이것은 식사 메뉴판이고요, 저것은 음료 메뉴판, 그리고 요건 와인 메뉴판입니다.”


‘오호~ 밥 따로, 국물 따로란 말이군.’


그나저나, 늦어도 너무 늦었다. 웨이터를 소리 내서 부르니 오히려 더 늦게 오다니……. 절대로 프랑스인의 반골기질을 건드려선 안 될 일이다. 우후~




프랑스에 오래 살아온 사람에게는 약간의 민망함을, 여행 온 사람에게는 당황스러움을 주는 상황이 있다. 바로 ‘프렌치 레스토랑에서 와인 시키기’이다.


프랑스 와인 문화를 조금이라도 알고 있으면 사실 이것은 별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당사자나 지켜보는 사람이나 모두 쑥스러워진다. 특히 와인을 주문한 손님이 그 문화를 모를 경우 서빙하는 사람까지 난감해지기도 한다. 도대체 어찌 된 일이며 어느 정도로 멋쩍을까?


프렌치 레스토랑에서 주문하는 과정을 한번 보자.




소믈리에와의 소통


와인을 주문을 할 때, 예산이 대충 어느 정도인지, 어떤 맛을 좋아하는지 등을 웨이터나 소믈리에에게 넌지시 이야기하는 것이 좋다. 그런 소통은 웨이터에게 성의 있는 추천을 하게 한다. 가격이 괜찮으면서 고객이 좋아할 법한 와인을 소개해야겠다는 일말의 부담감을 가지기 때문이다.


와인은 하늘의 별만큼이나 종류가 많다. 그 모든 와인을 비전문가인 우리가 다 알 수도 없고 알 필요도 없다. 그러나 식사에 곁들이는 와인의 큰 줄기는 알아두면 유용하다.



식사 코스에 따른 와인

*아페리티프 (Apéritif) : 식전주, 식욕을 돋우는 와인
도수가 낮고 드라이한 -달지 않은- 샴페인이나 가벼운 와인

*메인 요리에 곁들이는 주 와인

*디제스티프 (Digestif) : 식후주, 소화를 도우는 와인
도수가 높고 달콤한 꼬냑이나 아르마냑 같은 와인

*술로 시작해서 술로 끝난다!* 얏호!



요리와 어울리는 와인 선택


메인과 함께 들 와인은 주로 요리 색상과 비슷한 것으로 고르면 크게 무리가 없다. 이를테면, 생선 요리에는 화이트 와인, 쇠고기엔 레드 와인, 돼지고기엔 로제… 이런 식이다.


한식에도, 치킨에 맥주, 파전에 막걸리, 삼겹살에 소주처럼 음식에 어울리는 주류가 있다. 프랑스 식문화는 그 어울림이 굉장히 섬세하다. 우리가 ‘음식 궁합’이라고 말하는 것처럼, 프랑스에서도 음식과 와인과의 조화를 ‘Mariage’ 즉 ‘결혼’이라고 표현한다. 요즘 들어 흔히 사용하는 ‘페어링’이나 ‘매칭’ 같은 영어 단어를 사용해도 무방할 것이다.


이렇게 음식과 어울리는 와인이 따로 있지만, 여러 명이 함께 왔을 때는 굳이 자신이 주문한 음식과 꼭 맞는 와인을 고집하지 말고, 함께 동석한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좋아할 만한 것을 고르는 것이 좋다. 한 사람이 한 병을 다 마시는 게 아니라 여러 명이 한 병을 소비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와인 한 병의 용량은 750ml로 규정되어 있다. 대략 5-6잔 정도 나오는 것으로 계산하면 된다.



와인 레이블 확인


주문을 하고 나면, 보통 음료나 주류가 요리보다 먼저 나온다. 그때 웨이터는 와인 병을 들고 와서 손님에게 보여주며 레이블을 확인시키는 과정을 거친다.


간혹 웨이터가 보여줘도 레이블을 확인하지 않는 경우가 있다. 그러다 낭패를 겪기도 한다. 같은 이름의 와인이라도 빈티지(와인의 생산연도)에 따라서 가격 차이가 엄청날 수 있다. 그래서 반드시 와인 레이블의 연도를 확인하면서 본인이 시킨 와인이 맞는지 봐야 한다. 계산할 때 금액을 보고 깜짝 놀라는 사태를 겪지 않으려면! 자주 일어나는 일은 아니지만 그래도 미리 조심하는 것이 현명하다.



시음은 누가?


확인이 끝나면 웨이터가 와인 병을 따고 잔에 따르게 된다. 커플이 앉은 테이블에는 남성에게 따르고, 여러 명이 왔을 때는 와인 비용을 지불할 사람으로 보이거나, 와인을 골라서 웨이터에게 직접 주문한 사람에게 따른다.


어떤 때는 “누구에게 따라드릴까요?” 하고 물어보는 경우도 있다.


이 단계에서 왜 <Lady First>가 아니냐고 할지도 모르겠다. 이유는 모두에게 정식으로 와인을 서빙하는 것이 아닌, 시음 단계이기 때문이다. 프랑스어로는 ‘데귀스타시옹(Dégustation)’ 이라고 한다.



와인 시음은 천천히 우아하게


웨이터는 와인잔 바닥에 살짝 깔릴 정도의 아주 적은 양만 따라 준다. 이때, 그가 다시 잔을 가득 채워줄 거라 기대하고 가만히 있으면 곤란하다. 아울러, “왜 이렇게 조금만 따라 주시나요? 좀 더 따라보세요”라고 말해도 웃픈 상황이 된다.


시음자는 와인잔을 한 손으로 멋있게 잡고 스월링(잔을 빙글빙글 돌리는 행동)을 하며 향을 맡는다. 스월링(swirling)은 공기와 접촉해야 맛과 향이 살아나는 와인의 특징 때문에 하는 행동이다. 일종의 디캔팅(decanting)이라고 보면 된다.


스월링한 와인을 입안에 넣고 잠시 음미한 다음, 특별히 나쁘지 않은 한, “괜찮네요!”라고 웨이터에게 OK 사인을 줘야 한다. OK 사인을 주지 않고 혼자서만 ‘음, 맛이 좋군’ 하고 앉아 있으면, 웨이터는 옆에서 계속 기다리고만 있을 것이다. 그로서는 시음자의 OK 싸인이 떨어진 후에야 모든 사람에게 정식으로 와인 서빙을 할 수가 있기 때문이다.


와인 시음 단계에서는, 웨이터도 옆에 서서 그 사람을 지켜보지만, 테이블에 앉아 있던 모든 사람이 그 사람을 주목하게 된다. 짧은 순간이지만 긴장하지 않을 수가 없다. 사레들거나 기침이나 콧물이 나면 얼마나 민망할까.


이것이 바로 그 악명 높은 <와인 시음 세러모니> 혹은 <와인 테이스팅 의식>이다. 이 모든 일련의 과정을 너무 급하게 하면 볼품없다. 적당히 우아하고 고상하게!





와인 시음 세러모니가 필요한 이유


예전에 나는, ‘도대체 왜 이런 세러모니를 해서 사람을 난처하게 하나?’ 하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한 번은 레스토랑에서 와인 시음을 하는데, 와인이 상했다는 것을 발견했다. 코르크 마개인 부숑(bouchon)에 알게 모르게 균열이 생기면, 보관하는 과정에서 와인이 상하기도 한다. 그걸 전문용어로는 ‘부쇼네(bouchonné)라고 한다. 한국어와 섞어서 표현하자면, ‘부쇼네 와인’ 또는 ‘부쇼네된(난) 와인’이라고 하면 될 듯하다. 불량 코르크 마개로 인해 공기가 들어가 와인이 변질된 상태를 일컫는 용어이다.


그때 깨달았다. 와인 세러모니가 약간 번거롭더라도 꼭 필요한 단계라는 것을. 그리고 시음은 웬만하면 남자가 하는 게 보기 좋은 그림이 된다는 것!


혹시 여자 친구에게만 자꾸 시음을 시킨다면 그 남자와는 헤어지라고 권유하고 싶다. 어디, 여자 친구를 기미상궁(氣味尙宮)으로 만든단 말인가!!


혹자는, 까다로운 와인 마니아처럼 “이건 내가 찾던 그 맛이 아니야” 라며 맛본 와인을 물리는 과정으로 생각한다. 실제로 그렇게 하는 사람을 본 적도 있다. 테이블의 분위기를 가시방석으로 만들어도 상관없다면 그렇게 해도 무방하다.


요즘 들어서는, 와인 시음 세러모니를, 와인의 신선도 정도를 확인하는 과정이라고 부담 없이 생각하면 편하다.



프렌치 레스토랑에서 겁내지 않고 와인 시키기


이도 저도 귀찮아서 와인을 주문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프랑스 요리에서의 와인은 요리의 풍미를 한층 올려주는 역할을 한다.


프랑스식 육류 요리는 대부분 완전히 다 익히지 않고 섭취하는 경우가 많다. 혹시라도 육류 속에 이질균이나 리스테리아균, 살모넬라균 등이 있다면, 와인이 위장에 들어가 30초에서 1분 이내에 해로운 균을 죽인다. 알코올에는 원래 살균작용의 역할도 있지 않은가. 그래서 한식에서도 생선회에는 반주를 곁들인다.


와인 속에는 또한, 탄닌 성분과 폴리페놀 성분이 풍부하여 기름기도 잡아주고 혈관도 깨끗하게 해 준다. 기름진 요리를 먹는 프렌치 레스토랑에서 두려워하지 말고 와인을 주문해보자!



<요약정리>
1. 큰소리로 웨이터를 부르면 안 된다. 손을 살짝 들거나, 웨이터와 아이컨택을 하라.
소리 내서 부르면 오히려 더 안 오는 경우가 있다.

2. 메뉴를 정했으면 반드시 메뉴판을 덮어야 한다.
메뉴판이 열려 있으면 아직 선택이 덜 끝났음을 의미하므로 주문은 더 늦어진다.

3. 웨이터가 와인병의 레이블을 보여줄 때 반드시 주문한 와인이 맞는지 확인한다.

4. 시음자의 잔에 와인을 조금 따라주면, 스월링을 하고 향기를 맡은 뒤 맛을 본다.

5. 시음 후, 와인이 특별히 나쁘지 않다면, 괜찮다고 말해줘야 한다.
시음자의 싸인이 떨어진 후에야 웨이터는 정상적인 서빙을 시작할 수 있다.


<번외 편>
프랑스를 여행하면서 레스토랑에 갔을 때, 웨이터는 흔히 영어로 된 메뉴판을 갖다 줄 것이다.
프랑스어를 모르더라도 불어 메뉴판도 달라고 요청해보자.
간혹 영어 메뉴판과 불어 메뉴판의 가격이 다른 경우가 있다.
거의 항상 영어 메뉴판의 가격이 더 높다.
이건 인종차별까지는 아니지만, 여행지에서 겪을 수 있는 바가지요금인 셈이니까 피할 수 있으면 피하는 게 상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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