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자 속의 사자(使者)
그림자 속의 사자(使者)
어둠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 사내는 흑색 도포를 걸치고 있었다. 그의 눈빛은 칼날처럼 날카로웠고, 걸음은 공기를 가르는 듯 부드러우면서도 위압적이었다. 그의 존재만으로도 주변의 기운이 묘하게 일렁였다.
단청은 검을 손에 쥐며 조용히 그를 응시했다. "네 정체는 무엇이냐?"
사내는 희미하게 웃었다. "나는 단순한 전령에 불과하지. 내 주인께서 너를 직접 만나고 싶어 하신다."
그가 손을 들어 올리자, 공간이 흔들리듯 일그러졌다. 마치 천지가 뒤집히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그것은 단순한 무공이 아니었다.
‘공간을 왜곡하는 능력이라니….’
단청은 검을 단단히 쥐었지만, 사내는 천천히 손을 저으며 말했다. "싸울 필요는 없다. 난 단지 초대장을 전하러 왔을 뿐이니."
그가 내민 것은 한 장의 검은 두루마리였다. 검은 비단 위에 붉은 글씨로 쓰인 글귀가 선명하게 빛났다.
"천지봉황제(天地鳳凰祭)에 너를 초대한다."
단청의 눈빛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천지봉황제.
그것은 단순한 대회나 연회가 아니었다. 그것은 무림의 모든 강자들이 모이는 운명의 장(場).
단청은 두루마리를 받아 들고 조용히 펼쳤다. 그 안에는 단순한 초대의 의미를 넘어서는 문장이 적혀 있었다.
[천지는 혼란스럽고, 봉황은 길을 잃었다.] [너는 그 길을 찾을 자인가, 아니면 잃을 자인가?]
그 순간, 두루마리에서 희미한 기운이 피어오르며 단청의 손끝을 감쌌다. 그것은 단순한 서신이 아니었다.
단청이 시선을 들었을 때, 사내의 눈빛이 더욱 깊어졌다.
"이 초대장을 받은 순간, 너는 이미 선택을 한 것이나 다름없다."
단청은 두루마리를 말아 쥐고 차분하게 말했다. "내가 가지 않으면?"
사내는 고개를 기울이며 나지막이 웃었다. "그럼 너의 모든 인연이 사라지겠지."
순간, 단청의 눈빛이 싸늘하게 변했다. 그의 검 끝에서 희미한 기운이 피어올랐다.
"협박인가?"
사내는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아니, 단지 운명을 알리는 것뿐이지. 너도 알고 있을 테지. 이 길을 거부할 수 없다는 걸."
단청은 한동안 침묵했다. 별들이 흐르는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는 알았다. 이 초대는 단순한 제안이 아니다. 거부하는 순간, 자신뿐만 아니라 주변의 사람들까지도 위험해질 것이라는 걸.
천무괴와의 싸움이 끝났다고 모든 것이 끝난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단지 서막일 뿐이었다.
단청은 결정을 내렸다.
"좋다. 천지봉황제로 가지."
사내는 만족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후회하지 않길 바란다."
그는 한 걸음 물러서며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그가 떠난 자리에는 한 장의 검은 깃털만이 남아 있었다.
단청은 그것을 손에 쥐고 속으로 중얼거렸다.
'이제, 모든 것이 시작되는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