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운명의 실타래
하늘의 균열이 서서히 닫히고, 푸른 안개가 걷히자 대지는 고요해졌다. 그러나 그 고요함 속엔 불길한 떨림이 스며 있었다. 마치 바람 앞의 촛불처럼, 불안정한 균형이 흔들리고 있었다.
왕휘는 땅에 꽂은 검을 뽑아 들었다. 검날에는 여전히 비익조의 불꽃이 미세하게 남아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미카소가 사라졌어도, 끝난 게 아니야." 왕휘의 음성이 차갑게 울렸다. "그는 다시 돌아온다고 했어."
켄슈이는 무언가 느낀 듯 주위를 둘러보았다. "사슬이 부서졌으니, 천지의 이치도 변하고 있을 거야. 미카소가 사라진 자리엔 새로운 균열이 생길지 몰라."
그때, 마가레타의 손목에서 빛나는 실이 꿈틀거렸다. 연리지의 뿌리에서 뻗어 나온, 보이지 않는 운명의 실이었다.
"이 실… 뭔가 잘못됐어." 마가레타는 떨리는 손끝으로 실을 어루만졌다. 실은 심하게 요동치며 갈라질 듯 아슬아슬했다.
리봉왕휘가 다가와 실을 바라보며 말했다. "운명의 실타래가 꼬이고 있다. 미카소가 사슬을 끊으며 균형이 무너졌어. 이 상태라면 비익조와 연리지는 서로를 찾을 수 없어."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멀리서 땅이 울렸다.
쭈왕이 황급히 고개를 들었다. "… 누군가 다가오고 있어."
그들은 긴장 속에서 먼지를 헤치고 나타나는 실루엣을 바라보았다. 붉은 장막을 두른 이가 천천히 모습을 드러냈다.
"오랜만이군."
그 자는 취휑니였다. 미카소의 사라짐과 함께 그의 수하들도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너희가 천지를 흔들었나 보군." 취휑니의 목소리는 나직했지만 날카로웠다. "그러나 균형을 깬 댓가는 혹독할 것이다."
왕휘는 검을 움켜쥐고 취휑니를 노려보았다. "네가 미카소의 뒤를 잇겠다는 거냐?"
"뒤를 잇는 게 아니라, 새로운 길을 여는 것이다." 취휑니는 한 손을 들어 하늘을 가리켰다. 그의 손끝에서 퍼져 나온 검은 실이 하늘의 갈라진 틈새를 따라 번지기 시작했다.
켄슈이는 이를 악물고 외쳤다. "그는 운명의 실타래를 조종하고 있어!"
마가레타의 실이 그 검은 실과 맞닿자, 그녀의 몸이 순간 휘청거렸다. 두 실이 엉키며 서로를 침범하고 있었던 것이다.
"운명의 길을 내가 새로 짜겠다." 취휑니의 입가에 비릿한 미소가 번졌다.
그 순간, 왕휘가 검을 내질렀다. "운명은 너의 장난감이 아니다!"
검끝에서 번뜩이는 불꽃이 취휑니를 향해 뻗었다. 그러나 취휑니는 미소를 지으며 손가락을 튕겼다. 그가 조종한 검은 실들이 불꽃을 휘감아 소멸시켰다.
쭈왕이 이를 악물었다. "운명을 다루는 힘… 이건 쉽지 않겠군."
그러나 왕휘는 눈을 빛내며 말했다. "운명을 고칠 수 있다면… 우리는 우리의 길을 만들 수 있어."
취휑니는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그 길이 어디로 이어질지는, 너희도 모를 텐데."
마가레타의 손목에서 빛나던 실은 점점 더 격렬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실의 끝에서…
새로운 운명의 문이 열리고 있었다.
운명의 실타래가 꼬일수록, 새로운 길은 예측 불가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
- 실타래의 끝과 시작
운명의 문이 열리자 거대한 빛줄기가 땅을 가르며 하늘로 치솟았다. 그 빛은 마치 살아 있는 생명체처럼 꿈틀거렸고, 천공에 아로새겨진 균열을 따라 퍼져 나갔다.
마가레타는 떨리는 손끝으로 그 빛을 어루만졌다. 운명의 실이 그녀의 손목을 타고 퍼져나가며, 빛줄기와 검은 실이 서로를 휘감았다.
"이 실… 나를 통해 무언가가 바뀌고 있어."
켄슈이는 이를 악물고 외쳤다. "취휑니! 네가 운명을 조종한다 해도 그 끝은 네 뜻대로 되지 않아!"
그러나 취휑니는 냉소를 지으며 실타래의 한끝을 손가락에 감았다. "운명은 조종하는 것이 아니라, 재편성하는 것. 새로운 질서를 짜는 것이지."
그가 손가락을 튕기자 검은 실은 더 깊게 빛의 실을 조이고, 마가레타의 발밑에서 검붉은 문양이 피어올랐다.
리봉왕휘가 검을 높이 치켜들었다. "운명의 질서를 짜는 게 네 역할이라면… 우리는 그 질서를 무너뜨릴 것이다!"
순간, 그의 검끝에서 불꽃이 타올랐다. 그 불꽃은 비익조의 잔불이었다.
"비익조의 불꽃…!"
취휑니의 표정이 굳었다.
쭈왕이 왕휘의 곁에 섰다. "운명의 실이 얽힌다 해도, 우리의 의지가 그 실을 자를 것이다."
왕휘가 검을 내리치자, 불꽃은 운명의 실에 닿았다. 마가레타의 손목을 감싸던 검은 실이 불타며 끊어졌다.
그 순간, 하늘이 또다시 흔들렸다.
"뭐지…?" 마가레타가 놀라 중얼거렸다.
운명의 문 너머에서 또 다른 존재가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은은한 푸른빛을 두른 비익조였다. 그러나 그 비익조는 반쪽짜리였다. 날개는 하나뿐이었고, 한쪽 눈은 어딘가 사라진 듯 흐릿하게 빛났다.
"연리지… 어디 있지?" 비익조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켄슈이는 손을 움켜쥐며 외쳤다. "비익조와 연리지는 함께해야 온전해진다… 지금은 불완전한 모습이야!"
취휑니가 나직이 웃었다. "운명의 실이 엉켜버렸으니, 비익조도 자신의 반쪽을 찾을 수 없지."
왕휘가 이를 악물고 말했다. "우리가 그 둘을 다시 만나게 할 것이다."
취휑니의 검은 실은 여전히 하늘을 뒤덮고 있었고, 비익조는 그 실에 얽매여 한쪽 날개로만 몸부림쳤다.
마가레타가 조용히 손을 뻗었다. "연리지의 뿌리가… 나에게 답할 거야."
그녀의 손끝에서 옅은 초록빛 실이 피어났고, 그 실이 천천히 비익조를 감쌌다.
그러자 하늘 저편에서 또 하나의 존재가 서서히 모습을 드러냈다.
연리지였다. 땅에서 자라난 나무였지만, 그 가지가 하늘을 향해 뻗어 있었고, 마치 비익조의 잃어버린 날개가 된 것처럼 서서히 서로를 향해 다가가고 있었다.
취휑니가 크게 외쳤다. "안 돼…!"
하지만 이미 실타래는 풀리기 시작했다.
비익조와 연리지는 서로를 향해 몸부림쳤고, 마침내 하나로 합쳐지는 순간—
하늘의 균열에서 천지봉황의 형상이 드러났다.
그것은 천지의 질서를 상징하는 궁극의 존재였다.
왕휘는 검을 굳게 쥔 채 중얼거렸다. "이제… 운명도 우리 뜻대로 움직일 수 있다."
그리고 그 순간, 천지봉황이 울부짖었다.
운명의 새벽이 밝아오고 있었다.
--- 찰라의 순간 (파노라마)---
장면 1: 천상의 재회
달빛이 흐릿하게 비치는 밤, 비익조의 한 쪽 날개가 떨렸다. 하늘을 나는 것이 불가능한 한 쪽 날개를 가진 새. 그러나 그는 연리지에게 보내는 마지막 신호를 담아, 구름 위를 헤치고 달에게 비명을 토하듯 울부짖었다.
"네가 나를 들을 수 있기를… 이 바람이 너에게 닿기를…"
그 순간, 지상에서는 연리지의 잎사귀가 미세하게 떨리며 은은한 빛을 뿜었다. 뿌리는 단단히 대지를 움켜쥐고 있었지만, 그 마음은 늘 하늘에 닿고자 했던 것이다. 밤바람이 지나가자 잎은 노래하듯 흔들렸고, 이는 비익조가 보내는 애절한 외침에 대한 응답이었다.
장면 2: 천지간의 이치
갑을병정무기경신임계, 열 개의 하늘 기운이 회오리처럼 엉키고, 자축인묘진사오미신유술해, 열두 가지 땅의 힘이 서로 맞부딪쳤다. 천지가 진동하자 하늘은 뇌명을 터뜨렸고, 땅은 균열을 일으켰다.
"이치가 흐트러진다…!" 마가레타 공주는 땅을 짚고 휘청였다.
리봉왕휘가 그녀를 부축하며 말했다. "천간과 지지가 서로 부딪히고 있다. 비익조와 연리지의 인연이 이 균형을 깨뜨린 것인가…?"
그러나 두 사람은 서로를 바라보며 희미하게 웃었다. 균형이 깨어진 것은 오히려 새로운 조화가 시작된다는 뜻이었다.
장면 3: 억겁의 인연
전쟁의 불길이 치솟는 한복판에서, 검은 깃털 한 올이 불길 속을 천천히 가로질렀다. 그 깃털이 떨어진 자리에는 연리지의 씨앗이 있었다.
비익조의 깃털과 연리지의 씨앗. 둘은 수천 번의 윤회를 거치며 서로의 자취를 좇아왔다. 중세의 카산드라와 바토르웽, 인디언의 주먹쥐고일어서와 올래말래, 그리고 그들이 기억하지 못하는 수많은 삶들.
그들은 서로에게 가 닿기 위해, 이 환생의 굴레를 끊고자 했다.
"우리, 이번에는… 끝까지 함께하자."
--- 찰라의 순간 (파노라마)---
---
- 천지의 균형, 영원의 재회
비익조가 다시 하늘을 날았다. 그러나 그 날갯짓은 여전히 불완전했다. 단 하나의 날개로는 높이 오를 수 없었고, 연리지는 뿌리를 뽑고 그를 따라갈 수 없었다. 그러나 둘의 마음은 오랜 세월과 세 번의 환생을 넘어 서로를 알아보았다.
천지의 이치는 차올라의 목소리 속에서 더욱 명확해졌다. "갑을병정무기경신임계… 자축인묘진사오미신유술해… 운명의 고리는 끊어질 수 없다. 비익조와 연리지는 본디 하나이니, 하나가 다시 둘을 이루고, 둘은 하나로 돌아가리라."
리봉왕휘는 무겁게 입을 열었다. "그러나 그 균형을 되찾기 위해서는 누군가의 희생이 필요하다."
마가레타의 손이 떨렸다. 그녀의 눈동자엔 과거의 기억, 전생의 아픔, 그리고 억겁의 인연이 어렸다. "내가 그 고리를 다시 맞추리라. 내가 연리지의 뿌리가 되어 비익조의 날개를 받쳐줄 것이다."
켄슈이는 눈을 감고 침묵했다. 마가레타의 희생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천둥과 번개가 다시 내리칠 때, 천지의 문이 열리고, 그 안에서 우리의 영혼은 또 다른 윤회를 맞이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마가레타… 널 잃는 것을 각오해야 한다."
하늘은 점점 어두워졌고, 번개의 첫 섬광이 하늘을 가르자, 마가레타는 연리지의 뿌리 위에 발을 내디뎠다. 그녀의 존재는 서서히 나무와 하나가 되며, 뿌리는 점점 더 깊어졌고, 연리지는 하늘을 향해 조금씩 가지를 뻗어갔다.
비익조는 마가레타의 마지막 미소를 바라보았다. 그들의 마음은 서로의 심장 속에서 다시 하나가 되었다.
천지는 요동쳤고, 다시 고요가 찾아왔다. 연리지는 이제 하늘에 닿아 있었고, 비익조는 두 날개를 펼쳐 힘차게 날았다.
하늘과 땅, 비익조와 연리지는 마침내 균형을 되찾았다.
그러나 새로운 윤회가 시작되었음을, 그들은 아직 알지 못했다.
---
- 빛과 그림자의 춤
하늘에는 비익조의 날갯짓이 희미하게 남긴 구름 자국이 어른거렸다. 연리지는 여전히 땅 깊숙이 뿌리를 내리고 있었지만, 그 잎사귀 끝이 점차 하늘을 향해 뻗어 나갔다. 마치 비익조와 하나가 되려는 듯.
마가레타는 눈앞의 광경을 바라보며 애틋한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리봉왕휘는 한 손에 검을 쥐고, 반대 손으로 천상의 기운을 느끼며 고요히 서 있었다. 그의 주위로 천지간의 기운이 소용돌이쳤다.
"이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소." 리봉왕휘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강렬했다.
"우리가 희생하지 않으면, 천지의 균형은 무너질 것이오." 마가레타가 그 말을 되뇌이자, 주위에 있던 화란과 취휑니, 뽕슈아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의 얼굴에는 결연함과 슬픔이 동시에 서려 있었다.
천둥이 하늘을 가르고, 번개가 대지를 꿰뚫었다. 그 순간, 비익조의 날개 한 쪽이 불타오르듯 타오르며 소리 없는 비명을 질렀다. 연리지의 잎 끝도 붉게 타들어갔다.
"지금이오!" 뭥미킹이 소리쳤다. 그의 처녀자리별의 기운이 반짝이며 리봉왕휘의 검 끝에 실렸다.
켄슈이는 쌍둥이별의 힘을 담아 연리지의 뿌리 쪽으로 에너지를 흘려보냈다. 쭈왕은 황소자리별의 기운을 불러들여 그 균형을 유지하려 했으나, 점점 기운이 불안정해졌다.
"이대로면 천지간의 이치가 어긋납니다!" 자이랭이 절규했다.
그때, 마가레타가 한 발 앞으로 나섰다. 그녀의 손끝에서 마가족의 신성한 불꽃이 피어올랐다.
"한쪽 날개가 사라진 비익조가 홀로 날 수 없듯, 나도 리봉왕휘, 당신 없이는 존재하지 못합니다. 그러니..."
마가레타는 리봉왕휘의 검 끝을 자신의 심장 가까이에 가져갔다. 눈물을 머금은 채.
"우리가 함께 사라져야만 균형이 바로잡힐 것이오."
리봉왕휘는 손끝을 떨며 검을 놓치지 않으려 안간힘을 썼다. 그러나 마가레타의 눈빛은 흔들림이 없었다.
하늘에서는 비익조의 마지막 날갯짓이, 땅에서는 연리지의 마지막 잎사귀가 동시에 떨어졌다.
천지는 다시 고요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희생의 순간, 비익조와 연리지는 한 점 빛으로 엉켜 서로를 감싸 안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