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바람의 초성은 없다
4. 바람의 초성은 없다
그는 오래된 전신주 아래에서 귀를 기울였다.
철사 사이로 바람이 말을 걸고 있었다.
그러나 아무런 초성도 들리지 않았다.
“ㄱ도, ㅅ도, ㅎ도 없어.
이건... 이름을 알 수 없는 소리야.”
플릭시아 동쪽, 언어의 가장자리에서 태어난 그는
단 한 번도 자신의 이름을 불러본 적이 없었다.
모든 이름에는 초성이 있었다.
그러나 바람은, 그 어떤 자음도 가지지 않았다.
어린 시절, 그는 꿈속에서 어떤 여인의 목소리를 들었다.
“너는 소리 이전의 기억에서 왔어.
그러니 초성을 찾지 마.”
그는 방황했고, 도시의 말 없는 벽들을 두드렸고,
간혹 지나가는 행인들에게 묻곤 했다.
“바람의 초성을 들으셨나요?”
사람들은 웃었다.
“그건 그냥 기압차야, 날씨지.”
하지만 그는 믿지 않았다.
플릭시아엔 설명되지 않은 것들이 있었으므로.
그날 밤, 그는 가장 높은 언덕에 올랐다.
그리고 종이 한 장을 꺼냈다.
'바람의 이름'을 적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펜 끝은 단 하나의 글자도 쓰지 못했다.
모든 자음이, 그 종이 위에선 미끄러졌다.
그때였다.
등 뒤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너는 드디어 그걸 이해했구나.
바람은 읽히는 것이 아니라, 살아지는 거야.”
그는 고개를 돌렸지만 아무도 없었다.
단지 바람이, 다시 한번 그를 통과할 뿐.
그날 이후 그는 글을 쓰지 않았다.
대신 바람 속에 섞여 도시를 떠돌았다.
아무 초성도 남기지 않은 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