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모임에서 만나 알고 지낸 지 6년이 된 지인의 메시지였다. 졸저 <비혼이 체질입니다>를 읽은 후였다.
퇴근 후 만나서 저녁을 먹으며 그는 말했다.
“저도 혼자 살아요. 혼자 사는지 아무도 안 물어봐서 말 안 했을 뿐이에요.”하고 활짝 웃었다.
그동안 혼자 가슴에 묻었던 사실을 알렸다. 마치 타고 있던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듯이 가볍게.
정확히 말하면 그는 올해 성인이 된 딸과 함께 산다. 그동안 딸 이야기는 종종 했지만, 남편 이야기는 거의 한 적이 없다.
“남편과 사이가 안 좋은 정도로만 짐작했어요. 주변에 배우자와 각방 쓰며 사이 안 좋은 사람 많으니까.” 나도 가볍게 말하며 웃었다.
그는 어쩌면 비밀 아닌 비밀을 먼저 물어주기를 기다렸는지도 모른다. 혼자 탄 엘리베이터에서 빨리 내리려고. 하지만 상대가 말하지 않으면 가정생활에 대해 묻지 않는 게 예의라는 관습을 착실히 따르는 바람에 그는 계속 혼자 엘리베이터에 있었다.
홀로 사는 것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결혼한 적이 없는 싱글과 아이가 있고, 이혼한 싱글은 입장이 또 달라요. 또래들보다 일찍 출산해서 이제 아이가 성인이라 갑자기 시간이 많아졌어요. 이제 나에 대한 고민이 생겨요. 내가 뭘 좋아하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고민 중이에요. 주말마다 운동하러 나가고, 집에 있어도 가만히 못 쉬고 자꾸 일을 만들어서 몸을 움직이는데 우울한 상태인데 부정하는 건지도 모르겠어요.”
그는 자기를 잘 알고 자기만의 생활 철학이 있어서 일상을 촘촘하고 깔끔하게 꾸리는 것처럼 보인다. 마음속 우물의 깊이까지는 알 수 없지만, 터득한 지혜를 직장생활과 아이를 양육하는 데 적절하게 사용한다. 다만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마음의 이완’을 경계하고, 쓸모없다고 여기는지도 모른다. 가끔 혀를 내두를 고집도 부리고,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드는 엉뚱한 짓도 필요하다.
당장 쓸모없어 보이는 딴짓의 대가라면 영화 <시네마 천국>의 토토를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다. 칸 영화제 심사위원 대상, 미국 아카데미에서 외국어 영화상을 받은 <시네마 천국>을 본 사람이라면 ‘맑은 눈을 가진 귀여운 광인’ 토토를 잊지 못할 것이다. 엄마가 우유 사 오라고 보냈더니 중간에 영화관으로 새버린다. 우유 살 돈을 영화 티켓과 바꾸고 엄마에게 등짝 스매싱을 당하는 못 말리는 딴짓 대마왕.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우유 대신 토토는 쓸모없는 짓에 시간과 돈을 쓴다.
토토에게 영사실과 영화는 지루한 작은 동네를 떠나 세계를 여행하는 채널이다. 또 동네에서 만날 수 없는 낯선 사람들을 만나는 사교장이다. 인생의 희로애락을 맛보고, ‘어른 식’ 사랑도 배운다. 토토의 절친이자 영사기사인 알프레도는 토토에게 말한다.
“여기에 사는 동안은 여기가 세계의 중심인 줄 알지 변하는 건 아무것도 없어.”
내가 서 있는 세상도 토토가 사는 세상만큼 좁다. 1인 가정이 늘고 있지만 여전히 4인 가족 풍경으로 재단하는 말을 종종 듣는다. “비혼이라서 그래.”
‘결혼해서 그래’란 말은 잘 안 쓰면서 ‘이혼해서 그래, 혼자 살아서 그래’가 아무렇지도 않은 세상. 혼자 사는 사람을 이해하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기보다 분류하는 언어로 다름을 규정하는데 익숙한 세상. 지인이 싱글맘이라고 먼저 말하지 않은 이유일 것이다. 나는 그에게 말했다.
“힘든 일을 모두에게 말할 필요는 없지만 한 사람에게는 말해야 해요. 대나무숲은 꼭 필요하거든요.”
대나무숲은 머스트해브 아이템이라는데 반대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각자 등에 진 생활의 무게가 다르고, 느끼는 피로도도 다르다. 피로에 공감이 필요한데 분류하는 언어를 듣는다면 집에 돌아와서 자책하게 된다. 쓸데없이 말했다고. 피가 흐르고 살아 숨 쉬는 단 한 사람의 공감이 절실하지만, 분류하는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에게 둘러싸이면 감정 이완보다는 긴장을 선택하고 싶다.
울고 싶을 때, 폴짝폴짝 뛰어오를 정도로 기분 좋은 날, 함께할 상대가 없어서 김빠지는 날, 말하기 껄끄러운 고민이 있을 때, 영화 속 인물은 치대기에 제격이다. 꺼이꺼이 울어도 다른 사람에게 소문내지도 않고, 나만의 웃음 포인트에서 빵 터져도 광인으로 취급받지도 않는다. 이유를 알 수 없이 혼자 눈물을 쏟아낸 후에 머쓱하면서도 상쾌하다. 영화 속 인물들을 만나며 토토가 그랬던 것처럼.
하지만 “영화는 현실이 아니다. 현실은 영화보다 훨씬 혹독하고 잔인해. 그래서 인생을 우습게 보아선 안 돼. 우리 모두 각자 따라가야 할 별이 있기 마련이지.” 알프레도의 말대로 토토는 영사실을 벗어나 자신의 별을 따라 로마로 가서 영화감독이 되어 고향을 찾는다. 우리도 영화를 보다 보면 찾아 헤매던 뜻밖에 내 별을 발견할지 누가 알겠는가.
“무슨 일을 하든 자신의 일을 사랑하렴. 네가 어렸을 때 영사실을 사랑했듯이.” 알프레도가 토토에게 건넨 말이다.
한때 영화든 사람이든 무언가를 사랑한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내 삶의 모양이 어떻든, 다른 사람의 모양이 어떻든, 삶을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라고 말하고 싶다.
이 책은 결혼을 기준으로 구별 짓는 미혼, 비혼, 이혼 등의 단어보다 ‘홀로 사는 풍경’에 무게를 두었다.
나처럼 결혼하지 않고 혼자 사는 사람, 결혼했어도 여러 가지 이유로 혼자 사는 사람, 사별이나 이혼으로 혼자가 된 사람이 봉인해서 가슴 깊숙이 넣어둔 감정을 들추어내고, 위안으로 이어질 수 있으면 좋겠다. 홀로 라이프의 기쁨과 슬픔, 생계와 주거 프레임, 관계의 어려움과 연대, 나아가 죽음의 여러 풍경까지 영화 속 인물과 사건을 편집해서 확대해 보았다.
홀로 라이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상대가 그리울 때, 속이 부글부글 끓는 일이 있지만 입 밖으로 말하면 쪼잔해 보일 때, 나도 잘 모르는 감정 조각들이 가슴속에서 둥둥 떠다녀 개운하지 않을 때, 주말이나 연휴에 넷플릭스나 왓챠를 뒤적이며 볼 게 없어서 욕이 나올 때, 곁에 두고 펼치는 책이 되면 좋겠다. 슬기로운 홀로 라이프를 위하여.
매주 수요일 영화 속 홀로 라이프 풍경을 연재합니다. 이 글은 출간 준비 중인 책의 원고 일부입니다. 멀리서 보면 다 비슷해 보여도 가까이서 보면 삶의 모양이 다양하듯이 홀로 삶을 꾸리는 이들도 마찬가지입니다. 홀로 살지만 홀로가 아닌 삶이죠. 그럼에도 '홀로'란 생각에 갇힐 때가 종종 있어요. 가족이 있어도 마찬가지고요. 그럴 때 편안한 옷으로 갈아입고 OTT 영화를 볼 리모콘을 누르시면 됩니다.
브런치북 <이번 생은 처음이라 갈팡질팡할 때>, 매거진 <영화로 인생 읽기>에서 썼던 글이 씨앗글이 되기도 했습니다. 책이라는 하나의 주제로 수렴하면서 어떻게 달라졌는지 비교해 보셔도 좋을 거 같아요. 영화에서 위안도 받고, 간접 경험을즐기시는 분들의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