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형과 함께하는
자랑 한 바탕, 근황 한 스푼을 준비해 왔다.
그녀 앞에서 내숭을 피우며 밥을 못 먹는 척을 하다가는 굶어 죽게 생겼길래 그냥 평소대로 아주 빠른 속도로 밥 한 공기를 비웠다. 그리고 지형이가 밥을 먹을 때까지 20분 정도 도란도란 이야기를 했다. 지형이는 내가 한창 광대 노릇을 할 때 친해져서인지, 내게서 광대 모먼트가 종종 나오는 걸 제법 반긴다.
아무튼 나룻배 사건이 있던 날, 아무 생각 없이 평소 하던 대로 그들을 목적지까지 데려다주고 있었다. 정말 많이도 다니던, 내가 살던 자취방의 도로명 주소이기도 했던 '권삼득로' 표지판을 보자 기분이 이상했다. 단순히 아쉬워서가 아니라, 가슴 한편이 아련해지고 센티해졌다. 숨 쉬듯 만나서 놀던 이 사람들도 지금처럼 자주는 못 보겠고, 이 거리도 예전만큼 자주 올 수는 없겠구나. 내 20대가 고스란히 살아 숨 쉬는 곳이라서 그랬던 것 같다.
지형이는 꽃을 좋아한다. 꽃을 한번도 사본 적이 없어서, 근처 꽃집을 검색하고 인스타 DM으로 문의 및 예약을 해 두고 꽃을 줬다. 아주 보람된 일이었다. 지형이와 어울리는 꽃을 찾으면서 고민하는 순간들이 참 좋았다.
이 모든 것이 하루에 일어난 일들이다. 그녀는 이날 앞머리를 냈다. 원래도 예뻤는데,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잘 어울려서 새로운 사람 만나는 것처럼 긴장이 됐다. 가고 싶었던 소양에 있는 카페에 갔다. 사람이 미어터지는 것만 봤었는데 평일이라 그런지 아주 한적했다. 햇볕도 좋았고, 저수지에 보이는 윤슬도 예뻤다.
그리고 객리단길에 가서 뇨끼를 먹었다. 뇨끼 먹기 전에 소품샵 구경도 했는데, 그녀가 눈여겨보는 듯한 키링이 있어서 몰래 사서 그날 밤 칵테일을 마시며 건넸다. 참 부지런히도 함께한 날이었다.
어렸을 때,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에 예쁜 들꽃이 있으면 꺾어다가 엄마에게 가져다줬었다. 어디서 배웠는지 몰라도 꽤 오랫동안 그렇게 했었다. 그 후로 내 삶에서 식물은 큰 존재감 없이 있었는데, 그녀가 식물을 좋아하기 때문에 나도 자연스럽게 식물과 가까워지고 있다. 관심사를 공유할 수 있기 전에, 그 관심사를 거리낌 없이 공유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건 정말 행복한 일인 것 같다.
블루투스 목록에 여자친구 휴대폰이 있었으면 했고, 선바이저 비닐을 여자친구가 뜯게 하려고 놔뒀었는데 그 모든 것을 이뤘다. 그리고 그 사람이 지형이라서 행복하다.
그리고 나는 다음 날에 임용식에 참석하고, 근무지(외딴섬)로 들어가야 했기 때문에 떠나야만 했다. 아주 가기 싫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교육지원청에서 임용식을 하는데, 다른 분들은 이미 연수원 동기들인지 친해 보였다. 혹자들은 근무지에서 출퇴근하려면 1시간이 걸린다고 하소연을 했는데, 내겐 그저 배 부른 소리로 들릴 수밖에 없었다. 거기 있던 직원 분들도 '오진우가 누구야?'라고 물으시고, 내 얼굴을 보더니 힘내라고 한 마디씩 해 줬다. 그럴 때마다 힘이 빠지기 시작해서, 임용식 다 끝나고 나서는 컨디션이 정말 안 좋아졌었다. 그 기분으로 3시간 배를 타고 섬으로 들어가야 한다는 것이, 정말 이런 거 다 꾹 참고 사는 게 어른인가 싶었다.
멀미도 안 하는 편인데, 먼바다라서 배가 엄청나게 흔들려서 마지막 30분은 꽤 힘들었다. 배에서 내리자 행정실장님과 시설 주무관님이 마중을 나와 계셨다. 선착장에서 학교까지는 차 없이 가기 힘들기 때문에 .. 일단 짐을 싣고, 면사무소에 가서 전입 신고를 했다. 전입 신고 1개월 후부터는 도서민 할인으로 뱃삯이 1,000원이라며 그걸 가장 먼저 하라고 행정실장님이 귀띔을 해 줬기 때문이다.
사실 내리자마자 헛웃음이 나왔다. 이런 섬은 살면서 처음 왔는데, 여기서 근무를 하면서 다음 발령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게 저때까지만 해도 꿈같이 느껴졌었다.
살면서 처음으로 전입 신고를 했고, 하는 내내 이렇게 간단한 거였으면 시험 준비할 때 전주로 주소지 옮기고 전북으로 봤어야 했는데라는 생각을 103314번 정도 했다.
그래도 2일에 입도를 해서, 3일인 금요일에는 배를 타고 '뭍'으로 나올 수 있었다. 쏜살같이 전주로 올라가서 문명을 즐겼다. 맛있는 것을 앞에 두고, 사랑하는 사람을 앞에 둔 사람의 진실의 광대!
무슨 군대 휴가도 아니고 .. 시간이 너무 빨리 가서 눈물을 머금고 섬으로 돌아갔다.
사람이 없어서인지, 해수욕장이 정말 깨끗하다. 그리고 해변가에서도 팔뚝만 한 고기들이 뛰어오르는 게 보인다. 먼바다라서 작은 고기가 안 잡힌다고 한다.
이날은 아주 지쳐 있는 샛병아리 신규를 가엾게 여긴 시설 주무관님이 '같이 짐 좀 실으러 선착장 좀 다녀와요.'라면서 사무실에서 꺼내줬다. 그리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본인도 처음에 여기 섬에 왔을 때 믿기지가 않았다고 하면서 격려를 해 줬다. 이 레퍼토리는 .. 내가 716의경대에 자대 배치를 받고 나서 일주일이 채 안 됐을 때 조례호수공원 방범 근무를 나간 날, 조OO 수경님이 나도 너처럼 처음 자대 왔을 때 많이 힘들었다고 격려해 준 게 생각났다. 그때 '뒤로 걷기'라는 말을 해 주면서, 앞만 보고 가다 보면 언제 끝날지 모르지만 뒤로 걸으면 내가 걸어온 발자취를 보면서 갈 수 있기 때문에 조금 힘이 날 거라고 했었다. 듣는 내내 '1달 후에 전역하니까 그런 마음 편한 소리를 하는구나.'라고 생각했었는데, 왜 전역한 지 5년이 지난 지금 비슷한 상황이 내 앞에 놓여 있는지 이해하기 힘들었다.
그래도 탁 트인 풍경을 보니, 가슴이 뻥 뚫리는 듯한 기분까지는 아니더라도 기분 전환은 됐다. 행정실장님도 그렇고 시설 주무관님도 그렇고 정말 너무 좋은 분들이라 다행이다. 인복이 많은 편인 것 같기도 하다.
눈여겨보았다. 뭍으로 나가면 반드시 사서 놀라게 해 주겠노라고 다짐했다.
얘는 어쩌자고 이렇게 머리도 작고 예쁜 걸까 .. 난 다라이 가지고 와도 겨우 얼굴 가려질 텐데 ..
지형이가 가 보고 싶었다던 카페에 갔다. 아메리카노를 온더락처럼 줘서 재밌었다. 나는 커피를 못 마시는데 마땅히 마실 만한 논커피 음료가 없어서 그냥 피스타치오 아이스크림을 주문했다. 내가 생각한 피스타치오 아이스크림은 청록색인데 .. 어째서? 그래도 재밌었다. 지형이랑 함께해서.
이날 한 얘기들이 전부 기억나는 건 아니지만, 모든 말이 좋았다. 구체적인 이야기는 기억 안 나도, 서로의 가치관과 코드를 확인할 수 있었던 시간. 그리고 생각보다 우리가 비슷한 사람이라는 걸 느껴서 행복했던 시간.
급식으로 보쌈이 나오는 날이 있어서 며칠 전부터 손꼽아 기다렸다. 눈치를 보면서 고기를 엄청 많이 가져왔다. 천천히 음미하면서 먹고 싶었는데, 다른 분들이 생각보다 밥을 빨리 먹는 바람에(사실 내가 너무 많이 퍼온 것일지도) 남은 것들을 급하게 입에 욱여넣어야 했다. 뭔가 체할 것 같았는데, 저녁에 체해서 힘이 쭉 빠졌다. 그래도 맛있었다. 또 보쌈이 나왔으면 좋겠다. 그나저나 고기를 어쩜 그렇게 향긋하게 잘 삶는 건지 나중에 조리사님한테 여쭤봐야지 ..
그리고 또 전주에 와서 지형이를 만났다. 새로운 식당에서 뇨끼도 먹고, 좋은 카페도 가고 행복했다.
그리고 떠나는 날, 아점으로 만두와 밥을 먹었다. 지형이는 만두를 삶아서 먹는다고 한다. 너무 귀엽다. 살면서 처음 들어본 조리법인데, 맛이 괜찮다고 박박 우기는 게 너무 귀엽다. 나중에 찜기로 쪄줘야겠다. 그리고 나도 지형이의 삶은 만두를 먹어봐야겠다.
전주에 두고 온 오포티지가 방전되지 않도록 지형이에게 부탁해 블랙박스 선을 뽑았다.
난 저렇게 지면과 가까이에 안개가 짙게 낀 걸 본 적이 없는데, 여기 사람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바람 불거나 해 뜨면 걷혀요.'라고만 한다. 그리고 덧붙인다. '근데 저게 안 걷히고 그대로 내려오면 배가 안 떠서 못 나가요.'
출장(출장비 없음) 가기 위해 오도방구를 탔다. 28년 평생 이륜차 경력은 자가 자전거, 카카오 바이크, 우도에서의 스쿠터뿐인 나로서는 많이 긴장이 됐다. 하지만 바람을 가르며(거문도의 바닷바람을 만나고 나면 문자 그대로 표현한 것임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무사히 다녀올 수 있었다.
오늘 하루가 유독 길었다. 알 듯 말 듯한 업무 매뉴얼. '아, 이제 좀 보이는 것 같기도 한데?' 싶으면 기다렸다는 듯 나타나는 아예 처음 보는 업무. 행정실 일이 힘들다고 듣기는 많이 들었지만, 어떤 게 힘들다는 건지는 하루하루 체험하며 깨닫고 있다. 익숙해지면 5분도 안 걸릴 업무를 2시간 동안 붙잡고 있는 걸 볼 때마다 나 자신이 답답해서 한 10년 차를 옆에 두고 맨투맨으로 지도를 받고 싶은 심정이지만, 어떻게든 되겠지. 4시 10분 퇴근이라지만, 신규라서 눈치가 보여서 퇴근을 못하는 것도 아니고 그냥 내가 잘하고 싶은 마음에 퇴근을 하지 않는다. 계속 있어도 할 수 있는 게 없어서 의미 없긴 하지만 .. 업무 환경에 많이 노출되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그리고 집에 와서는 조금씩 국어 공부를 하고 있다.
아빠가 요즘 힘든가 보다. 웬만해서는 티를 안 내는데, 엊그제 카톡으로 내색을 해서 엄청나게 걱정이 됐다. 그래서 아침에 장문 카톡을 보내고, 퇴근하고 전화를 했다. 전화를 안 받길래, 조금 화가 났다. 샤워를 하면서 이 화의 근원을 찾다가 내린 결론은 근심이었다. 내게는 너무 큰 존재고, 내가 세상에서 가장 존경하는 사람이 흔들리는 모습. 그것만큼 심장이 철렁하는 게 없다. 씻고 밥 먹을 준비를 하는데 전화가 와서 받으니, 목욕탕이었다고 하며 애써 괜찮은 척을 하는 아빠의 목소리를 들으니 더 울적해졌다. 그래서 아빠 운동 끝나는 시간에 맞춰서 다시 전화를 해서, 평소 나답지 않게 섬 생활은 어떻고, 행정실은 어떻고, 여기 음료수 가격이 육지의 몇 배고, 출장 가면서 처음으로 오토바이를 탔고, 왜 관용차량은 못 타는지에 대해서 조잘조잘 떠들었다. 다행히 아빠의 목소리가 점점 밝아지는 듯했다. 생일 때나 길게 연차를 붙여서 나갈 수 있으면 나가서 집에 가겠다고 했다. 그리고 솔직하게 말했다. 직장 생활을 해 보니, 아빠 생각이 많이 나서 아빠가 보고 싶다고. 그랬더니 아빠가 고맙다고 했다. 전화를 끊는데, 아빠가 '우리 아들이…'라고 하는 걸 들었다. 미처 통화 종료를 누르기도 전에 함께 차를 마시던 당신의 친구들에게 아들 자랑을 했으리라. 그제야 나도 기분이 좋아졌다.
밤 10시쯤 일과가 끝나고, 씻고 자리를 정리한 후 지형이와 페탐을 한다. 1시간, 2시간 정도 떠들다가 얼굴을 보다가 하다 보면 잠이 스르르 온다. 이를 악 물고 '안 졸린데?' 하다가 조는 걸 들키는 바람에 강제 취침을 하면서, 나가서 지형이를 볼 생각을 하면서 한 주를 버티고 있다. 내일이면 벌써 섬을 나가는 날이다. 부디 날씨가 좋아서 배가 뜨길. 반드시 나가야만 한다! 지형이가 없었다면 내 섬 생활은 어땠을까? 상상도 하기 싫을 정도로 힘들었을 것이다. 기댈 곳 하나 없다면, 여기서 버티기가 상당히 어려웠을 거다. 지형이라는 '믿는 구석'이 있어서 참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