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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근희 Feb 06. 2023

'설날'에 친구들에게 '왜 결혼 안 하냐 묻다'

명절 꼰대는 내가 되었던 것인가. 

오랜만에 설을 맞이해서 고등학교 친구들을 만났다. 코로나를 겪으면서 모임도 뜸해지고, 단체로 모인 카톡방은 점점 대화가 줄어들고 이제는 살아있는지 확인하는 정도로 뜨문뜨문 글이 올라오는 공간이 되어버렸다. 그 방의 멤버 중에 개인적으로 종종 연락하는 친구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보니, 전주에 방문할 예정이 있었기에 간만에 얼굴을 보는 것도 좋을 거 같았기에 만나게 되었다.


이 친구는 현재 베트남에서 직장생활을 하고, 명절 때나 드문드문 내려올 수 있는 상황이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이 친구의 주관으로 다시금 얼굴을 보게 되었으니, 어쩌면 우리의 마음이 부족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주여행 중에 발견한, 하트모양으로 그려진 가지와 잎사귀로 만든 그림


"몇 시쯤에 괜찮아?"

"음, 12시 정도에 만나서 밥 먹으면 되지 않을까?"

"다른 애들도 전주에 있다는데 같이 볼래?"

"좋지 좋지, 내가 최근에 가본 곳 중에 괜찮은 음식점 있으니까 그리로 가자. "

"ㅇㅋ, 그럼 12일에 보는 걸로!"


대학시절에는 학교가 서로 달라도 자주 만나서 술잔을 기울이고 밤을 지새우며 시간을 보냈었고, 서로 재는 것 없이 그 순간에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는 것만으로 충분했던 사이였는데 16년이 지나면서 우리의 관계는 어느덧 세월에 무뎌진 관계가 되어버린 건 아니었을까. 그래도 근 6년 만에 다시 보니 반가운 건 마찬가지, 서로의 이해관계가 없이 같은 반이라는 또 친구의 친구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만났던 우리이기에, 오랜만에 만나도 어색함 없이 이야기를 할 수 있었다.


"진짜 오랜만이다, 잘 지냈어?"

"나야 뭐 그냥저냥 살았지."

"너 왜 이렇게 늙어버렸냐 큰일이네"


사전에 내가 추천했던 음식점 '백운면'이란 곳으로, 전주로컬의 까다로운 입맛을 충족시키기에 충분하면서, 또한 면러버인 나의 기준을 채우고 넘치기에 처음 알게 된 이후에 며칠 동안 연속으로 가서 먹고 주변에도 자신 있게 추천을 했던 곳이었는데 명절에 문을 닫은 상태였다. 이제는 타지에서 직장생활을 하는 친구들에게 오랜만에 맛있는 음식을 맛 보여주고 싶었지만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바로 근처에 있는 24시 뼈해장국 집으로 이동했다. 이곳은 종종 새벽까지 술을 마시고 집에 들어가기 애매할 때 아침으로 들려서 먹고 가던 곳으로, 적당한 가격에 전주 로컬의 입맛에도 충분할 만큼 맛도 뛰어났기에 고민 없이 들어갔다.


 

다행히 웨이팅이 걸리기 전에 들어갈 수 있었고, 우리는 음식을 기다리면서 점점 사람이 많아지는 대기줄을 보면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길게 늘어나는 웨이팅 손님들을 보면서 친구가 한마디 꺼냈다.

'전주에도 이런 곳이 있었네?'

'여기가 생각보다 맛이 괜찮더라고, 종종 오곤 했어.'

'주문하시겠어요?'

'여기 보통맛도 꽤 매콤해, 나는 매운맛 먹긴 하는데 매운 거 좋아하니까.'

'보통 3개에 매운맛 하나 주세요'


음식이 나오고 우리는 이런저런 추억이야기를 나눈다. 고등학교 때의 이야기는 언제나 다시 해도 지루하지 않은 우리의 기억이 아닐까, 지금은 대부분 은퇴하셨을 선생님들의 대한 이야기와 각자 아는 친구들의 근황 이야기까지. 하나의 주제에 대해 한 마디씩 거들고, 웃고, 음식을 마시다 보니 문득. 


'술 마실래?'

'에이, 괜찮은 듯.'

'너 곧 퇴사한다며. '

'맞아, 나 그래서 당분간 시간이 되거든 그래서 여행이라도 갈까 고민 중이야'

'부럽네. 그럼 기념으로 밥은 네가 사는 거지?'

'너네들인데 그거랑 상관없이, 당연히 이 정도야 내가 사주지.'


정오가 간신히 넘은 시간, 알싸한 국물과 잘게 부서지는 고기의 유혹에 소주와 맥주가 당기긴 했지만 차를 몰고 온 친구도 있고 명절정오에 술을 마시고 헤어지기에는 좀 애매한 것 같아서 근처 카페에 가기로 했다.


'너네 커피 뭐 마셔? 산미 있는 거 아니면 고소한 거?'

'나는 고소한 거'

'그래? 그럼 근처에 고소한 커피 괜찮은데 있으니까 그리로 가자. 마침 바로 옆이거든.'


상대의 커피취향을 알게되는 즐거움. 


친구들과 오랜만에 만났을 때 달라진 것은 20대에는 커피를 대화하기 위한 장소제공 대가로 마셨던 우리였지만 이제는 각자의 커피 취향이 생겨버렸다는 것이다. 문득, 우리가 서로 보지 못한 사이에 각자가 살아온 길이 달랐고 그 가운데 각자 자신의 삶을 그려나가고 있었다는 걸 깨닫고는 새삼스럽게 녀석들을 바라보게 되었다. 


한 녀석은 워홀을 다녀오고 나서, 한동안 해외를 돌아다니며 이것저것 많은 것들을 보고 다녔고 지금은 일을 하면서 또 다른 여행을 꿈꾸며, 또 다른 녀석은 인도네시아와 베트남 현지에서 관리직을 하면서 자칭 '외국인노동자'로 오랜 시간을 일하고 있으며, 또 한 명은 전공을 살려서 모빌리티 관련 자동차 회사 쪽에서 개발일을 하고 있었고 나 역시 직장생활을 하다 대학강의를 하다, 프리랜서 개발자를 하다 지금은 IT사업을 한지도 8년 차가 되어버렸다.

 



우리들은 각자의 삶에서 나름 잘 해내고 있구나, 마냥 어린아이들이었던 우리가 어느덧 직장 생활을 하고 이제는 미래를 그려나가는 모습들이 왠지 갑자기 뿌듯해져서 커피는 내가 사는 것으로.


'아까 밥 샀으니까 커피는 내가 살게. '

'내가 사려고 했는데?'

'나도...'


사람 마음이 다 똑같은지, 각자 적당한 명분이 필요했는지 서로가 계산을 하려 하고 이때 신속하게 카드를 내민 나의 승리로 음료를 구입하고, 뷰가 좋은 자리에 앉았다. 앉자마자 이어지는 대화는 밥을 먹으면서 했던 대화의 연장으로 잠시 자리가 이동한 것뿐이지 우리의 흐름은 끊어지지 않았다.


'한 2주 정도 회사 옮기기 전에 시간이 있는데 해외여행을 가려고, 어디가 좋을까?'

'베트남도 좋고, 일본 같은 덴 어때?'

'호주 같은 곳이나, 독일, 이런 곳은 어때? 미국도 좋고.'

'노르웨이나 스위스 같은 대자연도 좋지.'

'호찌민이나 하노이 좋아. 내가 있는 곳에서 한 시간 정도 되지.'


호주에서 1년가량 워홀을 했던 친구는 호주를 추천했고, 인도네시아와 베트남을 오갔던 친구는 역시나 베트남에 대해 이런저런 정보를 쏟아내고 사진을 취미로 찍는 나는 평소에 가고자 했던 노르웨이를 추천했다. 각자가 쏟아내는 해외에 대한 이야기들을 들으면서 다시금 우리가 오랜만에 만났구나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런 시간이 앞으로는 없을 거 같아서, 2주를 가까운 일본이나, 베트남 그런 곳으로 가고 싶진 않아.'

'왜, 신혼여행도 있는데-'

'.... '


신기하게도 고등학교 모임인 우리 멤버 8명은, 한 명 빼고는 모두 다 결혼을 하지 않았다. 하자가 있는 녀석들도 아니고 각자 영역에서 열심히 잘 살아가고 있는데 신기하게도 결혼소식은 없는 걸 보면 뭔가 요즘 시대의 이야기가 먼 이야기가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너네가 능력이 없는 것도 아니고, 하자가 있는 것도 아닌데 이러는 걸 보면 고등학교에 문제가 있었던 걸지도 모르겠는데?"

"그때 학교에서 먹었던 급식에 문제가 있었던걸 지도"


중, 고등학교 때 학생인권이나 이런 부분에 관심이 많기도 한 학생이었던 나는, 관련 커뮤니티에서 활동을 하기도 하고, 언론사나 경찰서에도 몇 번 들락날락했던 경력자로, 그 시기에는 먹고사는 문제 중에  먹는 게 더 예민한 나이였고, 그렇기에 심각할 정도로 부실했던 학교 급식은 나에게 해결해야만 하는 큰 문제였었다.

그래서 이 친구들을 선동(?)해서 급식거부 행동을 했었고, 모든 학생들이 들어가는 식당 입구옆에 앉아서 매점에서 파는 빵들을 씹어먹으면서 불매운동을 했었다. 결국 나중에는 점심시간에 외출을 해서 이례적으로 우리만 음식을 사 먹을 수 있게 되었으나, '우린 아마 죽어도 썩지 않을 거야. 방부제 들어간 이 빵을 어지간이 먹었으니.' 이런 자조적인 개그를 하며 긴 시간을 빵으로 연명해야 했다.


아마도 그때 먹었던 빵이 문제였을까. 대조군이 많지 않아서 가설로만 끝나겠군 이라는 씁쓸한 생각을 하며 대화를 이어간다. 




"왜 다들 결혼을 안 해. 내가 너네 결혼할 때 사진을 다 찍어줄 거야. 대신 내가 기운이 있을 때 결혼해얀다. 후덜 거리며 찍을 순 없잖니."

"너도 마찬가지야"

"넌 저번에 여자친구 있었잖아. "

"헤어진 지 반년정도 됐어."

"내가 말했잖아, 우리 20대에 혹시 모르니까 국제결혼 계라도 들어야 한다고, 진작 들었으면 세계화에 발맞추어 나갈 수 있었을 텐데!"

"국제결혼은 아니다. 한국사람 만나야 해"

"난 좋은데, 소개 좀 시켜줘! 나 베트남 간다?"


헤어진 지 반년정도 된 친구는 이제는 나이가 되어서 연애가 아닌 결혼을 생각해야 하는 것이 부담스러워하고 있었고, 나는 빨리 결혼해야 너네 사진을 찍어주지, 라면서 이전에 우스갯소리로 말했던 국제결혼 계를 하나 들었어야 했다는 이야기를 꺼내고, 외국에서 일하고 있는 친구는 3천500여 명의 여성분들이 회사에 있으나 국제결혼은 반대인 입장을 표명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결혼에 대한 이야기를 넘어 자기들의 이야기가 풀리기 시작한다.

'사람들이 애를 안 낳으니까, 인구 절벽이 좀 심각하지. 그런데 미안한 말이지만 나는 우리나라에서 결혼을 해도 애는 안 낳을 거 같아.'

'둘이 재미있는 거 하면서 사는 게 좋지. 애 낳으면 고생인걸. 우리도 고생인데 경쟁사회인 이 시스템에 아이들을 휩쓸리게 만들고 싶지 않아, 차라리 해외에 가서 산다면 생각해 볼지도.'

'나도, 애가 있으면 좋겠지만 현실적으로 이런저런 많은 기회들을 현재의 상황 때문에 못해주고 힘들게 살바에야 안 낳는 게 낫지.'


홀로 여행중에 눈이 마주친 아이

딩크족, 동생이 먼저 결혼한 입장에서 찐조카도 있겠다 다행히도 나는 우리 집안의 씨가 어떻게든 이어나가겠거니 하는 마음이라 결혼에 대해서 깊게 생각해본적은 없었는데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왜 사람들이 딩크족을 선택하게 되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아랫집, 옆집, 근방에 친척들이 모여사는 집안에서 조카들을 돌보며 살아오고, 찐 조카를 종종 봐주는 내 입장으로도 확실히 누군가 아이를 돌보아줄 존재가 없다면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것이 걱정인 건 마찬가지라는 생각이었다. 




시대의 특이점이 오고 있는 사회에서, 기본소득의 이야기가 논의되고 인구절벽과 국민연금, 건강보험. 세상은 모두 돈에 관련된 이야기로 난리였다. 결국 살아간다는 것은 돈에 관련한 것이고 누구도 돈에 자유로울 수 없으니 우리는 모두 이 논점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지금은 혼자가 편하긴 해. 나 혼자 쓸 것만 벌어서 쓰고 취미생활 하면서 지내는 게 편하지. 조금 외롭긴 하지만'

'어지간히 돈 벌지 않으면 사실 결혼해서 애 낳고 키우는걸 꿈꾸는 게 힘들긴 하지. '

'너는 뭐 충분히 잘 벌잖아.'

'그래도 좀 부족하지.'

'그런가..'


돈이 없어도 행복할 수 있을까. 세상은 아니라고 말한다. 오히려 돈으로 행복을 사지 못한다고 외치는 이에게, 돈이 부족한 게 아닐까 생각해 보라는 블랙유머까지도 있는 걸 보면 결국 우리는 삶을 영위하는 데 있어서 돈과는 멀어질 수 없는 사이. 자본주의의 사회에 편승해서 살아가는 우리들은 결국에는 돈에 의해 선택을 강요당하고 제한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


그렇기에 나는 이러한 현실 가운데에서도 사랑하는 이들을 응원한다. 세상이 부조리과 막막함으로 막혀있고 답답할지언정, 그래도 희망을 꿈꾸며 내일을 그리는 이들이 있기에 이 사회가 점점 나아지고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 세상을 둘로 나누고 편을 갈라 세우는, 미래를 고민하라고 뽑아놓은 인간들이 하라는 일은 안 하고 매일 이런 걸로 지지고 볶고 싸우는 시대이지만 이러한 용감하게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기에 미래를 꿈꿀 수도 있는 것이 아닌가. 




'그래도 나는 연애는 하고 싶어. 그러니까 소개 좀 해줘'

'나도, 우리 이참에 베트남으로 같이 여행 가서 소개받을까? 호주대신 베트남 어때?'

'괜찮은 거 같기도..'

'국제결혼은 안된다니깐'


그래도 이 녀석들은, 용감한 사람들이군! 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웃고 있는데 문득 묻는다.

'너는 주변에 여자들도 많은데 왜 연애를 안 해?'


쑥 들어온 질문에 어떤 대답을 할까 살짝 고민하다가, 솔직하게 이야기하기로 한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이니까. 


'나? 나는 뭐 대부분 사진을 찍어주거나 해서 만나는 사람들이니까 일 끝나면 안녕이지 뭐. 그리고 실제 일 할 때는 개발자니까 골방에서 독수공.. 아니 외부와 사람들을 접할 뭐가 없기도 하고, 물론 아닌 지인들도 있지만 난 뭔가 순간의 외로움 때문에 사람을 만나기보다는 소울 메이트를 찾고 있지. 저번 연애는 좋게 끝나지 않았거든. 이제는 확실히 알았어 소울메이트를 찾을 거야!'

'소울 메이트라니 무슨 헛소리를..'


소울 메이트, 결국에는 영혼의 단짝을 이야기하는 것인데 사람들은 마치 이상향이라도 말하듯이 이야기를 한다. 이전에도 이런 질문들은 많이 들었고 그때마다 이 이야기를 해주긴 했었지만 반응은 항상 같았다. 소울 메이트가 별거인가, 술꾼 도시여자들 시즌2를 보게 되면 암에 걸린 친구를 위해서 모든 직장을 그만두고 2년간 함께 산에 들어가 모든 것을 함께하는 이야기.  이전에도 쓴 이야기인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 책의 주인공인 두 부부의 이야기, 로켓트리의 너네 옆집에 살고 싶다는 제목만 들으면 좀 섬뜻하지만 가사가 좋은 노래에 관해 적었던 이야기, 그리고   또 브런치 작가인 Sustain Life 작가님의 삶의 이야기까지. 세상에는 아직도 그러한 관계가 있으며 나는 그러한 관계를 찾는 중이다.



여행도중에 만난, 오랜시간을 함께하는 가족들의 모습들.


자본주의에 사회에서 결국에는 자본을 포기하게 되면 자신을 얽매이는 것이 사라지게 된다. 여기서 포기라는 것의 경계가 참 애매하지만 휘둘리지 않고 단단한 사람이 된다면 충분히 행복할 수 있지 않을까. 



"생계 대책이라는 것은 물론 경제에 대한 것이지만 단지 돈을 버는 방법에 대한 이야기만은 아닐 것이다. 먼저 내가 살고 싶은 삶의 모습과 나의 행복에 대한 그림이 있고, 그것을 뒷받침하기 위한 경제적인 계획이 나올 때 그것이 정말 현실성 있는 생계 대책이 아닐까?  - 당신과 함께하니 이보다 좋을 수 없다 p57-58"


"내가 지금 딛고 있는 땅이 도시의 아스팔트이든 산골의 흙마당이든 그것은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우리의 선택으로 이곳에 와서 이곳에서 우리의 행복을 찾고 있다는 것이다.  p66"





결국 나에게 있어서 소울메이트란, 좋아하는 것을 같이하고 관심사를 나누고 함께하는 시간이 행복한 사람. 그리고 어떠한 선택을 하든 함께 마음을 정하고 함께 준비하는 그 과정을 같이 할 수 있는 사람이며, 그 결정에 대한 결과도 함께 헤쳐나갈 수 있는 인연이 내가 찾는 소울메이트인것이다.


하지만 좀 걱정이 되기는 한다나는 사랑에는 나이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지만 함께 무엇인가를 하기 위해서는 그걸 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하는데 연상인 경우 육체적인 한계로 인하여 그렇지 못할까 봐. 또 한편으로는 나보다 어린 사람은 반대로 내가 그런 사람이 될까 봐. 그렇기에 나이차이가 좀 있는 커플들을 보면 멋져 보이기도 하지만, 그게 내 입장이 된다고 생각한다면 미안한 감정이 먼저 드는 게 사실이다, 뭔가 공평하지 않은 것 같은 느낌이랄까 나보다 더 젊고 좋은 사람도 많을 텐데 굳이!? 나이를 먹어감에 있어서, 내가 너무 욕심을 부리는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에 하나씩 포기하게 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다른 많은 사람들도 나와 마찬가지 생각으로 포기하는 것일까.


 하지만 이 모든 것들을 이 녀석들에게 주절주절 설명해 봤자 이건 나만의 기준이기 때문에 소용이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아니, 남고를 나온 이 친구들이 내 소울메이트에 대해 이해해 버린다면 그것도 나름 문제...... 정말 좋아하고 사랑하는 친구들이지만, 에헴. 나는 인연을 찾고 있는 것이라.


'유니콘은 없지만 소울메이트는 확실히 있지 그게 내가 살아있는 동안 있냐가 문제지.'

'죽으면 뭔 소용이야'

'나는 영원히 살 거 같은데, 고등학교 때 방부제가 들어간  빵을 그렇게나 먹었는걸'




매거진의 이전글 '슬로시티 전주', 그리고 '나'에 대해 고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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