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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탐 May 22. 2023

하나님 뺀 글을 써보려고 했다

하나님: 왜 너 혼자 여행한 것처럼 쓰는 거니? 내가 같이 있었잖아!



조금 이상한 말이지만, 사실 내가 원래 쓰려던 건 신앙글이 아니었다. 대신 그동안의 여행을 정리한 여행 에세이를 쓰고 싶었다. 다녀왔던 나라를 소개하고, 거기서 느꼈던 감상이나 조금 특별했던 경험을 나열하는 가볍고 읽기 쉬운 그런 글.      


글의 제목도, 목차도 다 정해놓았다. 오래 고민하며 준비했고, 그만큼 의욕 충만한 상태로 원고 작업을 시작했다. 하지만 막상 글쓰기를 시작하니 전혀 예상치 못했던 문제가 날 기다리고 있었다. 내 여행 기억만 잘 정리하면 될 줄 알았는데, 여행 구석구석 안 끼는 데 없이 다 끼어있는, 생각지도 못했던 등장인물이 하나 더 있었던 것이다. 바로 하나님!     


하지만 일반 출판사에 기획 출판 투고를 하려던 원고에 하나님 얘기를 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종교성 있는 글이라고 퇴짜를 맞을 게 뻔하지. 어쩔 수 없다고 마음을 다독이며, 나는 다시 원래 쓰려던 글에 집중했다. 그리고 그때부터였다. 뭔가 일이 꼬이기 시작하던 것이.      


글이 써지지 않았다. 일주일에도 서너 편씩 쓰던 게 글인데! 노트북 앞에서 아무리 씨름해도, 일주일은커녕 한 달에 한 편도 제대로 쓸 수 없었다.      


지나온 여행을 되짚을 때마다 계속 하나님이 튀어나왔다. 기억 속 모든 여행에 하나님이 계셨다. 당황스러웠다. ‘이래도? 이래도 안 써?’ 누군가 그렇게 말하며 나를 쿡쿡 찌르는 것 같았다. 마음이 무거웠다. 하나님께서 ‘왜 너 혼자 여행한 것처럼 쓰는 거니? 내가 같이 있었잖아’라고 말씀하시는 것 같았다. 

      





‘하나님을 뺀’ 글을 쓰려고 할수록 글은 억지스러워졌다. 그래도 어떻게든 써보려 발악했다.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으려던 게 아니라 정말로, 진심으로, 그럴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나님에 대해 말하는 책은 목회자나, 교회의 어른, 또는 엄청난 삶의 굴곡을 겪은 특별한 이들이나 쓰는 것이지 않나. 나는 공예배만 겨우 드리던 평신도였다. 감히 내가 그런 걸 할 수 있을 리 없다.     


나는 아주 오래 씨름했다. 글을 써도 괴롭고 못 써도 괴로웠다. 한 글자도 못 쓴 날은 자괴감에 죽겠고, 뭐라도 쓴 날은 마음 한편에 느껴지는 설명하기 어려운 불편함으로 끙끙거렸다. 안 써지는 원고를 붙잡고 하나님께 수도 없이 기도했지만 딱히 글이 더 잘 써지거나, 특별히 일이 잘 풀릴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에서 헤매는 것 같았다.      


극악의 효율 속에서 끙끙 앓아대며 울다 쓰기를 반복하는 사이 그래도 원고가 조금씩 쌓여갔다. 하나님이 등장하지 않는, 적당히 따뜻하고 밍숭맹숭한 글이 모였다. 초고였다. 끔찍했던 집필 과정을 생각하면 선방했다 싶었다. 하나님께 감사 기도를 드렸다. 여기까지 글을 쓰게 해주셔서 감사하다고, 퇴고 잘해서 누군가에게 꼭 필요한 책이 되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더 열심히 써서 얼른 원고를 끝낼 생각에 느려터진 노트북 대신 새 노트북도 장만했다.      


그리고 다음 날.

원고가 날아갔다. 싹.     


이게 무슨, 아니...... 왜? 너무 황당해서 말도 잘 안 나왔다. 모든 원고가 없어졌다. 기존 컴퓨터에도, 외장하드에도, 새 컴퓨터에서도 파일을 찾을 수 없었다. 폴더 껍데기만 남겨두고 알맹이가 모두 깨끗이 사라졌다. 믿기지 않았다. 다른 파일들은 모두 멀쩡한데 원고 초고 파일만 싹 사라졌다. 그렇게 힘들게 쓴 내 원고들이!      

더 잘해보려고 노트북을 새로 산 건데, 하나님께 기도도 드렸는데. 대체 왜 이런 일이 생긴단 말인가? 원고가 더 잘 써지는 게 아니라, 원고가 날아간다고? 하나님, 설마 제가 지금 이 책 쓰는 게 맘에 안 드세요?    

 

실의에 빠져 낙담하던 나를 일으키신 건 또 하나님이셨다. 기도하던 중 ‘하나님께 기도하는 중에 벌어진 일은 다 괜찮다’는 말이 마음에 떠올랐다. ‘괜찮아. 얘야. 괜찮으니 걱정 마.’ 힘들게 글을 쓸 때는 아무 반응도 안 보여주시던 하나님이 그때는 분명 나를 위로하며 격려하고 계셨다.     


좌절하던 마음에 조금씩 기운이 나기 시작했다. 나중에는 농담도 할 수 있을 만큼. “하나님, 제 원고가 그렇게 별로였어요? 그렇게 다 날려버리시지 말고 그냥 말씀을 해주셨으면 더 좋았을 텐데요. 하하.” 음. 농담이 아니었던 것도 같다.     







그렇게 다시 쓰기 시작한 글. 역시나 꾸역꾸역 삐걱삐걱, 대단히 힘들었다. 그렇게 겨우 두 번째 초고를 썼는데. 세상에. 이번에는 태어나서 처음 겪는 전 세계 팬데믹, 코로나 사태가 터졌다. 여행은 미디어에서 자취를 감추기 시작했다. TV나 유튜브, 서점에서도 여행 콘텐츠는 씨가 말랐다. 아무도 여행에 대해 말하지 않았다. 심지어 여행을 권하는 것 같은 느낌만 줘도 이런 시국에 여행 조장 하냐며 비난받았다.      


힘이 쭉 빠졌다. ‘하나님, 왜 자꾸 이런 일이 생기죠? 혹시 정말 제가 책 쓰는 게 맘에 안 드세요? 제가 하나님 뜻을 못 알아듣고 있나요? 그래서 이렇게 절 힘들게 하시는 거예요?’ 나도 모르게 투정 부리는 말이 나왔다. 서운하기도 했다. 매일 아침 하나님께 기도하며 글을 썼는데, 하나님께서도 나를 응원하고 계신다고 믿었는데 그게 어쩌면 나만의 착각이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기운이 나지 않았다.     


며칠 뒤. 낙심했던 마음을 겨우 추스르고 기도하던 중이었다. 문득 ‘하나님을 빼지 않은, 원래 내 여행 그대로를 담은 책을 쓰는 건 어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 설마. 방금 하나님이 말씀하신 건가? 사실, 떠올리는 순간 그런 것 같다는 확신이 들었지만, 안 그랬으면 싶었다. 무서워서. 안 그러고 싶어서. 온갖 핑계를 다 대며 끝까지 도망가려 애썼다.     



‘하나님, 이건 좀 아닌 거 같아요. 저는 신앙 서적을 낼만 한 사람이 아니에요.’     

‘그래도 괜찮아.’     


도망가는 말끝에, 바로 ‘괜찮다’는 말이 따라붙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애초에 책을 쓸 생각도 하지 않았을 거예요.’

‘그랬겠지. 하지만 지금은 어때? 넌 이미 원고를 두 번이나 써 봤잖니?’  

   

‘저는 신앙이 좋지도 않고 성경도 잘 몰라요. 딱히 착하지도, 선하지도 않은걸요.’

‘괜찮아. 네가 아니라 내게 집중하렴.’     


‘하나님, 사람 착각하신 거 아니에요? 저는 공예배만 겨우 드리는 사람인데요? 교회에 모범이 되지도 못하고, 대단한 간증거리도 없어요. 저 같은 사람이 하나님에 대해 말하는 책을 누가 읽겠어요.’

‘괜찮아. 그런 건 신경 쓰지 마.’     


‘저는 수익을 위해 책을 쓰려 했는데. 이러면 한 푼도 못 벌 거 같은데요? 출판사에서 제 원고를 아예 안 받아줄지도 몰라요. 전 뭐 먹고 살아요?’

‘네 밥벌이는 너한테 달려있지 않아.’   

  

어떻게든 안 되는 이유를 떠올릴 때마다, 계속 ‘그래도 괜찮다’는 말이 마음속에 잔잔히 떠올랐다. 신기하게도, 그 모든 핑계가 부정당할수록 마음이 점점 편안해졌다. 그래서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하나님께서 내게 원하시는 게 이것이구나.     

 

결국 나는 그 목소리에 순응했다. 별수 있나. 하나님께서 하라고 하시는 거 같으니 해야지. 나는 여행 내내 함께하셨던 하나님에 대해 쓰기로 했다.     






백지에서부터 다시. 기존 제목과 목차를 지우고, 써놓았던 글도 죄다 갈아엎었다. 수백 페이지의 글을 다시 쓰는 건 쉽지 않았지만, 하나님을 뺀 글을 억지로 쓸 때보다는 수월했다. 두 번의 원고를 쓰는 동안 내내 불편하고 답답했던 속이 신기하게도 편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쓰기 시작한 세 번째 원고는 느리지만 꾸준히 속도를 내며 완성되어갔다. 이번에는 갑자기 파일이 날아가는 일도, 원고를 막는 환경도 없었다.

      

원고를 쓰는 내내, 나는 내가 ‘글씨 쓰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썼다. 내용을 포함한 모든 것이 하나님께 달려있고, 나는 그저 키보드 위에 손가락만 토독토독 타이핑하고 있다고 말이다. 그리고 하나님은 정말로 이 글씨 쓰는 사람을 사용하셔서 자신이 얼마나 멋지고, 상냥하고, 선하고, 따뜻하고, 대단하고, 그 외 기타 등등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긍정적인 꾸밈말을 다 가져다 붙여도 모자랄 만큼 좋은 분임을 쓰게 하셨다.     


쓰는 내내, 글을 고치고 하나님을 기억하고, 생각하고, 하나님께 물으며. 얼마나 행복하고 마음이 벅찼는지 모른다. 세상에, 하나님 왜 이렇게 멋있어요? 순간순간 새삼 다시 하나님께 반했다. 진심, 이 세상 멋짐이 아니다. 부디 이 글을 읽는 사람들에게 별거 아닌 글씨 쓰는 사람은 전혀 보이지 않고, 오직 따뜻하고 상냥하고 완전 멋진 우리 하나님만 엄청 커다랗게 보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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