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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탐 May 22. 2023

내가 어떻게 일하는지 보렴

네가 뭘 상상하든 그 이상


다행히 짐은 며칠 뒤 하숙집으로 도착했다. 

바퀴가 다 나가서 왔지만, 어쨌든 왔으니 됐다.      






이제 마지막 큰 문제가 남아있었다. 바로 비자 문제. 학원비는 6개월 치를 냈는데 체류 기간은 3개월인 이 사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우선 학원에 3개월 치 수강료 환불을 문의했다. 그러나 환불 가능 금액이 너무 적었다. 한국에 있는 가족들과 상의하고 같이 기도한 끝에, 결국 다시 비자 신청을 하기로 했다.   

  

캐나다는 어학연수 비자 받는 데 별 어려움이 없다더니. 직접 마주한 현실은 한국에서 찾아본 인터넷 후기나 유학원 안내와  너무 달랐다. 울상을 짓는 내게, 학원 측은 요즘 갑자기 비자 결과가 대단히 들쭉날쭉해졌고, 심사도 아주 엄격하게 변했다고 전했다. 직접 ‘매우 빡빡한 입국 심사’를 겪어본 사람으로서 그 말이 아주 신빙성 있게 들렸다. 하필 왜 내가 올 때 ‘갑자기’ 그렇게 됐다는 건지, 원. 한숨이 나왔다. 

     

비자 연장이 잘 될까? 이러다 자칫하면 3개월 치 수강료를 모두 날리고 영어도 제대로 못 배운 채 터덜터덜 귀국하는 거 아니야? 덜컥 겁이 났다. 학원비 6개월 치를 선납하고도 겨우 3개월 체류를 받았는데, 3개월만 연장해 달라고 신청했다가는 아예 그냥 나가라고 할 것 같았다. 그래서 비자 신청 때 어학원 측과 상의하여 학원 등록 기간을 잔뜩 연장하고 최대한 긴 기간을 신청했다. 이때 학원의 권유로 이름도 생소한 '코업 비자'라는 걸로 비자 신청을 했는데, 공부와 일을 같이 할 수 있는 비자라고 했다.   

  

사실 신청한 대로 비자 기간이 다 나올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연장한 학원 기간만이라도 잘 채우고, 가능하다면 그 뒤에 한 달 정도 여행할 수 있는 기간이 있으면 좋겠다는 마음 정도였다. 그런데 웬걸? 이번엔 또 기간이 엄청 길게 나왔다! 신청한 기간이 다 인정되고, 코업 비자로 일할 수 있는 기간이 추가되면서 2년이 넘는 기간이 나온 것이다. 


아니 여기는 뭐가 이리 극단적인가....... 


그렇게 내 캐나다 체류 가능 기간은 2년 반이 됐다. 달랑 6개월 어학연수 하려던 계획이 갑자기 엄청난 장기 프로젝트로 변한 것이다.      






덕분에 나는 원래 계획보다 훨씬 더 오래 캐나다에 체류하게 됐다. 처음에는 당황스러웠지만, 곧 여기에도 하나님의 뜻이 있으시려니,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아주 알차게 이 기간을 활용했다. 최선을 다해 말을 배웠고, 봉사활동과 인턴쉽도 경험했다. 나중에는 취업도 해보는 등 한국에서도 못 해본 다양한 경험을 누렸다. 좋은 친구들을 만났고 캐나다 사회의 다양한 면도 살펴볼 수 있었다. 이 기간은 내 삶에 많은 변화를 불러일으켰는데, 그중 하나가 진로 변경이었다.      


캐나다에서 경험한 여러 모습 중 제일 낯설고 신기했던 현상은 ‘이주(migration)’였다. 당시 우리나라에도 결혼 이주 외국인과 그 가정에 대한 논의들이 막 시작되고 있었고, 학교 수업 때 관련 주제를 접해본 적도 있었다. 하지만 주위에 실제 사례가 드물어서일까, 내게는 별로 실감 나지 않는 막연한 일로 느껴졌다. 그러나 캐나다에 오니 달랐다. 


어느 날 TV를 켰는데, 뉴스 속보에 커다란 배가 나타났다. 난민선이었다. 스리랑카에서 온 사람들이라고 들었는데 TV에서는 연일 이와 관련된 뉴스가 이어졌다. 항구에 난민선이 들어오다니, 상상도 못 해본 뉴스다. 장소도 내가 살던 곳에서 멀지 않았다. 막연하고, 책으로만 접하던 일이 캐나다 사람들에게는 아주 생생한 현실이었다.     


이 일을 계기로 캐나다 사회가 이런 문제를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관심을 갖게 됐고, 결국 집 근처에 있는 이주민 지원 NGO를 찾아가 자원봉사를 시작했다. 나중에는 그곳에서 인턴으로 일하기도 했다. 사람의 이주 현상에는 생각보다 다양한 이슈들이 복잡하게 얽혀 있다는 걸 배웠고, 이들을 받아들이는 사회에서도 고민할 점이 대단히 많다는 것을 알게 됐다. 이때의 경험은 결국 이후 대학원 진학으로까지 연결됐다. 캐나다 장기 체류가 내 진로를 바꿔 놓은 셈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영어 실력을 늘려보려고 자원봉사를 다니던 박물관이 있었는데 나중에 이곳에서 정식으로 일을 하게 되기도 하고, 관심 있던 분야의 책을 국내에 번역 출판하는 프로젝트에 참여하기도 하는 등 크고 작은 다양한 경험들이 계속해서 이어졌다. 그리고 이런 순간들은 모두 차곡차곡 쌓여 나를 성장시켜나갔다.  





    

가끔 생각해본다. 맨 처음 캐나다에 들어오던 날. 문제없이 6개월 비자를 받았다면 어떻게 됐을까? 


이 모든 일을 경험할 수 있었을까? 그러지 못했을 거다. 영어야 좀 늘었겠지만 따로 자원봉사나 인턴십을 할 시간은 없었을 것 같다. 학생 비자만으로는 일하는 게 불가능하니 멋진 박물관에서 일하는 경험도 불가능했다. 난민선이 들어왔던 게 캐나다 도착 후 1년이 넘었을 때였으니, 원래 일정대로라면 이 이벤트를 경험하지도 못했고, 당연히 이주 현상에 관심을 갖게 되지도 않았겠지. 그러면 이주에 관해 공부하겠다고 대학원까지 갈 일도 없었을 거고, 자연히 NGO에서 일하겠다는 생각 같은 건 더더욱 못했을 거다.   

  

돌아보면, 그 당황스럽고 답답하던 입국심사 때부터 하나님은 이미 일하고 계셨다. 내가 하나님을 보지 못하던 순간에도 하나님은 나와 함께 하셨고, ‘이번에야말로 영어를 제대로 배워서 외국인과 10분 이상 대화해보겠어!’ 같은 귀여운 계획을 아득히 뛰어넘는 결과로 나를 인도하셨다. 그리고 내 삶의 방향키를 잡고 계신 분이 자신이시라는 걸 명확히 알려주셨다.


마치 하나님께서 일련의 사건들을 통해 ‘내가 어떻게 일하는지 봤지? 앞으로 어떤 일이 생겨도 너는 전혀 걱정할 필요 없단다’라고 말씀하시는 것 같았다.     


종종 삶에는 계획이나 희망과 전혀 다른, 당황스러운 변화가 일어난다. 나처럼 6개월 해외 체류 계획이 갑자기 3개월이 됐다가 2년 반이 될 수도 있고, 오래 준비한 일이 무산될 때도 있다. 이러면 당연히 당황스럽다. 덜컥 겁이 나기도 한다. 하지만 그때야말로 하나님을 바라볼 때다. 하나님의 일하심을 볼 수 있는 때 말이다.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 기도를 들으시고 삶을 돌보시며, 가장 좋은 것으로 주신다. 눈앞의 순간을 넘어서, 좀 더 긴 호흡으로 바라본 삶은 하나님의 손안에서 단단하고 안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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