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제발 잊어줘요ㅠ
가끔 생각한다. 나는 왜 캐나다에 가야 했던 걸까?
하나님을 알게 된 삶에는 더 이상 우연이 없다. 모든 일에, 모든 순간 섭리하시는 하나님의 뜻이 있을 뿐이다. 그 대부분을 우리가 이해할 수 없다고 해도,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자녀들을 위해 모든 순간 일하시고 보살피심은 변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20대 중반, 캐나다로 건너가 2년 반이나 머물며 온갖 경험을 하며 영어를 배웠던 내 시간은 무슨 의미가 있는 걸까? 하나님께서 내게 그 시간과 경험을 허락하셨던 이유는 뭘까?
물론, 하나님께서는 내게 자유의지를 주셨고, 나의 소원과 기쁨도 충분히 고려하셔서 일하신다. 하나님은 날 사랑하시니까 내가 하나님 안에서 즐거워하는 것도 당연히 기뻐하신다.
부모와 바닷가에 놀러 온 아이가 모래사장에 쪼그리고 앉아 열심히 모래를 훑다가 예쁜 조개 하나를 찾았다며 웃을 때, 부모도 그 모습을 보며 기뻐한다. 그 조개가 가치 있거나 아름다워서가 아니라 그저 아이가 사랑스럽기 때문이다. 아이가 그 순간 열심히 무언가 찾고, 궁리하고, 행복해하는 모습 자체가 기꺼운 거다.
하나님도 나를 보며 그렇게 기뻐하시는 것 같다. 내가 하나님과 함께 있기만 하다면, 일상 속 작은 성취도, 하루하루 성장해 가는 평범한 모습도 모두 하나님께 기쁨이 된다. 캐나다에 머무는 동안 내가 충분히 즐기고 행복해했다면, 배우고 성장했다면 그 자체로 하나님께도 의미가 있다.
그런데도 내가 그 이상의 의미를 궁금해하는 건, 하나님께서는 나를 사랑하심과 동시에 언제나 합력해서 선을 이루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아시고, 모든 것을 보시며, 모든 일을 하신다. 캐나다에서 보낸 시간에도 분명 하나님의 또 다른 뜻이나 계획하심이 있었을 거 같은데, 그게 뭘까?
나는, 특별히 나 한정으로, 영어를 익히게 해주시는 것도 하나님께서 캐나다 여행을 허락하신 이유 중 하나였다고 생각한다. 어학연수 이후 이어진 내 삶의 루트를 보면 더욱 그렇다.
어학연수를 막 시작할 당시에는 전혀 몰랐지만, 나는 그 뒤로 여러 나라에서 공부하고, 사람을 만나고, 일을 해야 했다. 20대 중반부터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6개 대륙 20개 나라를 돌아다녔다. 북미와 유럽에서는 주로 공부와 인턴십을 했고, 아시아와 아프리카에서는 업무 관련 출장 일정이 많았다. 하나님께서 내 길을 그렇게 예비하셨다. 그런데 출발점에 선 내게 큰 문제가 있었다. 바로 외국어를 못한다는 것.
어학연수 이전의 나는 외국어 사용에 대한 막연한 동경만 있을 뿐 실력은 영 꽝이었다. 물론, 외국어를 익혀보려 노력은 했다. 대부분 결과가 좋지 않았지만.
영어는 오랫동안 내 스트레스 버튼이었다. 학창 시절 내내 영어를 배웠지만, 나는 문법을 익히고 단어를 외워서 머릿속에 언어 구조를 만드는 식의 학습법을 제대로 따라가지 못했다. 그렇다고 말하기나 듣기를 잘했던 것도 아니다. 나는 발음 기호도 제대로 못 읽었다. 어떤 단어의 소리를 알기 위해서는 여러 번 직접 듣고 익숙해져야 했다. 한국에서 평범하게 학교 다니던 내게 그런 식으로 익숙해질 수 있는 단어는 많지 않았다. 실질적인 의사소통에 사용할 수 있는 단어가 거의 없었단 소리다.
학교에서 치는 시험은 끙끙거리며 교과서를 통째로 외우면 어떻게든 괜찮은 점수를 받을 수 있었지만, 제대로 실력이 드러나는 시험을 보면 점수는 바로 엉망이 되었다. 상황이 이러니 영어 앞에서 나는 늘 자신이 없었고, 머릿속에서 외국어는 ‘실패’, ‘부담스러움’ 같은 단어와 묶여 다녔다. 자연스러운 수순으로, 영어를 사용해야 하는 순간도 최대한 피하려 노력했다.
그랬던 내가 어떻게 그렇게 많은 외국을 돌아다녔을까? 다시 생각해도 놀랍다.
만약 하나님께서 여행에 관심도 없고 영어를 무서워하던 예전의 내게 나타나셔서 ‘앞으로 우리는 아주 많은 나라를 함께 여행할 거야. 너는 스무 개 넘는 나라를 돌아다니며 영어로 일하고 공부하게 될 거란다.’라고 알려주셨다면, 내 실력으로 그런 일이 가당키나 하냐며 덜컥 겁을 집어먹고 잔뜩 움츠러들었을 것 같다. 그 정도로 당시 내게 영어는 공포와 스트레스 덩어리였다.
그런 나를 하나님은 우선 중국에 있는 친구들에게로 이끄셨다. ‘여행에는 큰 관심이 없어도 친구들은 보고 싶지 않니?’ 하시면서. 그렇게 내게 여행의 즐거움을 알게 하시고 외국어에 대한 흥미와 열망을 심으셨다. 그 결과 나는 캐나다로 떠났다.
그 뒤로는 앞에 쓴 대로다. 한 학기 정도의 기간을 영어권에서 보내려던 계획은 시작부터 크게 달라져 버렸고, 보통의 어학연수생들이 3~6개월 정도 머무는 곳에서 나만 혼자 2년 반이라는 시간을 보내게 됐다. 이는 언어를 ‘공부’로 익히지 못하는 내게, 하나님께서 특별히 선물하신 맞춤형 코스였다.
어학연수지에 남들보다 훨씬 오래 눌러 앉혀서 여러 경험을 통해 몸으로 외국어를 익히는 과정. 나는 온갖 이벤트들을 거치며 영어 사용에 익숙해졌다. 엉망에 한없이 가깝던 내 영어 실력은 이 기간을 지나며 크게 늘었다. 물론 워낙 가지고 있던 실력이 일천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런 점을 감안해도 많이 는 게 사실이다.
물론, 하나님의 특별 맞춤형 코스를 밟으며, 공부가 아닌 경험을 통해 언어를 익혔다고 해서 새로운 언어를 체득하는 과정이 마냥 즐겁기만 했던 건 아니다.
외국어를 익혀 쓰려면 뇌가 이를 잘 기억하고 활용에 익숙해져야 한다. 우리 뇌는 자주 쓰지 않거나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정보를 기억에서 지우는 멋진 기능이 있기 때문에, 외국어를 사용하려면 기억하고자 하는 정보에 자주 노출되던가, 최소한 뇌에 이게 매우 중요한 정보라는 신호를 줘야 한다.
보통의 사람들은 이를 학습 등을 통한 ‘반복’으로 해결한다. 좀 더 적극적인 학습자라면 해당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과 대화하는 경험을 통해 뇌에 조금 더 강력한 자극을 줄 수도 있다. 어학연수를 간다면 아무래도 해당 언어를 사용하고 현지인과 대화하는 경우가 많아지니 이런 면에서 더 효과적이라고 할 수 있다. 캐나다로 떠났던 나도 이러한 이점을 누렸다.
그런데 이 과정을 더욱 효과적으로 줄이는 방법이 있더라. 바로, 감정적으로 아주 강렬한 경험을 해서 잊으려야 잊을 수 없도록 만드는 방법이다. 그리고 날 아주 많이 사랑하시는 하나님께서는 이 빠르고 효과적인 방법을 내게도 선물해주셨다. 덕분에 초반 6개월 동안 영어가 얼마나 빨리 늘었는지 모른다.
그래서 그 멋진 방법이 구체적으로 뭐였냐고? 간단하다. 웬만해서는 절대로 잊을 수 없을 만큼 ‘엄청나게 실수하고 딱 죽을 만큼 부끄러워하면’ 된다. 그러면 어지간해서는 이를 까먹을 수 없더라.
캐나다에 도착하고 얼마 안 되어서, 하숙집 주인아주머니에게 홈스테이 비용을 언제 줘야 하는지 물은 적이 있었다. 하숙비를 영어로 뭐라고 해야 할까 한참 고민하다가, ‘fee(수수료, 요금)’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몇 번 속으로 혼자 문장을 되뇌어 보곤, 설거지하고 있는 아주머니께 다가가 물었다.
"웬 캔 아이 기브유 더 피?”
(When can I give you the fee?, 하숙비를 언제 드려야 해요?)
“......what?"
(뭐라고?)
아주머니가 혼란스러운 얼굴로 되물었다.
아, 설거지 물소리 때문에 잘 안 들리나 보다. 나는 더 크게 외쳤다.
“피! 피! 웬 두유 원미 투 기뷰 더 피? (Fee! Fee! When do you want me to give you the fee? 돈이요! 하숙비! 언제 드리면 좋을까요?)”
아주머니가 설거지를 멈췄다.
날 바라보는 얼굴에는 혼란스러움이 가득했다. 나는 더욱 마음을 굳게 먹고, 크게 외쳤다.
“피! 피! 기브유 더 피! (Fee! Fee! Give you the Fee! 하숙비요! 돈! 돈 드린다고요!)”
아주머니의 표정이 더 기괴해졌다.
이 사람이 왜 이러지? 내가 뭘 잘못 말했나?
그렇지만 이 문장이 맞는데? 미리 몇 번이나 노트에 써보고 열심히 외운 문장인걸.
그렇게 대치 상태가 얼마나 이어졌을까. 아주머니의 흔들리던 눈동자가 문득 멈췄다. 마치 머리 위에 느낌표가 뜨는 것처럼. 그리고선 갑자기 엄청 웃는 것이다.
“오, 피! (Oh, fee!)"
그래요, 피. 몇 번을 말해야 하는 거예요.
그나저나 이 아주머니가 왜 웃지? 아주머니는 웃다 못해 이제 숫제 울고 있었다.
한참을 웃던 아주머니가 겨우 입을 열었다.
“You said 'pee'. It's not 'pee', it's 'fee'.”
(네가 pee라고 말했잖아. pee가 아니라 fee라고 해야지.)
그러니까, 나는 'fee'를 말했다고 생각했지만 내 입은 계속 ‘pee'를 말하고 있었던 거다. 그게 뭐가 문제냐고? Pee는 ‘오줌’이라는 뜻이다. 그러니까 내가, 설거지하는 아주머니를 붙들고 계속 ‘언제 오줌을 주면 되냐‘고 물었던 거다. 오. 하나님. 무슨 소리냐며 되묻는 아주머니에게 "피! 피!”를 강력하게 외쳤던 게 기억났다. ‘오줌이요! 오줌!!!’ 하며 소리를 지른 것. 진심으로 어디든 좋으니 도망치고 싶었다.
이 일을 계기로 P와 F의 발음이 다르다는 걸 확실히 인지했다. 잊으려야 잊을 수가 없어서....... 하나님께 주인아주머니 기억에서 이 일을 삭제해달라고 몇 번이나 기도했는데, 들어주셨나 모르겠다.
그 뒤로도 나의 우습고 바보 같은 실수는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다양하게 이어졌고, 많은 사람에게 웃음을 안겼다. 채식주의자(vegetarian)인 친구를 식물인간(vegetable)이라고 소개해서 모두의 머리 위에 충격의 느낌표가 뜨게 한 적도 있고, 반바지(shorts) 입은 게 예쁘다고 칭찬하는 친구에게 내 바지 그렇게 안 짧다(short)고 항변한 적도 있으며, 입고 있는 옷이 예쁘다고(I like it!) 칭찬한 건데 ‘나 그거 좋아 (그러니 나 줘)’라고 하는 줄 알고 한동안 근심한 적도 있다. ‘쟤는 왜 만날 내 걸 달라고 하지?’
못하는 걸 새로 익힐 때는 실수하고 실패하는 게 당연한데, 이게 ‘언어’가 되니 다른 실수들과 느낌이 달랐다. 어릴 때 뭣도 모를 때 모국어를 배우며 했을 실수를 성인이 되어 맨정신에 하고 있으려니 문득문득 진짜 부끄러워서 못 견디겠다 싶은 순간이 찾아왔다.
그럴 때면 기왕 외국어를 허락해주실 거라면 좀 편하고 쉬운 방법으로 주시면 좋을 텐데, 같은 생각도 했다. ‘성경 속에 나오는 방언하는 사람들처럼 그냥 영어가 되게 해주시면 안 되나?’부터 ‘아니 이 인간들은 바벨탑은 왜 지어서 후손들이 이렇게 고통받게 하는 거야?! 당신들이 토익(TOEIC)을 알아? 아이엘츠(IELTS) 비용 대신 내줄 거예요?!’ 물론 그렇게 투덜거려 봤자 뭐 하나 달라지는 건 없으니 곧 포기하고 다시 더듬더듬 실수하는 삶을 이어갔지만.
그렇게 단어 하나, 문장 하나를 배울 때마다 부끄럽고 쑥스러워서 누군가에게 말하기도 민망한 추억들이 잔뜩 쌓였다. 그리고 딱 그만큼 언어 실력도 올라갔다. 해당 문장이나 단어를 떠올릴 때 그때의 부끄러움이 같이 기억난다는 부작용이 있긴 하지만, 어쨌든 이렇게 배운 것들은 웬만해선 까먹을 수 없었고 차곡차곡 내 안에 쌓여갔다.
외국어를 익힌 뒤, 내 삶의 많은 부분이 이전과 달라졌다. 국외에도 연락을 주고받는 여러 지인이 생겼고, 성경을 읽을 때 잘 이해가 안 가는 부분이 있거나 뜻을 더 명확히 알고 싶은 부분이 있으면 이제 영어 성경을 찾아 비교하며 읽는다. 아슬아슬하긴 했지만 영어로 수업 듣고 과제 하면서 대학원도 졸업했고, 영어를 사용하는 환경에서 인턴십과 일도 해봤다. 3권의 책을 번역 출판하는 프로젝트에 참여하기도 했다. 국내 NGO에서 일하는 동안에도 수없이 많은 이메일을 영어로 주고받았다. 여권에는 온갖 나라의 출입국 도장이 찍혔고, 이제 혼자 해외로 출국하는 건 별로 특별하지도 않은 일이 됐다. 모두, 처음 캐나다로 떠나던 때에는 상상도 못 하던 일이다.
여정이 막 시작됐을 때는 어째서 이런 일들이 내 인생에 일어나는지, 왜 하나님께서 이를 허락하셨을지 깊이 생각해보지 못했다. 그저 내가 영어 때문에 스트레스받고, 이를 해결하길 원해서 하나님께서 허락해주셨을 뿐이라 여겼다.
물론 이도 맞다. 내 소망을 이뤄주시는 것도 분명 하나님의 뜻 안에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께는 이를 포함한 더 크고 따뜻한 계획이 있었다. 그리고 그 계획을 위해 꼭 필요한 기본 준비물, 영어를 익힐 수 있도록 도와주셨다. 모든 일이 시작되기도 전부터 하나님께서 나와의 여행을 계획하고, 하나하나 준비하셨다고 생각하면 괜히 입꼬리가 올라가고 마음이 몽실몽실해진다.
그렇게 첫 번째 준비물을 갖추며, 하나님과 함께하는 여행이 본격적인 여정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