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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탐 Oct 21. 2023

첫 인턴십 - 진짜 잘하고 싶은데 질문하기가 무서워요

스물다섯 살 인턴, 미서

“여름에 낮 두 시쯤 되면 해가 정말 쨍쨍 내리잖아요. 더울 정도로. 제가 그런 상태 같아요. 일에 대한 열정도 많고, 뭔가 계속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 커서 엄청 열심히 하고 있거든요.”     


여름의 한복판. 초록색으로 가득한 공원에서 만난 스물다섯 청년은 자신이 그런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한여름. 그리고 오후 두 시. 가장 뜨거운 시간. 뜨겁다 못해 때로는 더위에 힘겨울 정도지만, 동시에 가장 밝은 시간이기도 하다.      


한낮의 햇살이 온 시야를 환하게 채우고, 모든 감각으로 여름의 존재감이 강력히 다가오는 때. 오후 두 시의 햇살처럼 뜨겁고 절실한 순간을 살고 있는 청년을 만났다.          






화장품 좋아해서 입사했습니다!

25살 직장인, 인턴 한 달 차. 미서는 뷰티 회사에서 MD 보조 역할을 하는 중이다.

    

“원래부터 화장품을 좋아했어요. 그래서 학생 때 화장품 매장 알바도 했었는데, 그때만 해도 그런 제 특성이 직업과 연결될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못했죠.”     


미서에게 화장품이란 안 좋아하려야 그럴 수 없는 무언가다. 공부하고 일하느라 지쳐 힘들 때도 화장품 보는 걸 멈추지 않았다.      


“일하고, 힘들면 좀 덜 좋아하게 될 줄 알았는데, 아니었어요. 일부러 관심을 끊어보려고도 해봤지만 소용없었죠. 바쁘면 쉬는 날을 쪼개서라도 화장품을 찾더라고요. 늘 화장품을 보고 있었어요. 아무리 봐도 지겹지 않았죠. 결국 제가 화장품을 정말 좋아한다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었어요.”     


뭐, 화장품을 좋아하는 건 좋아하는 거고, 우선 먹고 살려면 돈을 벌어야 하는 법. 졸업을 앞둔 미서는 진로와 문제로 고민하다 공무원 시험을 택했다. 하지만 모든 걸 끊어내고 집중하던 공부도 건강이 무너지며 2년 만에 접어야 했다.     


불안한 마음과 아픈 몸을 추스르며 미서는 또다시 고민했다.

나는 대체 뭘 하고 살아야 하지?     


한참을 앓다 겨우 자리를 털고 일어난 미서가 선택한 건 결국 화장품이었다. 뷰티 업계 관련 대외 활동을 시작하고 SNS를 운영했다. 결과적으로 이는 꽤 괜찮은 선택이었다. 이런 경험을 바탕으로 화장품 회사의 인턴 직원이 되었기 때문이다.     


“포트폴리오 작성할 때 SNS를 어떻게 운영했는지 소개하고, 올렸던 화장품 제품 평 같은 부분을 어필했거든요. 덕분에 인턴십에 합격할 수 있었어요. 화장품에 관한 열정이 입증된, 열정 많은 지원자로 보인 거 같습니다.”          






어려움을 딛고 들어간 첫 직장

크고 작은 어려움이 있긴 하지만 미서는 이 인턴 생활을 꼭 잘 해내고 싶다. 많은 어려움을 딛고 들어간, 미서 인생 ‘첫 직장’이기 때문이다.     


“공무원 준비를 할 때 공황 장애가 왔어요.”      


그때 미서는 많이 초조했다. 잠시라도 쉬려고 하면 오히려 마음이 힘들 정도로. 그래서 더욱 ‘열심히’ 살려고 했다. 하지만 그렇게 제대로 쉬지 않고 스스로를 몰아친 결과는 무너진 몸과 마음. 이를 다시 세우기 위해, 미서는 오랫동안 치료의 시간을 보내야 했다.     


미서의 20대에 가장 결정적인 사건이었다.      


“그 일을 계기로 체력의 소중함을 알게 됐어요. 체력이 무너지면 정신도 삶도 무너진다는 걸 배웠죠. 꼬박꼬박 숙제하듯 쉬기 시작했습니다.”     


몸을 회복시킨 뒤 도전한 천 직장. 그만큼 이 인턴 자리는 미서에게 특별하다.     


“노력하고 있지만, 여전히 체력이 좋은 편은 아니에요. 때로 일이 너무 힘들면 몸이 못 버텨서 구역질이 나기도 합니다. 엄마도 제 취업을 기뻐하시는 한편 아플까 봐 걱정을 많이 하셨고요. 그래도 열심히 운동하고, 잠도 푹 자려고 노력하면서 지금 하는 일을 잘해보려 노력하고 있어요. 정말 잘해보고 싶거든요. 말 그대로 첫 직장이잖아요.”     


덕분에 미서의 인턴 생활은 나름 순탄하게 진행 중이다. 최근에는 평범하고 소박하게 ‘직장인의 주말 행복’도 느끼는 중이다. 금요일 저녁, 퇴근 후 집에 누워 유튜브 보는 게 이렇게 행복할 줄이야!     

행복하다. 미서는 인터뷰 내내 이 말을 여러 번 반복했다.          






매일 흥미롭고 신기한 일이 벌어지는 세계

미서는 MD 업무를 지원하는 인턴이다. 어떤 제품이 좋은지, 어떤 장점과 특징이 있는지 꼼꼼히 확인해서 상품평 하길 즐겼던 미서에게는 퍽 자신 있는 분야다.   


“전반적으로 지금 하는 일이 적성에 맞는다고 느껴요. 잘하고 익숙한 일을 하는 기분이거든요.”      


MD 업무 자체가 마케팅과 직접적으로 연결되진 않지만, 미서는 SNS를 통한 마케팅 확인도 꾸준히 하는 편이다.      


“MD 업무는 영업과 더 밀접한 영역이지만, 그래도 인스타그램 등 마케팅 채널 확인도 꾸준히 하는 편이에요. 제가 관심 있는 영역이기도 하고, 혹시 제가 도움이 될 일이 있을 수도 있으니까요.”     


인턴 일은 전반적으로 만족스러웠다. 흥미롭고 신기한 일이 매일 일어났다.     


“평소 뷰티 유튜버 채널을 많이 찾아보는 편인데, 일할 때 그 유튜버들에 관한 이야기가 오가기도 하고, 실제로 그분들과 행사를 잡기도 해요. 관련 정보를 바로바로 알 수 있다는 점도 재밌습니다. 막연히 화장품 세계를 바라만 보던 때가 있었는데, 일부로서나마 그 과정에 들어오고 참여해 보니 새로운 즐거움이 있더라고요.”     


그 외에도 마케팅팀에 요청한 제품 시안을 만들거나, 물류팀 등 유관 부서에 협력 연락을 넣다 보면 하루가 정신없이 지나간다. 문득 둘러본 사무실 여기저기, 온갖 일을 처리하느라 정신없이 바쁜 선임들이 보인다. 그 모습이 또 신기하고 감탄스럽다.     


“MD 일은 괜찮은 거 같은데 영업 매출과 관련되는 건 좀 부담스러워요. 실적이 바로바로 있어야 하더라고요. 매출 목표를 세워야 한다고도 하고. 저는 아직 거기까지는 하지 않아서 일이 즐거운 것일지도 몰라요.”     

미서가 장난스럽게 웃는다.     


언젠가 일이 더는 재밌지 않은 순간이 올 것이다. 지금 일하는 곳을 떠나야 하거나, 함께 일하던 동료들과 작별해야 하는 시간이 올 수도 있다. 그렇게 되더라도, 화장품 관련한 일을 계속하고 싶다고 말하는 미서의 얼굴이 뽀얗게 맑다.          






질문하는 거 너무 떨려요

인턴을 시작하기 전, 미서는 이런저런 걱정이 많았다.      


‘스트레스가 심하면 어쩌지?’

‘체력이 따라갈 수 있을까?’      


막상 일을 시작해 보니, 다행히도 걱정했던 것만큼 일이 힘들지는 않았다. 새로운 일을 배우는 어려움이 있고, 퇴근하고 나면 몸이 천근만근 무겁긴 했지만, 취업 준비하면서 합격일까 아닐까 마음 종종거릴 때에 비하면 훨씬 나았다.     


오히려 문제는 생각지도 못했던 부분에서 발생했다. ‘커뮤니케이션’이었다.     


“다른 부서의 높은 분들과 커뮤니케이션해야 할 때가 있었는데 머리가 하얘지더라고요. 진짜 ‘멘붕’이었어요. 얼마나 당황스럽고 어렵든지.”     


별로 중요한 일이 아니었는데 커뮤니케이션 문제로 관계가 꼬여서 크게 스트레스를 받는 일이 생겼다.      


“제가 말씀드린 내용을 상대편이 잘못 이해하신 일이 있었어요. 다시 정정해서 알려드려야 하는데, 그분이 엄청 높은 분이라 말씀드리기가 너무 어려운 거예요. 신입 직원이라 말 한마디 하는 것도 조심스럽고, 어려웠거든요. 그 말을 하는 게 왜 그렇게 힘들던지. 다행히 주변 선임들 도움으로 문제는 잘 해결됐습니다만 그때 스트레스가 너무 심했는지 삼일을 끙끙 앓았어요.”     


일도 잘하고 싶고, 사회생활도 똑똑하게 잘 해내고 싶은데. 마음만큼 되지 않을 때가 너무 많다. 솔직히 말해야 하는 순간과 ‘너무 솔직해질 필요가 없는 때’를 구분하기도 어렵고, 무엇보다 모르는 게 너무 많아서 당황스럽다.      


“아직 일에 능숙하지 못하니까 어려운 건 상사에게 여쭤봐야 하는데, 질문할 때마다 너무 떨려요. 어휴.”     


어깨를 움츠리며, 얼마나 떨리는지 모른다고, 그러면서도 일을 더 잘하고 싶다고, 더 많이 배우고 더 빨리 능숙해지고 싶다고. 숨겨둔 비밀을 말하듯 작게 속살거리는 목소리가 갓 올라온 연두색 여름 잎같이 연하다.          






우리 자책하지 말아요

미서가 친구들에게 인턴 합격 소식을 전했을 때, 돌아온 반응은 조금 뜨뜻미지근했다.      


“여전히 취업 준비하고 있는 친구들이 많거든요. 그런데 제가 합격했다고 하니까 축하는 해주는데 부러운 기색이었어요. 썩 좋아하지 않는 사람도 있었고요. 아마 다들 힘든 상태라 축하가 잘 안 나오는 거 같아요. 취업에 어려움을 겪는 친구들이 많거든요.”     


많은 청년이 취업, 관계, 이직, 미래 등 다양한 문제로 고민한다. 미서 역시 그랬다. 많이 불안했고, 여전히 고민스럽다. 그 과정이 너무 힘겨워서 위태로울 만큼 아프기도 했다.     


수없이 많았던 불안한 밤과, 딱 그만큼 스스로를 탓했던 시간.

그 과정을 겪었고, 또 겪고 있기 때문에. 미서가 할 수 있는 말이 있다.      


‘우리, 자책하지 말아요.’     


미서는 취업 준비와 불안으로 힘들어하는 사람들에게 “자책하지 말라”고 전했다.     


“취업 준비하는 거 정말 힘들잖아요. 그 시간을 지나며 깨달은 건, 그게 뭐든 꼭 노력만으로 되는 건 아니라는 거예요. 운도 좀 따라줘야 하는 거 같거든요. 결과가 잘 안됐다는 게 내가 열심히 하지 않았다는 건 아닌데, 마치 내가 뭘 못해서, 못나서 안 된 것처럼 스스로를 비난하는 건 잘못된 거 같아요. 그러니 자책할 필요 없어요.”      


안 그래도 힘든 과정, 자신을 몰아붙이며 더 힘들게 하지 말자고. 한때 스스로를 탓하고 좌절하며 온몸으로 울었던 미서가 작지만, 단단한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못나서 안 됐어, 같은 생각은 최대한 하지 않는 게 좋아요. 이미 상황만으로도 너무 힘들잖아요. 마음만이라도 좀 덜 힘들게 지나가면 좋겠어요. 그냥 ‘이번엔 운이 안 좋았네’하고 넘겨버려요. 그런 합리화도 정신 건강을 위해 꼭 필요한 거 같습니다.”          


          




스물다섯. 많지 않은 나이지만 미서는 퍽 여러 경험을 해왔다고 자부한다. 창업도 해보고, 공무원 준비도 해보고, 죽을 만큼 아파도 봤으며, 일찍 취업 준비도 해봤다.     


그리고 그 시간을 달려온 미서는 혼란스럽고 불안해서 마냥 열심히만 살던 과거의 자신이 안타깝다.     


“그때의 제게 말을 전할 수 있다면, ‘너무 열심히만 살지 말라’고 해주고 싶어요. 이십 대면 무엇에든 도전할 수 있는 나이잖아요. 그러니 다치지 않고, 건강하게, 그냥 다 해봤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좀 빨리 자고, 운동도 열심히 하는 거죠. 자신을 소중히 하고 가꾸는 데 힘쓰는 삶을 살라고 할래요.”     


이제 미서의 꿈과 목표는 복잡하고 호화로운 무언가가 아니다.      


“그저 막연히 끌려도, 그래서 그걸 해보려고 준비하려는 마음이 들면 그게 꿈이고 목표라고 생각해요. 노력은 그걸 위해서 하나하나 거쳐 가는 과정이겠죠. 그 과정을 적당히 합리화하고 적당히 열심히 하면서, 너무 과하게 좌절하지 말고 뚜벅뚜벅 갈 수 있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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