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타어학연수 제3장 #18 샌안톤가든(San Anton Garden)
50대에 어학연수는 핑계고
#18 샌안톤가든, 왕좌의 게임 촬영지 몰타 대통령궁의 정원
몰타에 온 첫 주에 친구들과 세인트줄리안에서 임디나까지 트레킹을 가게 됐는데 쉴 타임에 무슨 공원 같은 곳이 보여 무작정 들어가 본 곳이 바로 샌안톤가든(San Anton Garden)이었다. 몰타는 물이 귀한 곳이라 초록색 식물이 가득한 정원이 정말 귀한데 몰타에 이렇게 크고 멋진 정원이 있다는 게 놀라웠다. 듣기론 집에 정원이 있는 집은 무조건 부자라고~~ 거의 7개월가량은 비가 오지 않기 때문에 몰타에서 정원관리란 물을 돈처럼 뿌려야 식물들이 초록초록하지 않겠는가.
나중에 이곳으로 소풍오리라 마음먹었는데 몰타가 은근히 갈 곳도 많고 할 것도 많았기에 차일피일 미루다가 결국 한번 더 가보지 못하고 몰타를 떠나게 됐다. 12월 다시 몰타로 왔을 때 꼭 다시 가보고 싶었던 곳이 바로 샌안톤가든이었다. 3월 초에 봤던 샌안톤가든과 12월 초의 샌안톤가든은 어떻게 달라졌을지 궁금한 마음으로 도착한 순간...
깜짝 놀랐다....
3월에 봤던 샌안톤가든 보다 12월의 샌안톤가든이 더 푸르다니!!!!!!!!!!!
12월, 초록이라곤 거의 없는 한국의 겨울이 너무 뇌리에 박혔나 보다. 12월에 이렇게 푸를 수 있다는 게 새삼스러웠다. 아! 여긴 몰타지!!!
샌안톤가든 안에는 카페도, 먹을 것을 파는 곳도 없고 입구에 작은 가게가 전부라는 걸 알고 있었기에 한나절 느긋하게 즐기기 위해 점심도시락과 간식 음료를 미리 준비해 갔다. 곳곳에 벤치들이 있으니 가져간 돗자리는 소용이 없었다. 살랑살랑 바람도 불고 간간히 새 울음 소리도 들린다. 키 큰 나무들 사이로 부서지는 부드러운 햇빛이 볼을 어루만진다. 온통 초록의 세상, 한국에선 상상할 수 없었던 12월의 풍경이 눈앞에 펼쳐진다. 매 계절 아니, 매 달 가보지 못한 나의 게으름을 탓하고 싶었다.
비록 2번밖에 가보지 못했던 샌안톤가든은 몰타에서 내 최애 공간이 됐다.
샌안톤가든은 규모도 상당하지만 야자수, 편백나무, 자카란다, 남양목 등 전 세계의 이국적인 식물은 이곳에 다 모아둔 듯 눈을 사로잡는다. 어떤 나무들은 수령이 300년도 넘는 것이 있다고 한다. 나무들 사이로 걷고 있으니 잠시 몰타가 아닌 듯한 착각에 빠졌다. 3월 초에 왔을 때에는 입구 쪽에 머물렀는데 그때도 참 멋진 곳이라고 생각을 했었다. 구석구석 걸어 다녀보니 더 반할 수밖에 없는 샌안톤가든이었다.
정원의 맨 안쪽에는 샌안톤궁전이 있는데 현재는 출입이 금지된 상태이다. 아마도 이 궁전 뒤가 바로 몰타 대통령의 관저가 있어서 그런 것 같았다. 샌안톤가든은 17세기 초에 성 요한 기사단의 기사인 안토닌 드 폴(Antonine de Paule)의 시골 별장으로 지어졌다. 1623년에 그가 성요한기사단의 그랜드마스터로 선출되자 이곳이 궁전이 되면서 샌안톤궁전(San Anton Palace)이 됐다. 드 폴 이후 그랜드마스터들의 거주지로 사용되는 과정에서 여러 번 확장해 지금에 이르고 있다.
또한, 이곳은 몰타 역사에서 중요한 한 페이지가 기록된 곳으로 1800년 9월 4일 프랑스 항복이 서명이 이루어진 역사적인 장소다. 프랑스 나폴레옹 군대가 이집트 원정을 떠나며 부족했던 물자를 지원받기 위해 몰타에 잠시 머물게 되는데 그때 몰타를 점령하게 된다. 당시만 해도 성요한기사단의 부패가 극에 달하고 있던 상황이었기에 몰타에서는 성요한기사단을 몰아내준 프랑스군을 환영했다. 하지만 전쟁 물자가 부족했던 프랑스군이 성당의 성물들을 약탈하기 시작하자 상황은 완전히 달라졌다.
프랑스의 폭정을 못 견딘 시민들이 곳곳에서 반란을 일으키게 되는데 1798~1800년 봉기 샌안톤궁전은 몰타 반군 국회의 본부로 사용됐다. 자력으로 프랑스군을 물리치는 것이 힘들었기에 영국에 도움을 요청했고 영국에서 파견된 알렉산더 볼(Alexander Ball) 대위도 산 안톤 궁전(San Anton Palace)에 본부를 세우고 프랑스 군과 맞서 싸우게 된다. 그리고 프랑스 항복서명을 받아냈고 몰타의 영국 통치 기간 동안 샌안톤궁전과 정원은 영국 총독의 공식 거주지로 사용됐다. 1974년 몰타가 영국에서 독립해 공화국이 되자 샌안톤궁전은 자연스레 몰타 대통령의 공식 거주지가 됐고 지금도 대통령이 살고 있다.
1882년 영국 통치 당시 성요한기사단의 정원이었던 곳을 시민들에게 개방했는데 이때 샌안톤정원도 개방됐다. 참고로 발레타의 어퍼바라카 정원도 그 시기에 대중들에게 개방했고 지금은 두 정원 모두 시민들에게 엄청난 사랑을 받고 있다. 어쨌거나 이렇게 멋진 곳을 시민들에게 개방해 준 것이 그저 고마울 뿐. 게다가 입장료도 무료이니 외국인인 나로서는 땡땡큐!
몰타 현대사의 한 장면이 기록된 곳은 언제 그랬냐는 듯 평화롭지만 영국 국왕의 동상이 가장 안뜰에 소중하게 전시되고 있어 이곳이 한때 영국의 식민지였다는 사실을 느끼게 한다. 고풍스러운 궁전 안을 볼 수 없는 것이 아쉬웠다. 드넓은 정원에서 화장실이 가고 싶다면 궁전이 있는 맨 안쪽까지 와야 한다. 화장실이 이곳에 있기 때문이다. 고풍스러운 궁전에 딸린 화장실이어서 그런지 화장실도 고풍스럽다.
그랜드마스터의 궁전에서 영국 총독의 거주지로, 지금의 몰타 대통령의 거주지가 된 샌안톤가든의 고풍스러움을 그냥 내버려 둘 리가 없다 싶었다. 아니나 다를까 '왕좌의 게임 시즌1'이 이곳에서도 촬영이 됐다. 찾아보니 왕좌의 게임 시즌 1의 3화, 5화, 7화, 8화까지 계속 등장한 곳이라고. 어쩌면 임디나보다 더 많은 분량이 촬영되지 않았을까 싶다.
왕좌의 게임을 보지 않은 나도 임디나 게이트 정문이 등장하는 것만으로도 임디나는 엄청나게 유명하니 임디나=왕좌의 게임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샌안톤가든이 왕좌의 게임이 촬영됐다는 건 아는 사람만 아는 곳인 것 같았다. 솔직히 임디나 게이트가 좀 임팩트가 있긴 하다.
3월보다 더 초록이 많아진 것도 눈에 띄는 변화였지만 가장 큰 변화는 뭔지 몰랐던 나무가 바로 오렌지 나무였던 것!!!!! 가든 산책로 이곳저곳을 걷다가 어디선가 새콤달콤한 냄새에 홀린 듯 가보니 나무에 오렌지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는 것이 아닌가. 오렌지를 누가 언제 심은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한 두 그루도 아니고 한 구역 전체가 오렌지 나무였다. 바닥에 잘 익은 오렌지가 수두룩하게 떨어져 있으니 누가 수확을 하는 것 같지는 않아 보였다.
관광객들이 떨어진 오렌지를 주워 먹길래 나도 맛이나 보자며 한 두 개를 주웠는데 새콤달콤한 것이 제주의 천혜향과도 맛이 비슷했다. 성한 것으로 몇 개 더 주워 담았고 어학원 수업 도중 친구들과 함께 먹었는데 몰타 마트 어디에서도 이렇게 맛있는 오렌지는 본 적이 없다며 다들 궁금해했다.
'이거 내가 직접 따 온 거야'
내 말에 몰타에 오렌지 농장이 있냐며 애들 눈이 휘둥그레던 표정은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여기저기를 걷다가 뭔가 익숙한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설마 녹차밭이 맞았다. 몰타 기후에 녹차가 자랄 수 있다는 게 말이나 되나 싶었는데 녹차가 맞았다. 몰타를 마치 미로의 정원처럼 만들어 놓아서 조경에 감탄하려던 찰나, 저 동양식 탑은 뭔가 싶어 반가운 마음에 가봤더니-
아 글쎄... 고주노토(Go ju note)라고 적혀 있는 게 아닌가. 일본식 5층 석탑인데 내용을 보니 일본 벚꽃 추진위원회 그런 곳에서 기증했다고 적혀 있었다. 아마도 이 탑도 그렇고 녹차도 함께 조성을 해 준 게 아닌가 싶었는데 연도를 보니 1970년. 맙소사, 당시 몰타가 아무리 영국 식민지였고 같은 왕이 있는 나라라 친밀하다고 해도 이 작은 나라에도 무려 50년 전부터 손길이 닿았다니 놀라지 않을 수없었다. '몰타'는 우리나라에는 아직도 생소한 나라인데도 말이다. 도대체 일본은 어디까지 손길을 뻗치고 있는지 궁금했다.
이러니 성요한대성당도 그렇고 모스타로툰다도 그렇고 몰타 유명한 스폿마다 일본어 수신기가 있어 살짝 배가 아팠었다. 샌안톤가든에 닿아있는 일본의 손길을 보고 있자니 좋았던 기분이 갑자기 짜증이 났지만 정원은 정원일뿐 마음을 달랬다.
딱히 어떤 콘셉트라고 할 수 없는 샌안톤가든에서 고작 일본 5층 석탑에 기분을 잡치기엔 그곳이 너무 미미했다. 정원 안은 다양한 산책로가 있고 풍경마저도 이국적이라 어디를 어떻게 찍어도 sns 프로필 사진이다. 드넓은 정원을 다니다 보면 사진 찍는 걸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절로 셔트를 누를 수밖에 없는 곳이 샌안톤가든이었다. 이런 풍경인데 무슨 말과 설명이 더 필요하겠는가!!!!
강화도 정도의 크기인 몰타에서 가장 몰타스럽지 않았던 샌안톤가든이었다.
+ 다음 이야기 : 몰타역사 끝판왕, 성엘모요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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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대에 어학연수는 핑계고' 1장과 2장은 브런치북에서 볼 수 있습니다.
50대에 어학연수는 핑계고, 런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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