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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행작가 정해경 Oct 05. 2023

몰타여행 피라미드보다 천 년 앞선 몰타 거석신전

몰타어학연수 제3장 #20 미스터리 한 몰타 거석문화 

50대에 어학연수는 핑계고   


제3장 인터미디어트 몰타  

#20 미스터리 한 몰타 거석문화  


므나이드라 (Mnajdra)


+  이거 나만 몰랐나?  

피라미드보다 몰타에 거석신전이 더 오래됐다는 거 나만 몰랐나?  발레타 언더그라우드 투어 모임 장소가 발레타 고고학 박물관이었는데 조금 일찍 도착했다. 투어시간보다 30분이나 일찍 도착했기에 박물관 입구에서 서성이고 있으니 관계자가 박물관 오픈 전인 시간이고 티켓 구매를 하지 않았는데도 투어 시간이 될 때까지 잠시 박물관을 둘러보며 기다리라고 했다. 


이때만 해도 몰타에 대한 정보가 거의 없는 상태였기에 몰타에 박물관이 어떤 종류가 있는지도 몰랐고 크게 관심도 없었다. 역사나 문화 방면에 관심이 많아도 고고학은 내 관심사가 아니었지만 박물관과 미술관은 '무조건 관람' 모드니 땡큐였다. 슬슬 둘러보는데 고고학에 큰 관심이 없었지만 출토유물만으로도 '굉장하다'는 느낌이 차올랐다. 


그러다가.. 뭐, 뭐,, 뭐라고....  몰타 거석신전이 스톤헨지보다, 심지어 이집트 피라미드보다 무려 천 년이나 앞선다는 도표에 절로 발길이 멈췄다.  


갑자기 호기심이 폭발했다. 

이집트 피라미드보다 천 년이나 앞선 즈간티아 신전 


+ 몰타 거석신전은 세계문화유산에 지정  

몰타는 3개가 문화유산에 지정됐는데 몰타 거석사원군과 햘사프라니 지하묘지 그리고 수도인 발레타다. 이중 수도인 발레타를 제외하고 거석사원군과 햘사프라니 지하묘역 두 군데 모두 선사시대 문화다. 대략 기원전 3,600년에서 기원전 2,500년 사이에 세워졌고 가장 오래된 것은 피라미드나 스톤헨지보다 시대가 앞선다. 따라서 현재까지 발견된 인류의 가장 오래된 대표적인 건축물이 바로 몰타의 거석사원이다. 


몰타 거석신전은 1980년에 즈간티아(Ġgantija)가 지정된 후 19922년 기존 목록에 하가르 임(Hagar Qim), 므나이드라(Mnajdra), 타르젠(Tarxien), 스코르바(Skorba), 타하그라트(Ta’Hagrat) 등을 추가해 현재는 총 6개의 거석신전이 '몰타 거석신전군'으로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어 있다. 그런데 세계문화유산에 지정되지 않은 곳이 추가로 약 30여 개나 더 있다고 하니 놀랍다. 


총 6개 중 즈간티아만 고조 섬에 있고 나머지는 전부 몰타 섬에 위치하고 있다. 

몰타 거석 신전 6개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됐다. 


몰타 거석 사원이 유럽의 다른 지역과 차이점은 거석 신전의 위치가 전부 다른 곳인데도 비슷한 모양인데 타원형의 앞마당이 있고 두 개의 신전이 있으며 각각의 신전은 정면의 출입구를 통해 안으로 들어가면 중앙 통로가 신전을 가로지르고 있다. 신전은 두 개의 콩팥 모양으로 생긴 방은 서로가 연결되는 구조인데 의 전체 모양은 크게 크로버 모양을 띄고 있다. 또한 사원을 장식하는 패널에 구멍이 뚫었고 원형의 기하학적 패턴이나 동물, 식물 및 나무 모양을 새겼는데 아직까지도 원형이 상당 부분 잘 남아 있다. 이는 유럽 다른 지역에서 발견되는 거석신전들보다 훨씬 뛰어난 난 기술을 가진 문명이 존재했을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실제로 몰타의 거석신전보다 1,600년 뒤에 나타나는 스톤헨지가 큰 돌을 세운 단순한 모양이니 몰타 거석신전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선사시대 거석문화는 현재까지 이것을 누가 왜 어떤 용도로 만들었는지 여전히 미스터리고 선사 시대 놀라운 문명을 가진 인류가 갑자기 사라졌는데 이는 몰타도 마찬가지다. 기원전 2500년 거석 건축의 정점이었던 대규모 타르젠 사원을 마지막으로 몰타의 거석문화는 갑자기 사라졌다. 거석사원이 남겨놓은 흔적과 그곳에서 출토된 유물 짐작컨대 사람들은 종교의식이나 공동 모임에 사용했을 것이라 짐작만 할 뿐 그것도 사실은 정확지가 않다. 


알면 알수록 놀라운 몰타의 거석문화다. 이러니 세계 문화유산에 지정된 6군데의 거석 신전을 모두 가기는 힘들더라도 몇 군데만이라도 꼭 가봐야겠다 싶었다. 

기원전 3600~2500년 사이에 지어진 몰타의 거석 신전은 시대도 지역도 다른데  건축방식이 굉장히 비슷하다.


+ 거인이 만든 즈간티아(Ggantija) 

고조에 있는 거석 신전 즈간티아는 기원전 3600~3000년 경에 지어졌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 즈간티아가 있어 고대 이집트의 미라미드나 영국 스톤헨지보다 천 년이나 앞선 건축물이 몰타에 있다고 말할 수 있을만큼 중요한 문화유산이다.   기원전 3,600년이 숫자로 도저히 감히 오지 않아 어느 정도 시기였는지 찾아보고는 깜짝 놀랐다. 메소포타미아 문명이 시작한 시기가 대략 기원전 약 3500년, 인더스와 중국 문명의 시작이 기원전 약 2500년.. 비로소 즈간티아의 어마어마한 시간이 체감이 되기 시작했다. 


방문자 센터는 유네스코 문화유산이라는 글이 선명하게 적혀 있는데 매표소를 지나면 전시관이 있다. 전시관은 즈간티아가 어떤 곳인지 이해를 돕기 위한 자료들로 꾸며 놓았다. 혼자 오는 사람들도 있지만 고고학이라는 게 모르면 그저 돌덩어리에 지나지 않기에 가이드 투어로 오는 사람들도 꽤 있었다. 나 역시 고조 즈간티아는 한국인 가이드와 함께, 뒤에 나올 하가르 임 신전은 어학원 투어로 현지인 가이드와 함께 다녀왔다.


즈간티아(Ġgantija)는 '거인'이라는 뜻을 가진 거석 신전인데 거석신전 중 가장 오래된 곳이기도 하지만 거인이 하루 만에 지었다는 전설이 있는 곳으로도 유명하다. 전설에 따르면 누에콩과 물을 먹고살았던 위대한 거인 산수나가 아기를 겨드랑이에 안고 거석을 머리에 이고 단 하루 만에 사원을 지었다고 전해진다.  


즈간티아 신전의 상상도와 출토 유물
거인 여신이 하루 만에 지었다는 전설이 있는 즈간티아 신전


방문자센터 전시관을 나서 즈간티아 신전으로 가는 길을 따라 걸으니 일부는 허물어진 즈간티아 신전의 뒷분이 보였다. 뒷부분만 봐서는 그저 흔하게 볼 수 있는 돌처럼 보이긴 했다. 


신전의 뒷면을 보고 난 뒤 신전의 출입구까지도 꽤 걸었으니 상당한 규모였다. 신전은 하나가 아니라 나란히 지어진 두 개였는데 경계벽으로 둘러싸여 있으니 외관은 하나고 앞마당을 공유하는 구조였다. 두 개 사원의 규모는  1000㎡에 달하고 경계벽의 길이는 5m가 넘고 거석의 무게는 40~50t에 달하는 거대한 블록이었다고 한다. 지금 남아 있는 것만으로는 거인이 지었다고 할 수 있나 싶지만 신전의 끝에서 끝까지 길이가 무려 23m나 되고 가장 큰 거석의 높이는 약 7m나 됐단다. 이 정도면 지금도 기계의 손을 빌리지 않으면 신전을 짓기 힘든데 5천 년전의 건물이라니 혀를 내두룰 수밖에. 


5천 년 전에 쌓은 건축물이라고 믿기지 않을 정도인데 도대체 이 돌은 어디에서 옮겨 왔으며 어떻게 신전을 쌓았을지 놀랍기만 하다. 신기한 것은 거석 신전을 쌓을 때 사용했던 도구의 흔적이 전혀 발견되지 않아 거인이 쌓았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를 더욱 믿을 수밖에 없다고 한다. 게다가 이곳뿐만 아니라 몰타 다른 지역의 거석 신전에서 출토된 유물 가운데 사람의 뼈나 사람이 사용했던 물건 등은 없다고 하니 더 놀랍다. 

왼쪽 신전 
어떤 용도로 사용된 공간이지, 어떤 유물이 출토됐는지 설명하는 간단한 안내판이 있어 이해를 돕고 있다.
제사를 올리던  제단으로 추정 
오른쪽 신전


왼쪽 신전이 비교적 원형이 잘 남은 것과 달리 오른쪽 신전은 규모도 작은 편이고 많이 허물어진 상태였다. 몰타의 라임스톤은 보기에는 단단한 화강암처럼 보이지만 무른 석회암 재질이라 생각보다 단단하지는 않다. 뾰족한 것을 이용하면 쉽게 흔적을 남길 수 있는 탓에 곳곳에 낙서가 많이 보였다. 5천 년 전의 유적에 꼭 이러고 싶을까. 한글이 없는 게 천만다행이다 싶었다. 

어딜 가나 낙서의 흔적 


대부분의 거석 신전의 용도가 하늘을 향해 제사를 올리는 공간이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는데 이곳에서 제사를 올리고 안녕을 빌었던 사람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그 까마득하게 먼 시간이 갑자기 내 앞에 던져졌다. 

이 꽃은 5천 년 동안 피고 지고 했을까 


+ 하가르 임(Hagar Qim), 므나이드라(Mnajdra)


하가르 임과 므나이드라는 몰타의 남부에 위치하는데 각각 다른 곳에 있는 줄 알았는데 두 신전이 500m를 사이에 두고 있었다. 방문자센터에서 두 곳을 통합한 티켓을 판매하고 있었다. 이곳은 금요일에 몰타에 도착해 일요일에 즉흥적으로 몰타 남부지역을 운행하는 hop and hop 버스를 탔을 때 여기를 정차했었다. 그때는 간판에 크게 있는 4D만 보고 이런 곳에 멀티플렉스 극장이 있나 싶어 희한하다 생각했던 곳이었는데 거석신전이 있는 곳일 줄은 생각도 못했다. 


방문자센터는 두 신전의 이해를 돕기 위한 전시물도 있고 몰타 기념품 판매하는 곳도 있었다. 물론 4D 상영하는 곳도 있었는데 가이드 투어로 온 데다가 시간이 안 맞아서 영상은 보지 못했다. 

방문자센터 


신전이 어떻게 생겼고 어떤 용도였는지, 지붕은 어떤 식으로 덮었는지 출토된 유물은 어떤 것이 있는지 등등 여러 설명이 영어로 이어졌지만 고고학 용어는 어휘가 어려워서 그런지 백 퍼센트 알아듣기는 힘들었다. 다만, 그림과 함께 설명이 있어 현지 가이드의 영어 설명과 전시 안내를 보니 이해하는 데는 크게 어려움이 없었다. 


이곳에서 출토된 유물 중 목이 없는 인형들이 엄청 많이 발견됐는데 왜 목이 없는지 남자인지 여자인지 아직도 밝혀지지 않았다고 했다. 목이 없는 이유는 몸통과 목이 다른 재료로 만들어졌을 수도 있고 몸통 부분에 목을 끼울 수 있는 구멍 같은 것이 발견되는 것으로 보아 유실됐을 가능성도 있다고 했다. 


통상 이런 풍만한 인형의 경우 다산을 상징하니 여자로 봐야 하지만 하가르 임에서 출토된 인형의 경우 여성의 상징인 가슴의 형태가 없거나 있어도 애매해 성별은 뚜렷하게 구별하게 힘든 상태라고 한다. 

방문자 센터의 거석신전 설명 
이런 식으로 돌을 이동하지 않았을까 추정. 


대략적인 설명을 듣고 난 후 방문자 센터를 나서자마자 흰 천막으로 덮어 놓은 하가르 임 신전이 보인다. 하가르 임은 몰타어로 '바위'를 뜻하는 하가르(ħaġar)와 '숭배' 혹은  '서 있는'을 의미하는 몰타어의 고풍스러운 형태인 임(Qim) 두 단어를 붙인 합성어다. 


기원전 3200년 경에 만들어졌을 것으로 추정되는 하가르 임은 1839년 경부터 발굴이 시작됐다. 16세기 유럽에서 그랜드투어가 유행일 때 일부 사람들이 이미 이 거석 신전을 보고 기록을 남긴 것이 있다고 하는데 그런 것치고는 발굴이 꽤 늦었다. 


하가르 임은 언덕의 가장 꼭대기에 지어졌는데 오른쪽으로는 바다와 접하고 있다. 여름에는 완전히 땡볕이고 거센 바닷바람이 부는 지형인데 그래서인지는 모르겠으나 조금씩 훼손이 있어서 차양막이 유적을 보호하고 있다. 차양 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선사시대 유적이라기보다 내 눈에는 자꾸만 인공 조형물처럼 느껴졌다. 

인공조형물처럼 느껴지던 하가르 임 


고조의 즈간티아보다 400년이 지난 뒤에 만들어진 곳답게 훨씬 더 정교한 모습이다. 4개 혹은 5개의 앱스들은 모두 다 연결되어 있다. 방문자센터에서 전체 조감도를 보지 않았더라면 신전 규모가 상당해 어떤 모양인지 짐작이 안 될 터였다. 이렇게 큰 돌을 지금 쌓는다고 해도 다듬고 옮기고 옛살일이 아닐 텐데 4,500년 전에 이 돌을 깎고 운반했다는 게 실로 놀라웠다. 

엄청난 크기의 돌을 보고 또 봐도 신기하다.


다양한 장식적인 요소들은 놀라우리만치 현대적이다.  신전은 외부를 한 바퀴 돌아볼 수 있는데 뒤쪽의 출입구에서는 지금까지 발견된 사원중 가장 높은 돌이 있는데 높이가 무려 5.2미터이고 윗부분이 움푹 파여 있다. 근처로 길이가 6.4미터가 넘고 무게가 20톤이 넘는 돌은 몰타 선사 시대 사원 중 가장 큰 블록이라고 한다. 


누가 설명해주지 않는다면 어느 채석장이라고 해도 믿을 곳이 5000천 년 전의 시공간이라는 거짓말 같다. 도대체 이런 문명을 만들었던 사람들은 누구이며 그들은 왜 갑자기 사라졌을까. 믿고 끝도 없는 질문을 안고 므나이드라로 향했다. 

2,500년 전에 만들어진 하가르 임
목이 잘린 인형들이 세워졌을 것으로 추정
약 20톤의 거석들 


+ 므나이드라(Mnajdra)

하가르 임에서 므나이드라까지는 약 500m 정도 떨어져 있는데 언덕에서 아래로 내려가야 했다. 몰타의 뜨거운 여름은 상상을 초월한다. 온몸을 찌르는 따가운 태양은 그늘이 없는 곳에 단 5분도 서 있기 힘든 날씨에 500m를 걸어가자니 기분상 5km를 걷는 느낌이었다. 름 땡볕은 뜨겁다 못해 따가울 지경인데 다행히 시원하게 뻗은 바다와 접하고 있으니 그나마 참을 만했다. 오른쪽으로 보이는 작은 섬은 필플라 섬으로 몰타에서 가장 작은 섬이다. 


돌만 잔뜩 있는 선사시대 유적은 전문가나 전공자가 아니라면 솔직히 감흥이 있을 리 만무하다. 내가 몰타에서 여기를 또 언제 와보겠는가라는 의무감도 있었지만 므나이드라는 꼭 봐야 하는 신전이었다. 그건 바로 동지와 하지를 관찰할 수 있는 신전이기 때문이다. 

하가르임에서 500m 떨어진 곳에 있는 므나이드라 신전

기원전 3200~3600년 경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하고 있는데 하가르임과 같은 지역이고 시기도 비슷한데 생긴 모양은 세부적으로는 조금씩 다르다. 므나이드라는 두 개의 신전이 붙어 있고 하나는 떨어져 있는데 이중 남쪽 사원이 동지, 춘추분, 하지의 태양을 관찰할 수 있는 곳이다. 신전이 지어진 시기가 대략 신석기시대인데 이즈음 농경이 시작되니 태양의 움직임을 아는 건 신의 능력을 훔치는 것이었리라. 수학과 과학이 없던 시절에 동지, 하지선을 알았던 고대인의 천재성을 몰타에서 확인할 줄 몰타에 오기 전에는 상상도 못 했다. 


므나드라 신전 


실제로 므나드라 신전에서는 동지와 하지에 신전 안으로 들어오는 태양을 확인하는 이벤트를 진행하는데 예매 시작하자마자 마감이 될 정도로 인기가 많은 행사다. 원래 계획대로였다면 하지 행사는 참석할 수 있었는데 몰타를 일찍 떠나게 되는 바람에 직접 눈으로 보지는 못했기에 두고두고 아쉬웠다. 

므나드라 신전의 내부 


저렇게 돌 위를 올라가도 되는 건가 깜짝 놀랐는데 오른쪽 신전은 복원한 것이라 괜찮다고 했다. 주변으로 아직 여러 돌이 굴러다니고 있는데 아직은 더 발굴이 필요한 듯 보였다. 

아직도 상당부분 발굴되지 못한 채로 남아 있다. 


많은 것이 미스터리로 남은 몰타의 거석 신전은 인류사에서도 거석신전은 여전히 규명되지 못하고 있다. 단순한 고인돌이 아닌 발달된 문명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몰타의 신전들에서 발견되지 않는 사람의 흔적. 그래서 무수한 상상력과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몰타 거석 신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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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음 이야기 : 몰타에서 가장 입장료가 비싼 곳은 어디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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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대에 어학연수는 핑계고' 1장과 2장은 브런치북에서 볼 수 있습니다. 



50대에 어학연수는 핑계고, 런던 

https://brunch.co.kr/brunchbook/life-of-lond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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