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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행작가 정해경 Dec 21. 2023

옥스포드 대학은 알아도 옥스포드운하는 모르지요?

50대에 어학연수는 핑계고, 런던 #18 옥스퍼드운하 템즈패스 트레킹

50대에 어학연수는 핑계고, 런던 어학연수    


#18 옥스퍼드운하 템즈패스 트레킹 


현지인들과 함께 9월 중순에 도버로 트레킹(https://brunch.co.kr/@haekyoung/208) 다녀오고 난 후 마음은 매주 트레킹을 따라나서고 싶었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그렇게 어영부영 한 달이 지나고 10월 중순 옥스퍼드 운하와 템즈 패스를 걷는다길래 다시 그들과 함께 트레킹을 다녀왔다. 


이번 트레킹은 옥스퍼드 역에서 출발해 다시 옥스퍼드 역으로 돌아오는 코스로 9마일, 약 15km를 걷는 일정이었다. 캠브리지는 킹스크로스역에서 이용했는데 옥스퍼드는 패딩턴 역에서 출발했다. 고작 한 번의 트레킹이었는데도 동양인이라 그런지 나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있었고 반갑게 인사를 건넨다. 리더는 그 사이에 내가 영어가 얼마나 늘었냐며 테스트를 보겠다는 둥 농담을 걸어왔다. 


패딩턴 역에서 10시 16분 기차에 올랐다. 런던을 벗어나자마자 옥스퍼드에 도착할 때까지 목가적인 풍경이 꽤 인상적이었다.  런던에 있을 때는 잘 못 느꼈는데 외곽으로 나오니 10월 중순이라는 계절이 어느새 가을의 한가운데라는 걸 느끼게 했다. 기차는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게 1시간을 달려 옥스퍼드 역에 도착하니 11시 20분. 런던에서 옥스퍼드까지 약 1시간 정도가 걸렸다. 

패딩턴 역 
1시간 남짓 달려 옥스포드역에 도착


 옥스퍼드 역을 나서자마자 리더의 안내에 따라 트레킹이 시작됐다. 역 앞의 큰 건물을 돌아 작은 골목을 따라가니 바로 강이 나타났다. 템즈 패스 (Thams Path)다. 이후부터는 계속 템즈 강을 따라 걷는 코스였다. 


템즈패스는 템즈 강을 따라 펼쳐진 약  298km의 트레킹 코스인데 코츠월드의 수원지에서 여러 시골 지역을 거쳐 런던 중심부까지 이어진다. 템즈강을 따라 펼쳐진 초원과 강과 접하고 있는 아름다운 마을을 걷게 되는 멋진 트레킹 코스라 다른 트레킹 코스보다 걷기도 수월하고 경치가 좋아서 인기였다. 


내가 날씨가 가장 화창하다는 여름과 겨울초까지 지내 다른 계절은 모르겠지만 영국이 맨날 비가 오는 날씨라는 선입견은 막상 런던에 살아보니 꼭 그렇지는 않았다. 계절이 10월로 넘어가면서 기온이 떨어지기는 했지만 우리나라에  비하면 온화했다. 트레킹은 경치와 날씨가 어떠냐에 따라 완전히 다른 분위기를 자아내는데 오늘의 날씨와 경치는 10000% 대만족이었다. 이런 조건이면 30km를 걸어도 피곤하지 않은 날이다. 

그림 같은 풍경의 템즈 강 


강을 따라 걷다가 다리를 건너니 드넓은 목초지가 펼쳐졌다. 기대하지도 않았던 말, 소, 거위 등 방목하는 전형적인 목가적인 풍경이 나타났다.   울버코트 커먼(Wolvercote Common) 지역이다. 런던에서 고작 1시간 거리인데 이런 곳에 평지긴 해도 대관령 같은 드넓은 목초지가 있고 가축을 방목하는 곳이 있다는 게 놀라웠다. 


이곳에서 방목을 한 역사는 수백 년을 거슬러 올라간다. 1279년부터 공유지에서 방목이 허락됐다고 한다. 역사적으로는 노르만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기도 한다고. 어쨌거나 수세기 동안 울버코트에 거주하는 사람이라면 마을에 살고 있는 한 방목할 권리를 누리는데 이사를 가는 순간 특이하게도 권리가 사라진다고 한다. 

템즈 강 옆 드넓은 초원지대에 말, 소, 거위 등 가축들을 방목하고 있다


옥스포트 운하와 템즈 강을 따라 걷는 거로만 생각했지 방목하고 있는 말을 볼 수 있을 거라도 상상도 못 했기에 꽤 신기했다. 사람들이 숱하게 지나다니는데도 말은 꼼짝을 하지 않는다. 그중에 잘생긴 말이 주인과 함께 있길래 만져봐도 되나고 물었다. 만져도 되는데 조심스럽고 살살 다루라며 거칠게 다루면 말이 놀랄 수가 있다고 주의를 줬다.  


말에 손이 닿자 말의 따뜻한 체온이 손끝으로 전해온다. "참 잘생겼다"며 연신 쓰다듬는데 말이 알아듣기나 한 듯 미동도 없이 정지 모드다. 말을 하지 못하는 동물일지라도 감정은 통한다는 건 또 한 번 느끼는 순간이었다. 

잘생긴 말과 함께 찰칵!


다시 얼마쯤 걸었을까. 템즈 강에서 구호소리가 들린다. 매년 3월 말~4월 초가 되면 런던 시내 템즈강 6km에서 옥스퍼드와 캠브리지 대학 간 보트 경기가 펼쳐진다. 1829년에 시작된 경기니 19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하고 있는데 이 경기를 보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몰린다. 우리로 치면 연고전쯤이라고나 할까. 옥스퍼드 대학생들이 코치의 함성에 맞춰 열심히 노를 저고 있는 모습은 꽤 인상적이었다. 


지금 걷고 있는 템즈 패스는 옥스퍼드 대학이 위치한 지역의 바로 외곽을 흐르는 템즈강이기에 옥스퍼드 대학생들이 조정 경기 연습을 위해 이곳을 이용한다고 했다. 

조정경기 연습 중인 옥스퍼드 대학생들


강을 따라 걷다가 목초지 중간을 가로질러 울버코트(Wolvercote) 마을에 도착했다. 어느새 걷기 시작한 지 2시간이 훌쩍 지났다. 마을 바에서 점심과 커피 혹은 맥주를 마시며 잠시 쉬어가기로 했다. 트레킹의 경우 많이 걷는 관계로 대체로는 다들 간단한 샌드위치, 과일, 비스킷 정도를 챙겨 왔고 바에서는 커피나 맥주 등 간단하게 마시며 오래 지체하지는 않았다. 대략 30분~40분 정도였다. 

목초지 가운데를 건너 마을로 접어들었다. 
뜨거운 핫초코 한 잔으로 당 충전.


울버코트는 반환점이었고 이곳에서 기찻길을 건너면 이젠 옥스퍼드 운하를 따라 따시 옥스퍼드 역까지 걷게 된다. 바에서 나서 도로를 따라 걷다가 목장길을 얼마나 걸었을까. 눈앞에는 옥스퍼드 운하가 펼쳐졌다. 옥스퍼드 운하가 시작되는 곳에서 옥스퍼드 시내까지는 대략 40분 정도라는 표지판이 있었다. 


옥스퍼드 운하를 바로 옆은 대학도시인 옥스퍼드였고 이 운하 중간 즈음에 옥스퍼드 세인트 에드워드 학교(St Edward's School) 이 접하고 있었다. 런던 시내를 가로지르는 리젠트 운하를 종종 걷곤 했는데 옥스퍼드 운하는 어떤 모습일지 기대가 됐다. 


울버코트 목장길
길게 뻗어 있는 옥스퍼드 운하 왼쪽이 대학가가 있는 옥스퍼드 지역이다. 


대학의 도시 '옥스퍼드'라는 지명은 옥스(Ox, 황소)와 포드(Ford, 시냇물) 두 단어가 합쳐졌다.    굳이 풀어보자면 황소가 시냇물을 건너는 모습에서 유래된 지명인데 옥스포트 카운슬의 상징은 개울 표시 위에 소가 그려져 있다. 옥스퍼드 운하는 대학으로 연결되는 다리들이 꽤 있었는데 다리마다 옥스퍼드를 상징하는 벽화들이 그려진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옥스포드 운하의 다리에 그려진 그림들
운하를 즐기는 학생들
강 건너 건물은 모두 옥스퍼드 대학 건물들

강 건너가 바로 대학가라서 산책을 하거나 자전거를 타는 옥스퍼드 학생들이 꽤 많았다.  학교 주변으로 이런 운하가 있는 곳이라니-. 공부하다가 머리를 식히고 싶을 때 운하를 산책할 수 있다는 건 정말 부러웠다. 


더 부러운 건 운하와 접하고 있는 집들이었다. 저마다 인테리어로 한껏 멋을 부린 집들은 보는 것만으로도 힐링 그 자체였다. 집집마다 배 한 척을 가지고 저런 집에 살면 매일 운하의 풍경을 제것이냥 누린다는 상상만으로도 좋았지만 어마무시한 가격은 그저 그림의 떡일 뿐. 

운하와 접하고 있는 집들 


운하를 따라 걷다가 꽤 특이한 걸 발견했다. 아예 배를 정박해 두고 살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배 역시 다양한 콘셉트로 치장을 하고 한껏 꾸며 놓아 구경하는 재미가 솔솔 했다.  리젠트 운하에서도 정박한 배가 주거지인 경우를 본 적이 있었는데 이곳도 그랬다. 간혹 벼룩장터처럼 자신이 만든 수공예품을 팔고 무인으로 팔고 있는 곳도 눈에 띄었다. 간혹 이곳 배 가판 위에서 공연이 열리기도 한다는데 꽤 낭만적인 풍경일 것 같았다. 

배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


운치 있는 운하도 좋았지만 가을이 운하에 내려앉은 풍경은 정말 낭만적이었다. 시간만 허락한다면 근처 카페에서 뜨거운 커피 한 잔을 사 와서 커피가 다 식을 때까지 의자에 앉아서 가을을 만끽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구글지도를 확인해 보니 옥스퍼드 도심 한가운데 있는 카팩스 타워(Carfax tower)까지 대략 10분 남짓이고, 좀 더 안쪽에 위치한 탄식의 다리까지는 천천히 걸어도 20분 정도면 갈 수 있는 거리였다.  칼리지를 구경하기 위해 다들 옥스퍼드를 가지만 옥스퍼드 운하가 있고 이런 풍경이라는 걸 아는 사람은 몇 명이나 될까 싶었다.  


나 역시 트레킹이 아니었더라면 알지 못했을 멋진 풍경이었다. 갑자기 용감하게 현지인과 함께 하는 트레킹을 겁내지 않고 도전해 본 나를 칭찬하고 싶어졌다. 


가을이 한창인 운하를 떠나려니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지만 이제 옥스퍼드를 떠나야 할 시간이 됐다. 

만추의 가을이 내려앉은 옥스퍼드 운하 


운하의 끝부분에서 다리를 건너 옥스퍼드 대학가 지역으로 들어왔다. 흡사 교수동 혹은 대학원 기숙사 동 같은 비슷비슷한 건물이 늘어서 있는 풍경도 아름다워 보였다. 조용하고 사람하나 다니지 않는 옥스퍼드 대학가 지역을 몇 군데 돌아 나오니 바로 기차역이 보인다. 

쥐 죽은 듯 조용했던 옥스퍼드 대학지역 
옥스포드 역

고작 하루 트레킹이었지만 만추의 가을을 품었던 날의 추억은 오래 남았다.  적어도 내겐 '옥스퍼드'라면 옥스퍼드 대학보다 옥스퍼드 운하를 먼저 떠올리니 말이다. 언젠가 꼭 다시 한번 걸어보고 싶은 옥스퍼드 운하다.  



+ 다음 이야기 : 두 대학 도시, 캠브리지와 옥스퍼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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