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여행작가 정해경 Jan 02. 2024

특별한 이야기가 있는 런던 기차역 [런던라이프]

50대에 어학연수는 핑계고, 런던 #20 런던의 특별한 기차역 

   

50대에 어학연수는 핑계고, 런던   


#20 특별한 이야기가 있는 런던 기차역 


+ 해리포터 성지, 킹스크로스역( king' cross station) 

영화 '해리포터와 마법사의 돌'에서 벽 사이를 뚫고 9와 3/4 승강장 플랫폼으로 향하는 장면은 꽤 인상적이다. 그 장면이 촬영된 곳이 바로 킹스크로스역이다. 킹스크로스 역에는 호그와트 마법학교로 가는 기차를 타기 위해 벽을 뚫는 장면을 촬영하기 위해 언제나 긴 줄이 늘어서 있는 곳이다. 


킹스크로스역을 유명하게 만든 장면 9와 3/4 플랫폼 


내가 다녔던 EC 런던 어학원이 지금은 엔젤 역에 있지만 이사를 가기 전에는 유스턴 역 바로 앞에 있었다. 런던 도서관이 유스턴역과 킹스크로스 역 사이에 있었기에 어학원 마치고 런던 도서관에서 공부 후 집에 갈 때는 항상 킹스크로스 역을 이용했기에 내게는 그 어떤 역사보다 익숙한 역이었다.  킹스크로스 역은 기차만 운행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노선의 지하철도 같이 운행되고 있다.  


역 이름엔 킹스크로스(King's Cross), 왕(King)이 있어 누구에게서 비롯된 것인지 궁금했다. 이곳에 기차역이 들어서기 전에 이곳 교차로에 조지 4세기의 기념 동상이 이곳에 있었는데 기차역이 생기면서 동상은 철거됐고 조지 4세의 이름을 따 킹스크로스 역이라고 지어졌단다. 처음에는 참 멋스러운 이름이라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너무나도 직관적으로 지은 이름이었다. 

남들은 해리포터를 기념하기 위해 일부러 이 역을 찾는다는데 매일 이용하는 곳이면서도 한 번도 가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어 집으로 가다가 기차역으로 향했다. 킹스크로스 역은 해리포터 영화에서 보면 굉장히 올드한 느낌이 나는 곳이었는데 실제로 1852년에 개통한 역이니 170년이나 된 역이다.


기차역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이 현대적인 느낌은 뭐지? 

천장을 가득 덮고 있는 철골구조는 숲을 연상하게 한다. 
평일과 완전히 달라진 금요일 오후 풍경 


역사 안으로 들어서면 저절로 시선이 천장에 가 닿을 수밖에 없는 독창적인 구조는 길이가 52미터나 되는 지붕으로 유럽에서도 유례를 찾기 힘들다고 한다. 중앙 부분에서 한 그루의 나무가 자라 천장까지 가지를 뻗어내는 느낌은 굉장히 역동적이다. 네모나도 딱딱한 기차역은 리드미컬하면서도 부드러운 곡선이 가진 장점을 최대치를 한껏 끌어올린다. 대각선의 단순한 구조의 쉘 지붕은 단순하면서도 굉장한 긴장감을 느끼게 하는데 그 덕분에 삭막한 기차역이 생기발랄하다는 느낌을 자아내는 곳이었다. 


이 천장을 보고 난 뒤 지하철을 타기 전에 일부러 기차역에 들러기도 할 정도로 정말 애정했던 기차역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역에서 해야 하는 건 바로 해리포터 9와 3/4 플랫폼을 찾는 것.  킹스크로스역에는 해리포터 9와 3/4 플랫폼과 기념품 숍이 역사 안쪽에 있다. 역이 커서 한참 안으로 걸어가야 하는데 어디 있나 고민할 필요가 없다. 이미 엄청난 긴 줄이 늘어서 있으면 바로 거기가 해리포터 성지다. 


처음에는 기념품 숍 입장줄로 착각해 같이 줄을 서고 있었는데 플랫폼 9와 3/4 기념사진을 찍기 위한 줄이었다. 자기 차례가 되면 원하는 색상의 목도리 (4가지 중 한 가지)를 고른 다음 목도리 휘날리는 사진을 찍으면 되는데 다들 진짜 호그와트 마법사로 갈 사람처럼 진지하다. 각자의 카메라에 담기도 하지만 좀 더 기념이 될만한 포토 카드로 받고 싶다면 기프트숍에서 직원이 찍은 사진을 구매해도 된다. 사진 한 장 10파운드니 가격은 후들후들 하지만 팬이라면야 기꺼이...

플랫폼 9와 3/4 기념사진을 찍기 위해 기다리는 사람들 
각자 개인이 찍어도 되고 돈을 내고 기념품 숍에서 포토카드로 구매도 가능하다. 


해리포터를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기념품 숍은 지갑은 열지 않고는 못 배긴다. 갖고 싶은 모든 물건은 다 있다고 보면 된다. 실제로 나도 9와 3/4 동전을 기념으로 구매했을 정도니 말이다. 무엇을 살지는 그대들의 몫. 

호그와트 마법학교로 가는 기차표와 기념동전 
기념품 숍


이젠 실제로 영화가 촬영된 곳을 가볼 차례. 

에든버러 등 영국 동북부 지역과 케임브리지를 갈 때 킹스크로스 역을 이용하게 된다. 꼭 기차를 타지 않더라도 플랫폼은 바깥쪽에서 볼 수 있도록 되어 있는데 마침 케임브리지를 여행했을 때 플랫폼을 둘러볼 수 있었다. 

행선지가 표시되고 있는 전광판, 캠버리지 행 열차


영화에서는 9번과 10번 사이 플랫폼의 벽을 뚫고 들어가지만 실제 촬영은 5와 6번 사이에서 촬영이 됐다고 한다. 그렇지만 역사를 리모델링하면서도 영화의 풍경은 보시다시피 지금은 남아 있지 않다.  


영화가 초초초 대박을 치니 리모델링이 되기 전 킹스크로스 역 승강장에 영화에서처럼 9와 3/4 플랫폼에 수레를 놓아두기도 했는데 이것 때문에 종종 사고가 발생하기도 했다고 한다. 진짜 영화처럼 벽에 부딪치는 사례가 왕왕 있었기에 금지하는 문구도 붙여 놓기도 했다고. 역사가 리모델링되면서 지금의 자리에  9와 3/4 플랫폼을 옮겨 재현해 놓고 관광객들을 맞이하고 있다. 

해리포터가 촬영된 곳이지만 역사가 리모델링 되면서 지금은 영화 속 모습이 남아 있지 않다.



+ 유로스타 종착역, 세인트 판크로스역(St. Pancras station) 

런던 도서관 마당에서 보면 중세 궁전처럼 보이는 아주 독특한 건물이 보이는데 그곳이 어디일지 궁금했는데 세인트 판크로스 역 위에 지어진 미틀랜드 그랜드 호텔(Midland Grand hostel)이었다. 그리고 더 중한 건 유로스타의 종착역이라는 점이다. 프랑스 파리를 출발해 도버 해협을 건너 영국 런던까지 고작 2시간 30분이면 닿는다. 어디 그뿐인가. 벨기에와 네덜란드까지 기차로 왕래가 가능하니 이 얼마나 멋진 일인가. 기차로 국경을 넘는다는 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한국 사람이기에 세인트 판크로스 역은 내겐 그래서 더 인상적인 기차역이었다. 

런던 도서관 뒤로 보이는 세인트 판크라스역의 모습이 무척 인상적이다.


세인트 판크로스 역은 킹스크로스 역과 마주 보고 있는데 역사 위에는 고풍스러운 미틀랜드 그랜드 호텔(Midland Grand hostel)이 눈길을 끈다. 아름다운 붉은 벽돌의 빅토리아 양식으로 지어졌는데 붉은 벽돌 안으로 보이는 기차역도 무척이나 인상적이었다. 외관만 놓고 보자면 내 마음속 1등을 주고 싶었다. 그도 그럴 것이 런던 현지인들에게 이 역은 '철도의 성당(Cathedral of the railway)'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을 정도로 자부심이 크다고 한다. 유로스타를 타고 입국한 외국인들이 가장 처음 만나는 역으로 런던의  첫인상을 좌우하는 역으론 손색이 없다고 하겠다. 

너무 커서 카메라 하나에 다 담아지지가 않는다. (호텔 측 입구) 
킹스크로스 역과 마주 보고 있는 입구 
호텔 앞 빨간 전화기 부스는  이곳의 명물
빨간 건물 벽돌 안으로 보이는 기차역의 모습이 이국적이다.


역사 안으로 들어서면 남녀가 부둥켜안고 있는 거대한 동상이 버티고 있는 모습에 깜짝 놀라게 된다. 무려 높이 9미터에 무게만 약 20톤의 청동조각상인 '연인'은 영국 예술가 폴 데이(Paul day) 작품으로 사랑에 빠진 커플의 모습을 통해 여행의 낭만을 불러일으키는 것을 표현했다고 한다. 동상 아래 청동 부조는 1년 뒤에 만들어졌는데 그 안에 내용을 자세히 보면 기차를 이용하는 일반 시민의 모습, 지하철 사고, 2차 대전 등 다양한 사건들이 조작조작 새겨져 있어 보는 이의 마음을 울컥하게 했다.  


나는 보자마자 긴 이별을 앞둔 연인의 모습이라고 생각했는데 또 다른 이는 긴 기다림 끝에 만나는 재회의 순간이 연상된다고 했다. 너무나 애틋함이 가득 담긴 동상은 처음에는 좀 낯설었다. 뭐랄가. 섹슈얼하지는 않지만 좀 노골적이라고나 할까. 처음에는 공공예술이 너무 나간 건 아닐까 싶었다. 아니나 다를까. 이 작품이 공개될 때만 해도 예술가들 사이에서는 혹평이 이어졌다고 하는데 거꾸로 시민들 사이에서는 큰 사랑을 받았고 세인트 판크라스 역의 만남의 장소가 되고 있다고 한다. 


그 옆에 천장에 매달린 문구는 'I Want My Time With You'로 이 역시 공공 설치미술로 연인 상과 함께 너무 잘 어울리는 문구였다. 가로로 약 20m 정도로 엄청난 크기인데 연인 상이 워낙 크다 보니 그리 크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동상 '연인'과 정말 잘 어울리는 문구 'I wait my time with You' 두 작품 모두 공공설치 미술작품이다.


빅토리아 풍의 고풍스러운 붉은 벽돌 안에는 유리로 만든 천장이 완전히 다른 세계를 만들어내고 있어 세월의 흔적 따윈 느껴지지 않았다. 오랜 역사를 가진 역이지만 유로스타가 워털루 역에서 세인트 판크라스 역으로 이전하면서 완전히 새롭게 리모델링 됐기 때문이다. 천장 철골구조만 보자면 광명역보다는 작은데 묘하게 광명역과 좀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부분의 시설들은 지하층에 위치하고 있는데 눈에 띄는 건 피아노였다. 이곳에 피아노가 놓이게 된 건 엘튼 존이 2016년에 자신의 히트곡을 이곳에서 피아노 메들리를 연주했고 그때 연주했던 피아노를 기증하게 되면서부터다. 이후 수많은 유명한 뮤지션이 세인트 판크라스 역에서 엘튼 존의 피아노를 연주한 동영상은 지금도 쉽게 찾아볼 수 있을 정도다. 해마다 유명한 뮤지션이 찾아 이곳에서 연주도 하고 공연도 한다고 하니 운이 좋으면 멋진 장면을 만날 수 있겠다. 


다만, 지금은 엘튼 존이 기증한 피아노는 아닌 것 같았다. 하지만 지금도 피아노는 여전히 놓여있고 누구나 연주가 가능하니 한 번쯤 자신의 솜씨를 뽐내 보는 것도 좋겠다. 

유로스타 종착역인 세인트판크라스 역, 지하 1층에 놓인 피아노는 누구나 연주가 가능하다.


내가 이 역을 눈여겨본 건 다름 아닌 '맥주'였다. 한때 지하철 플랫폼 아래에는 맥주 양조장이 있었다고 한다. 내용에 따르면 19세부터 런던 북쪽의 버튼온트렌트(Burton upon Trent) 지역에서 페일 에일이 세인트 판크라스 역을 통해 런던으로 들어왔다. 그 전의 버튼 맥주는 트레이에 실려 런던으로 들어왔는데 비용이 많이 들고 소요기간도 3주가 넘게 걸렸다. 하지만 버튼에 기차역이 생기면서 사정은 달라졌다. 기차를 통해 엄청난 양의 맥주를 공급할 수 있게 되면서 런던에는 버튼 스타일의 맥주가 유행하게 되면서 맥주 공급량이 많아지게 되니 급기야는 세인트 판크라스 플랫폼 아래에 맥주 보관할 저장고를 만들었다. 


하지만 그 영광은 영원하지 못했다. 사람들의 금주 운동과 맞물려 맥주 소비량은 감소하기 시작하자 시장에서도 오래 보관할 수 있는 병맥주로 바뀌었다. 산업혁명의 결과로 기차보다 운송비용이 더 저렴한 화물트럭이 생기면서 간간히 명맥을 유지하던 기차의 맥주 운송은  1960년대 중반에 중단됐고 버튼의 양조장 철도도 폐쇄되었다. 


기차역 아래 맥주 양조장이 있었다니 지금 생각해도 획기적인 발상이다.  역사 안에도 펍이 있고 페일 맥주를 파는 곳이 있긴 했는데 내가 컨디션이 좋지 않거나 시간이 촉박하다거나 해서 이곳에서 맥주는 한 번도 마셔보지는 못했다. 그때의 버튼 지방 맥주는 아니겠지만 언젠가 세인트 판크라스 역에서 페일 한 잔 마시며 내가 얼마나 런던을 그리워했는지를 안주삼아 여행자의 맛을 느껴보리라. 

한때 맥주 양조장이 있었던 세인트 판크라스 역 


+ 패딩턴 베어의 이름이 된 패딩턴역(Paddington station) 


너무나도 앙증맞고 귀여운 영국 곰인 패딩턴. 영국 여왕의 70주년에 함께 출연해 차를 마시던 개구쟁이 모습의 패딩턴은 영국 하면 떠오르는 캐릭터라 패딩턴 인형은 영국여행 기념품 숍 어디에서나 볼 수 있다. 그 패딩턴 베어의 이름이 된 역이 바로 패딩턴 역이다. 


패딩턴 역을 찾게 된 건 런더너와 옥스퍼드로 트래킹을 가기 위해서였다. 처음에는 패딩턴 베어와 패딩턴 역을 잘 연결하지 못했다. 아침에 런던을 떠나 트래킹을 즐긴 후 다시 런던으로 패딩턴 역으로 돌아왔고 집으로 가기엔 다소 이른 시간이었다. 아침에 시간이 촉박했기에 돌아보지 못했던 역 이곳저곳을 둘러보던 중 익숙한 패딩턴 베어 조형물이 보였다. 


어랏, 패링턴 베어가 왜 여기에 있지? 


1958년에 출판된 '패딩턴'은 작가인 마이클 본드가 아내를 위해 크리스마스 선물로 테디베어를 구입했고 이 부부는 패딩턴 역 근처에 살았기에 곰 인형에 '패딩턴'이라는 이름을 붙여주게 된다. 이후 작가는 패딩턴 베어가 여행 가방을 들고 패딩턴 역에 도착하는 것을 상상했고 그의 첫 번째 소설이 탄생을 하게 됐다. 패딩턴 베어가 실제로 세상에 알려진 건 마이클 본드 사후였고 어마어마한 인기를 거두었다. 

패딩턴 베어의 이름이 된 패딩턴 역

이 패딩턴 역은 단순히 패딩턴 베어의 이름이 됐다는 것 외에도 몇 가지 의미 있게 봐야 하는 곳이었다. 우선 패딩턴 역은 히드로 공항과 옥스퍼드, 윈저 등 영국 서부지역을 운행되고 있다. 이 패딩턴 역이 생길 당시 런던에서 기차역은 패딩턴 역(1838), 런던 브리지(1936), 킹스크로스(1852) 역이 전부였다. 따라서 이 세 역 중 패딩턴 역에 1863년도에 전 세계에서 최초로 런던에 지하철 노선이 개설된 역사적인 곳이었다.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는 곳이지만 오랜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지 않는 건 이 역을 설계한 이점바드 킹덤 브루넬(Isambard Kigdon Brunel)의 공이 크다고 할 것이다. 잉글랜드 공학자이자 역사상 가장 유명한 토목 기술자 중 한 명인 부루넬은 2002년 BBC 여론 조사에서 윈스턴 처질 다음으로 위대한 영국인으로 선정된 사람이었다. 패딩턴 역에는 그의 동상이 있는데 영국인 특유의 표정으로 앉아 있는 사람이 바로 브루넬이다. 시 최초의 현대식 증기선으로 간주되었던 SS Great  설계했습니다 33년 브루넬은 그레이트

어마어마한 자전거 보관되가 역사 안에 있다.
부루넬의 동상과 세계대전에 참전한 용사를 기리는 동상


패딩턴 역이 더욱 특별한 것은 빅토리와 여왕과도 관련이 있다.  빅토리아 여왕은 철도를 사용한 최초의 군주로 알려져 있는데 윈저성에서 런던으로 돌아올 때 기상 등이 악화될 경우 자동차 대신 기차를 이용했다. 지금도 윈저 역에는 당시 빅토리아 여왕이 탔던 기차의 앞부분이 전시되어 있다. 


윈저역에 출발한 기차는 패딩턴 역에 종점이었기에 패딩턴 역에는 여왕을 위한 왕실 대기실도 따로 존재했는데 그곳은 지금도 눈에 확 띈다. 1번 플랫폼에 누가 봐도 좀 특별해 보이는 창문이 있는데 바로 그 창문이 있는 곳이 여왕을 위한 대기실이다. 여왕이 대기실에 앉아 독특한 문양의 창문으로 기차역 플랫폼을 바라다보는 고전적인 모습이 지금도 상상이 된다. 

쇼핑센터 안으로 들어가면 윈저 역이 있다. 
윈저 역 매표소 앞에 영구 전시 중인 빅토리아 여왕의 전용 기차

웨스턴 철도(Great Western Railway)의 

여왕의 대기실 


+ 프랑스를 이겼다는 자부심. 워털루역(waterloo Station)  


두 번째로 이사 간 집에서 템즈강을 산책할 때면 워털루 역을 지나다니고 했는데 역이 어찌나 큰지 밖에서 볼 때도 이쪽저쪽 같은 곳이 하나도 없었다. 도대체 어디가 정면이냐며 건물을 끼고 한 바퀴 돌았을 때 즈음에야 멋들어진 입구가 나타났다. 


아치도 아치인데 양쪽 기둥에 적힌 숫자에 눈길이 가 닿았다. 1914와 1918. 바로 세계 제1차 대전의 시작과 끝을 나타낸다. 세계 제1차 대전 당시 워털루역은 원정군이 사우샘프턴으로 이동하는 수병들의 실어 날랐던 기차역이었다. 전쟁이 끝난 후 워털루 역을 리모델링하면서 정문에 제1차 세계 대전 승리를 기념해 빅토리아 아치(Victory Arch)를 만들었다. 


'워털루'라는 지명이 낯설지는 않은데 기차역에도 워털루라는 이름이 붙어 있을 줄은 몰랐다. 원래 이 역의 이름은 '워털루'가 아닌 바로 옆에 있는 다리 이름을 본떠 '워털루 브리지(Waterloo Bridge Station)'역이었다고 한다.  


워털루 역 정면은 세계 1차 대전을 승리를 기념해 빅토리아 아치로 만들어졌다.  
면적만으로 따지면 가장 큰 역인 워털루역은 여러 개의 지하철 노선이 함께 운행하고 있다.
헤어지기 아쉬운 사람들은 그때나 지금이나 똑같다. 
워털루 역에서 몇 걸음만 걸으면 워털루 브릿지로 이어진다.
템즈강과 접하고 있어 런던 아이와 빅벤이 한눈에 보인다.


기차역의 이름도 프랑스 나폴레옹을 이긴 워털루고, 그런 기차역의 정문 역시 세계 1차 대전의 승리의 영광이 담겨있다. 이쯤 되면 자동적으로 아바(ABBA)가 생각날 수밖에 없다. 스웨덴 출신의 아바는 1974년 브라이튼에서 열린 유로비전 송 콘테스트에서 '워털루'라는 노래로 우승한 그룹이다. 혹시 이 역과 아바는 관계가 없나 궁금해서 찾아보니 역시! 유로비전 우승 직후 워털루 역에서 홍보사진을 찍은 걸 발견했다. 근데 정작 진짜 '워털루'라는 지명은 벨기에에 있다는데 영국이 나폴레옹을 이긴 자부심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이 역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짐작이 되고도 남았다. 

유로비전 우승 후 워털루 역에서 기념사진을 남긴 아바(ABBA) 


1848년에 개통된 워털루역은 본머스 등 영국 남서부 지역을 운행하고 있다. 몇 가지 역사적 사실은 1967년에 운행을 마감한 증기기차가 다녔던 마지막 종착역이었다. 또한 지금이야 유로스타가 세인트 판크라스 역이 종점이지만  1994년부터 2007년까지 유로스타 종점이었다. 


워털루 역은 명실공히 런던에서 가장 붐비는 역으로 알려져 있다. 면적만 놓고 보자면 영국에서 최대 규모라고 한다. 기차역 외에도 지하철 워털루 역, 워털루 이스트 역 두 개가 같이 있고 역 중앙홀에는 자동 개찰구가 130여 개나 있을 정도로 상당한 규모다. 실제로 밖에서 건물을 한참이나 걸어야 했다. 


중앙 천장에 4면 시계가 걸려 있는데 중앙홀이 워낙 커서 이 시계가 그렇게 큰 줄 상상도 못 했다. 궁금해서 찾아보니 각 패널의 직경이 무려 1.68m나 된다는데 아무리 봐도 그 정도 크기로 보이진 않는단 말이지. 이 시계는 서머타임이 되면 사람손을 거치지 않고 자동으로 전환하는 기술이 탑재된 시계라고 한다. 런던 사람들은 워털루역을 약속 장소로 정할 때 '워털루 시계 아래서 보자'라고 한다고. 

런던에서 가장 크고 가장 붐비는 역인 워털루역 


기차역이 워낙 크다 보니 지하철만 이용할 때는 중앙 대합실이 올 일이 없었다. 그러다 남부지역으로 기차로 타고 잠깐 다녀올 일이 있었는데 그때 좀 특이한 동상을 보게 됐다. 흑인 이민자의 모습으로 추정되는 조각이었다.  동상의 이름은 '국립 원드러시 기념비(National Windrush Monument)'로 이 동상이 제막될 때 윌리엄 왕자가 공개해서 굉장히 주목을 받았다고 한다. 


나에게는 너무 생소했던 '윈드러시'가 뭘까 궁금해서 찾아보니 '윈드러시 세대'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영국역사에서는 꽤 중요한 사건이었다. 간략하게 설명하자면 윈드러시 세대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영국에 건너온 영국 카리브해 사람들을 말한다. 이들은 자메이카, 트리니아드 토바고 카리브해 영연방 소속국가 출신으로 세계 2차 대전 후 영국을 재건하기 위해 노동력 부족했기에 이들을 적극적으로 데려와 부족한 노동력을 충당했다. 하지만 이들에게 합법적인 이민 지위권을 부여하지 않아 불법 이민자로 전락하면서 한동안 영국이 시끄러웠다고 한다. 


윈더러시 동상이 워털루역에 자리한 이유는 이들이 사우샘프턴에서 출발해 도착하는 역이 바로 워털루역이었기  때문이었다.  '윈드러시'가 무엇인지 모르고 그냥 봤을 때도 이들의 표정에서 여행을 떠나는 설렘 따위는 1도 느껴지지 않았다. 청동의 조각임에도  얼굴에 온통 드리운 복잡미묘한 감정과 두 눈에는 두려움이 가득 담겼다. 내가 그렇게 느낀 것도 어쩌면 당연했다. 이들에게 워털루역은 익숙한 곳을 떠나 완전히 낯선 곳에 디디는 첫발인 셈이지 않은가.


어찌 보면 청동조각상에 지나지 않을지는 모르겠으나 이방인의 눈에 비친 것은 단지 조각상은 아니었다. 브렉시티 이후 영국의 위상이 많이 추락됐다고 하지만 적어도 내겐 이 동상 하나로도 영국이 왜 그토록 오랫동안 건재했는지, 앞으로도 쉽게 사그라들지는 않을 것임을 느끼게 했다. 

윈드러쉬 기념비


+ 보너스. 

셜록 홈스 동상이 있는 곳은 베이커스트리트 역이다. 베이커스트리트 221B가 셜록 홈스 박물관이다. 

이걸 보려고 간 건 아니었는데 친구가 저녁 먹자고 약속 장소로 정한 곳이 베이커 스트리트였던 것. 근데 둘 다 셜록 홈스에 관심이 없어서 셜록홈스는 안중에 없었다. 

베이커 스트리트 역 앞에 있는 셜록홈즈 동상 
친구도 나도 크게 관심이 없었던 셜록홈즈 박물관은 그냥 패스 


+ 다음 이야기 :  런던의 맛. 





+ 구독하기, 라이킷, 댓글 부탁드려요~ 글 쓰는데 큰 힘이 됩니다. ^^

+ 알림 설정을 해두시면 가장 먼저 글을 받아보실 수 있어요. ^^




'50대에 어학연수는 핑계고, 몰타'는 브런치북에서 볼 수 있습니다.




#런던어학연수 #런던라이프 #런던여행 #런던 #london #londonlife

#몰타어학연수 #몰타라이프 #몰타여행 #몰타 #malta #maltalife


               


이전 19화 두 대학 도시 케임브리지와 옥스퍼드  [런던라이프]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